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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순 Apr 12. 2022

저는 봄이 무서워요.(부제 : 리스너의 부재)

봄이 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합니다.

"아우, 나는 봄을 너무 심하게 타는 것 같아."


 봄이 왔다. 한 층 가벼워진 옷차림은 홀가분하다. 앙상했던 가지는 진달래로 가득 찬다. 분홍빛 사랑스럽게 벚꽃이 피어났다. 1년 중, 딱 며칠만 보여주는 벚꽃 때문에 사람들은 분주해진다. 그리고 나의 심장도 같이 뛰기 시작한다. 나쁜 의미로다가.


봄이 오는 그 느낌이 있다.

바람이 살랑 불고, 햇살이 한층 더 따뜻해지고, 묘하게 낮이 길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 냄새도 있다.

그리고, 나는 불안해진다. 나는 매년 이 맘 때쯤 마음이 불안하다. 날씨가 좋으면 좋을수록 심장이 뛰고 불안해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안 날정도로 꽤 오래된 것 같다. 

물론, 봄이 싫다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봄도 좋고, 벚꽃도 좋다. 


하지만, 친구들과 사진 찍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편하지 않다. 


난 호르몬의 노예니까, 호르몬 때문인가 싶었다.

여자는 봄을,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 말이 실제로 과학적으로도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봄이 되면 세로토닌이 증가하고 세로토닌의 뇌기능을 자극하면서 봄에 사람을 들뜨게 한다는 것이다. 이 세로토닌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한다. 부정적인 대표 증상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싱숭생숭한 것이다.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생각보다 계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리고 나는 그 영향을 미친 듯이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20대 초반이 돼서야 '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라는 것을 인지했고, 

인지함과 동시에 봄이 올 때마다 무서웠다.


그리고 지금은 봄이다.

나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우울증 치료받는 김에 이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는 약도 처방받고 싶었다. 


"선생님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봄을 타나 봐요. 항상 이 맘 때쯤 불안해서 힘든데, 불안함을 감소해주는 약을 더 처방해주시면 안 될까요?"


의사 선생님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오히려 되물었다.


"언제부터 그런 것 같아요?"

"왜 그런 것 같아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생각해보니, 호르몬의 영향이라고만 생각했지 왜 이렇게까지 불안해하고 봄을 무서워하는지는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스치듯이 나의 10대 시절이 생각났다.


10대 시절, 나는 이 시기가 싫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든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 피곤하고 힘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친구인데도 눈치를 정말 많이 봤던 것 같다. 어떤 친구와 친해져야 할까.. 초등학교 5학년는 서로 돌아가며 왕따를 시키키고, 당하기도 했다. 중2 때까지는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게 노력했던 것 같다. 내 생일이 4월에 있어서, 신학기 초반에 친구들을 잘 사귀어놓지 않으면 혼자 생일을 맞이하기 때문에 더 노력했던 것 같다. 


"10대에는 교우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학생들의 시야가 가정에서 학교로 변하게 돼요. 하지만, 애초에 편안하게 해주는 가정이 없었던 상태에서 아이들과 지내야 하다 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집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어딘가에 편하게 풀 수 없었을 거예요. 그걸 몸이 기억하는 거일 수도 있어요."


꽤나 일리가 있었다. 나는 10대 때도, 항상 3,4월이 싫었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저는 1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10대의 친구 관계가 너무 피곤하고 힘든 경험으로 남아있어요."


라고 말하면서, 갑자기 나의 부정적인 사고가 또다시 따발총처럼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분명 행복했던 순간도 있고, 즐거웠던 시간도 분명 있었을 거예요. 10대 때 친했던 친구들 아직도 친해요. 하지만 저는 그때 당시에도 즐기지 못했을 거예요. 마음 한구석 계속 불안을 안고 살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순간, 순간이 행복했었어도 지금에서야나 느끼지 그 당시엔 못 느꼈을 거예요. 저는 항상 행복한 순간을, 현실을, 진심으로 느끼지 못해요. 돌이켜보면, 좋았던 순간도 있고 나쁘지 않았던 상황도 있었어요. 그래서, 왜 그때 당시에는 맘 편하게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을까 아쉬워해요. 

저는 현실을 즐기지 못하네요. 그래서 돌이켜보면 진심으로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성격으로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버겁다고 말했다. 과거에 연연하며, 미래를 두려워하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내가 너무 미웠다. 선생님은 같이 안타까워해 주시며, 나의 성격을 이성적이고, 현실적이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다독여주셨다. 사실, 선생님이 좋은 얘기 많이 해주시는데, 그때 내 감정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 아쉽다. 독자분들한테 공유해드리고 싶은데, 나도 정신없는 와중에서 그 말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선생님의 말에서 큰 위로를 받기보다도, 선생님의 간단한 질문들에 딱 본질을 꿰뚫리는 기분이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 싶었다. 선생님은 불안감이 없어지는 약의 용량을 높였다며, 다음 주에 보자고 그러셨다.


나는 한 달 치 약이나 받고, 한 달마다 갈 거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당분간은 매주 와야 하는 데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병원 오는 게 좋다. 어쩌면 정말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나는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변에 분명 한 명쯤은 있을 텐데, 어떻게 말을 못 하지. 그냥 일상생활, 힘든 얘기 서로 터놓고 얘기하는 거지 싶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깊게 공감했다. 내 얘기를 진심으로 내가 터놓고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펑펑 울면서 속에 담아왔던 얘기를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뭔가 그렇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난 여전히 봄이 불안하고, 내 성격이 싫고, 음주운전 차에 치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약을 먹으면서 호전되는 건 느껴진다. 불안감은 정말 많이 줄었다. 이렇게 내 마음도 정리되고, 어쨌든 봄이 무서운 이유를 처음으로 호르몬이 아닌 내 기억 속에서 찾았으니까. 이제는 그래도 예전보다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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