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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남은 마지막 판자촌에서

by 두올

구룡마을은 마을이라기보다는 쓰레기장에 가까웠다. 망가진 가구, 자전거, 폐자재들 사이에 자리한 삼 층 높이의 망루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 시장은 기억하라", "우리는 국민이다"라고 쓰인 붉은 글씨의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고, 망루 주변에는 쓰레기 더미와 뒤섞인 근조 화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나와 남편은 이런 황량한 풍경을 앞에 둔 채 연탄 봉사 준비를 했다.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 팔토시를 끼고, 검은 앞치마를 맸다. 연탄은 생각보다 묵직하고 새까맸다. 첫 연탄 봉사인 만큼 눈을 연탄에 고정하고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지만, 내 눈은 자꾸만 바깥을 향했다.


집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집들이었다. 160cm인 내 키와 겨우 비슷한 높이의 이 집들은 판자와 부직포와 천으로 덕지덕지 만들어져 있었다. 옆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런 천들은 겨울에는 나름 도움이 되지만 여름에는 사람을 쪄 죽인다고 했다. 그 집들은 색깔조차 누렇고 옅어서 옆에 쌓인 쓰레기의 일부처럼 보였다. 30억, 40억 하는 아파트들이 이 마을의 전경으로 자리 잡아 이 판잣집들은 이상하다 못해 기이했다.


구룡마을은 서울 강남 지역에 남아있는 마지막 판자촌이다. 1980년대 강남 개발이 진행되면서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 서울시가 십 년이 넘게 이 열악한 동네의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마을 곳곳에는 이주 신청 안내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구룡마을 거주민들은 보증금 없이, 월 10만 원대의 세를 내고 강남구와 송파구의 임대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거주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이들, 1989년 1월 이후에 정착하여 이주 신청을 할 수 없는 이들, 임대아파트 대신 분양권이나 토지를 매입할 권리를 달라는 이들이 남아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정부를 지지해야 할지, 구룡마을의 주민들에게 공감해야 할지, 땅 주인의 손을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부에게는 낙후된 곳을 개발하여 시민들의 주택 수요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었고, 땅 주인들은 불법 거주민들을 내쫓지 못한 채 땅을 놀려야 했다. 현수막과 근조화환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아온 이들과, 땅 주인들과, 서울시와 강남구 등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가?


신문 기사와 유튜브에는 구룡마을 주민들을 비난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모자라서, 오래 살았다고 땅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다니 얼마나 뻔뻔하냐고. 재개발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고 판잣집에 사는 척 행세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견과 구룡마을에 가면 비싼 차들이 많다는 증언도 보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구룡마을의 모든 주민이 부자일 리도 만무하다.


나는 수많은 나를 상상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어 직장을 잃은 나. 나이가 들어 허리나 무릎이 아파서 걷지 못하는 나. 가족 없이 홀로 남은 나. 치매나 경계성 지능으로 취업이 어려운 나. 그래서 무허가 판자촌 외에는 갈 곳이 없었던 나. 운이 나빴거나, 운이 나쁘다면 얼마든지 될 수 있는 ‘나’였다. 저렴한 임대 아파트의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이 땅에 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면 어떨까.


불법 점유라는 쉬운 비난을 하기보다는 왜 이런 상황이 생기게 된 것인지 사회 구조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부가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이들의 불법 점유를 수십 년간 방치한 것도 사실이다.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사회는 결국 다른 구룡마을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연탄이 사회에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될지 의심하며 연탄을 옆 사람에게 전달했다. 사회 문제는 언제나 복잡했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지쳤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는 대신, 더 깊고 끈질기게 고민하는 태도가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 작고 새까만 연탄 한 장이 그 고민의 출발점이자, 서로 다른 입장들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로 향하는 작은 발걸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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