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든건 열두살 즈음이었다. 쓰임이 있을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초등학생들처럼 나도 그 때 바빴다. 영어 단어도 암기해야 했고, 태권도 학원도 가야했고, 수학 문제집도 매일 여러 페이지 풀어야했다. 그렇게 목공은 서서히 잊혀졌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10년도 지난 어느 날 집 근처 목공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전화를 걸어 그날 바로 목공방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공방 문을 열자 나무 냄새가 기분 좋게 코 안을 가득 메웠다. 사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목수 아저씨가 목공 캔버스 앞치마를 두르고 캡모자를 쓴 채 톱질을 하고 있었다. 공방 한켠 수납장에는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듯한 다양한 무늬의 원목 도마들이 쌓여 있었고, 작업 테이블 위에는 붉은 빛이 나는 오크 스툴이 세워져 있었다. 이제 갓 오일을 먹은 듯한 검정색 커피 테이블도 보였다.
나는 원데이클래스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목공을 배우고 싶었다. 목수 아저씨는 왜 목공을 배우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특별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그는 삼개월은 배워야 기본적인 목공 기계들와 소공구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며 수업 커리큘럼을 소개하다 갑자기 머뭇거리며 말했다. "제가 공방 운영하면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이 일로 돈 벌기는 어렵습니다. " 혹시라도 이 일을 배워 업으로 삼으려할까봐 노파심에 덧붙이는 말이라고 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에게 직접 듣기에는 어딘가 서글픈 말이었다.
며칠에 걸쳐 이론 수업을 듣고 나서 원목 상자를 직접 만드는 실습이 시작됐다. 디자인을 하고, 톱질을 하고, 끌을 숫돌에 갈고, 끌질을 하고, 본드로 붙이고, 사포질을 하고, 오일을 칠했다. 네 시간을 넘게 작업하고 일주일간 오일을 말려 상자를 완성했다.
돈이 안된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시장에 가면 비슷하게 생긴 인공목 상자를 몇 천원 주고 살 수 있을 텐데 내가 만드는 나무 상자는 최저임금만 따져도 몇 만원은 훌쩍 넘을 것이었다. 목수 선생님 말의 뜻은, 그걸 사려는 사람이 있겠냐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비효율적인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은 외려 더 강렬해졌으니 말이다.
다름 아니라 이 나무 상자를 만들 때 어떤 종류의 나무를 사용할 것인지, 바니쉬를 바를지 오일을 바를지, 어떤 글자를 새길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선택해야하는 기로들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취향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그게 내가 목공방을 찾은 진짜 이유였다.
빠른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을 빨리 올리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좋은 학점을 받아 빨리 취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해서는 빨리 논문을 쓰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 어떤 것도 빨리 하고 싶지가 않다. 중고등학생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이나 주구장창 그리고, 대학생으로 돌아가면 학점과 상관없이 듣고 싶었던 철학 수업을 듣고, 대학원생으로 돌아가면 읽고 싶은 논문이나 느긋하게 읽으면서 늦깎이로 졸업하고 싶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빨리 해서 얻은 것은 그저 ‘빨리 했다’는 사실 뿐이다. 반면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떤 ‘순간의 즐거움’들을 영영 잃어버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사였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나 보다.
슬프게도, 무엇이든 빨리 하려는 그 습성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와 함께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내 개인적인 특성일 수도 있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물려받은 집단 무의식의 유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목적도 없이 나무 상자를 며칠에 걸쳐 만들고 있으니, 언젠가는 ‘빨리 했다’는 건조한 성취 대신 ‘그 때 참 좋았다’는, 온기가 느껴지는 기억의 조각들로 내 삶의 곳간을 차곡차곡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오늘은 상쾌한 민트향을 풍기는 캄포 원목 도마에 느릿느릿한 사포질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