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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왜 돈이 행복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행복은 통장 잔고보다 마음의 잔고에 있다.

by 지혜로운보라

"엄마, 옷 사줘."

"돈이 없어서 안돼."

엄마는 늘 돈이 없었다.

아빠 혼자 벌어서 일곱 식구가 먹고 사니,

당연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엄마는 늘 돈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공부와 관련된 일에는 돈을 내주셨다.

보충수업비, 참고서.

그런 '써도 괜찮은 돈'이었다.


그때 내 안에 어떤 믿음이 자리 잡았다.

공부에 쓰는 돈은 괜찮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쓰는 돈은 '사치'라는 믿음.


공연을 보고, 악기를 배우고, 미술 활동을 한다는 것은

돈이 많은 부자나 하는 것이라는 믿음.


그건 돈이 아니라 허락의 문제였다.

엄마가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그리고 엄마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즐거움'을

내게 허락하지 않게 되었다.


왜 돈이 있어야 걱정이 없다고 생각할까?

왜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왜 돈이 행복의 기준이 되었을까?

왜 이 말들이 삶의 진리처럼 각인된 걸까?

왜 나에게 쓰는 돈은 아깝다 느끼는 걸까?


2020년, 인천 여행을 갔다.

초등학생이던 딸들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다. 동백꽃같이 생긴 예쁜 아이스크림이었다.

나는 3천 원짜리 아이스크림 3개를 주문했다. 신랑이랑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다.

집에 돌아오는 게 괜히 화가 났다.


왜 나는 화가 났던 걸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마주했을 때 알았다.

내가 나에게 아이스트림을 사주지 않은 이유는

3천 원이 아까워서다.

나는 내 행복을 미뤘던 것이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내게서 빼앗았다.

'아껴야 잘 산다'라고 배웠고,

그 믿음은 나를 조용히 묶어 버렸다.


돈은 사랑의 언어다.


나는 엄마처럼 외벌이 하는 신랑이 벌어 온 돈으로 살아내야 했다.

가계부를 꼼꼼히 쓰며 절약했다.

아이들의 옷은 물려주는 것을 감사히 받아 입혔고,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숙소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느꼈고, 더 많이 여행을 다니기 위해

캠핑을 다녔다. 자연 속에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했다.

모두 가족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게는 허용해 주지 않았다.

피곤하면 배달음식이나 포장해 올 법도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랑이랑 아이들이 좋다면 내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움직였다


책을 사는 일,

배우는 일에는 돈을 썼지만,

'즐기기 위한 소비'는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받고, 사랑을 주며, 사랑하며 하며 사느냐의 문제였는데도.

엄마가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엄마의 옷을 입고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습관이 된 희생이었다.


돈은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보다,

돈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했다.


돈을 대할 때마다 불안이 올라왔다면, 그건 돈 때문이 아니라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충분하지 않은 나에게 돈을 써버리면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결핍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다면,

결핍을 돈으로 채워도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풍요는 마음의 허용에서 온다

나는 여전히 절약하며 살려고 한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

이제는 내게 작은 허락을 해준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 따뜻한 라테 한 잔,

좋아하는 책 한 권,

공연 한 편,

쉼 한 자락.

그건 사치가 아니라 나를 돌보는 투자였다.


이제 돈은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행복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오늘, 내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지금, 마음으로 풍요로운가?

100억이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누리며 살고 있을까?

아마도 오늘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가족에게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고,

같이 영화 보고,

가끔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고,

신랑이랑 걷고, 달리고, 여행도 가고,

강의도 하고, 글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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