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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Apr 30. 2023

밤을 사유하는 법

달에 쓰는 여섯 번째 편지


밤을 사유하는 방법을 배웠다.

사유.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또는,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작용.

대상을 생각하는 밤은 울적한 기분에 빠지기 쉬웠다.

하나의 대상을 두고 온갖 추리와 판단의 지도를 그려나갔다.

우리는 줄곧 미지의 세계를 두고 모험하지만, 모험은 호기심과 더불어 두려움을 가져오기도 하니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 날엔 밤의 농도가 짙어졌다.

더 많이 불안했고, 더 많이 고통스러웠고,

불어나는 감정을 감히 형용할 수 없었다.


밤의 대상은 여러 가지 가면을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지켜내야 할 것들을 끝내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아직 이루지 못한 꿈과 패배감,

갈망하지만 가닿을 수 없는 어떤 환영,

불통의 관계에서의 미움과 시기질투,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


안개꽃이 피려나 봐요.

안개꽃의 꽃말은 간절한 마음이래요.

당신의 마음이 언젠가 꽃을 피울 거랍니다.


안개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

꽃이 피고야 말 거라는 소망 또는 믿음.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대상이라는 이 지독한 것이

부디 나를 지나쳐가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간절히 바라면서,

단단히, 아주 단단히 나를 묶어두는 일.

자존을 여러 단어로 엮어 차곡차곡 쌓아 두는 일.

밤을 사유하는 방법이었다.


해는 늘 떠있지 않아.


해가 지니 밤이 오고, 달이 지니 아침이 온다.

달이 지면 아침이 온다.

아침이 온다. 비로소.


밤을 사유한다는 것은 달이 지는 물리적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인상적일 것 없는 아침이라 할지라도,

조금은 특별하게 맞아보려고,

언젠가 올 아침을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빼곡히

쌓아 올리는

사유의 밤.


, 다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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