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스물일곱, 결혼을 했다. 이유는 많았다. 아빠의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었고, 남자 친구는 30살, 내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 결혼하기에 좋은 나이였다. 임용고시생이었지만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되는 거니까! 결혼을 하기로 했다.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 신혼의 달콤함 보다는 임고생의 부담감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1차 시험이 끝났고, 신랑과 3년 뒤로 미루어 두었던 2세 계획을 세웠다. '설마, 바로 생기진 않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겼다. 그것도 바로.... 그리고 1차 합격이었다. 입덧과 동시에 밀려드는 잠에 2차 시험 준비를 어찌했는지 모르겠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2차 시험을 봤다. 또 2차 시험도 합격이었다. 3차 시험만 보면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실험 준비와 면접 준비를 했다. 3차까지 시험이 끝나고, 최종 결과 발표가 났다. 최종 불합격.... 그 당시엔 임용고시에 사대 가산점이 있던 해였다. 나는 비사대 출신이었고, 아쉽게 최종 탈락을 했다. '어차피 떨어질 거면 1차에서 떨어지지...왠 고생이람!'. 그렇게 직업란에 무엇이라고 써야 할 지 고민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23주 조산기가 있어서 입원을 해야 했다. 아마도 시험공부를 하면서 약해진 채로 임신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냥 슬펐다. '시험도 떨어졌는데, 설마 아이까지 잃지는 않겠지?' 불안했다. 나는 왜 이렇게 나쁜 일만 생기는 것일까 속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기도할 뿐이었다.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빼고는 거의 침대에서 누워서 지냈다. 지루한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이는 건강했다. “감사합니다!!” 작고 여린 생명이 신기하기만 했다. 젖 물리는 것부터 기저귀 갈기, 트림시키기,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라는 역할이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아이를 낳으려고 했을까?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임용고시 준비를 하면서 교육학 강의를 들으면서 전태련 선생님 에피소드들이 생각났다. ‘맞다! 책으로 키우셨지!’. 선생님은 교육학 강의 중에 자신이 아이를 키울 때 어떻게 키웠는지, 어떤 교육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좋은 부모의 모델링을 처음으로 맞이한 순간이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아! 나도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울 때는 선생님을 따라 해야지!'라고 다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당시 남자 친구였던 신랑과 "우리도 나중에 결혼하면 선생님처럼 키워보자!" 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전태련 선생님의 조언을 소개해 본다.
1. 세상에 공짜는 없다.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다.
2. 책을 읽고, 아이에게 실험을 해봤다. 아이가 정말 발달단계에 맞게 크더라.
3. 명상을 한다. 마음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내가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이들이 부모의 양육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상처들을 아이에게 대물림하기 싫었다. 사랑으로 키우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어떻게 키우면 아이가 잘 키울까?'라는 질문이 떠오르자, 당연히 영재를 키운 푸름이 교육을 찾게 되었다. 푸름이 교육에 관련된 책을 다 구입했다.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 <푸름이 엄마의 육아 메시지>, <배려 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 <몰입 독서> 이 외에도 육아에 관련된 책은 웬만한 것은 다 읽었다. 하지만, 나는 푸름이 엄마가 아니었고, 내 아이는 푸름이가 아니었다. 육아 초보, 아이와 함께 태어난 미숙한 엄마였다. 육아서에 나온 엄마들은 하나같이 사랑이 넘치고, 예쁜 말을 해 주는 엄마였다. 책도 아이가 원하는 만큼 읽어줄 수 있는 엄마였다. 엄마 내공이 쌓여있는 베테랑 엄마랑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몰랐기에 육아서를 읽으면 화가 났다. 특히 수면 교육은 되지 않았다. 아이는 바닥에 등이 닿으면 깼다. 일명 '등 센서'가 예민한 아기였다. 엄마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깨는 아기! ‘대체 왜 나를 힘들게 하는 거야?’라는 아이를 향한 원망의 마음이 올라왔다. ‘뭐하나 쉬운 일이 없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그 당시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답답했다. 행복한 엄마로, 행복한 아이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이 ‘행복’이란 녀석은 도무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책에서 배워야 했다. 하지만 책에 나온 엄마와 아빠의 육아는 기준이 너무 높았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미친년처럼 화가 나는 날이 많아졌다. 대체 내 화는 어디에서 온 거지? 아기가 잠들고 나면 매일 밤 눈물이 났다. 억울했다.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을 한 것인데, 신랑 없이 독박 육아를 해야 했고,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3살 터울로 둘째를 낳고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첫째가 예민하면 둘째는 순하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믿고, 둘째를 낳았다. 첫째에게 평생 친구가 된다고 하고, 둘이 결혼해서 둘은 낳아야 한다는 말도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예외는 있다. 둘째는 초울트라급 체제 거부형 아기였다. 디피컬트 베이비(difficult baby),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이라는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원래 이런 아이가 있다는 것을! 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결정적인 육아서를 만나고서야 다른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다.
1. 아이의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다.
2. 아이에게 감정코칭을 해야 한다.
3. 육아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글로 배운 육아는 시행착오는 많았지만 아이와 나를 맞춰가며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은 또 다른 책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내게 필요한 책이 기적처럼 내 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엄마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찾아야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