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먼저 배워야 할 건, 행복이었다.
"공부가 제일 쉬워!"
"공부 열심히 해야 성공해!"
어릴 적부터 그 말은 늘 따라다녔다.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말했다.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았다.
다른 걸 못해도 괜찮았다.
체육을 못해도,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해도 괜찮았다.
공부만 잘하면 다 괜찮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았을까?
정말 공부만 잘하면 행복해질까?
나는 어른의 말을 믿었다.
공부를 잘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그런데... 어른이 디어보니,
그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
공부를 잘했던 사람 중에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늘 바쁘고, 불안하고,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왜 공부를 잘했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나중에 행복하게 살 수 있어."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다. 입시와 경쟁에 지친 청소년의 이야기였다. 아이의 시험 성적에 따라 '존재의 가치'가 매겨졌다. 선생님과 부모, 친구들까지도 점수로 서열이 나뉘던 시대.
그때 스크린 속 교실은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건 '조건부 사랑'이었다.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고, 성적이 떨어지면 실망한 표정이 돌아왔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배웠다.
'나는 점수만큼의 존재구나'
그 믿음은 어릴 때 잡아 어른이 된 지금까지 나를 흔들었다.
누군가의 시선에 따라 내 가치를 평가받는 듯한 느낌.
영화 속 아이들도 그랬다. 성적이 좋으면 '모범생'. 그렇지 못하면 '문제아'라고 낙인찍혔다.
"나는 누구일까?"
"공부를 못하면 행복할 수 없을까?"
영화는 말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너무 당연한 말인데,
그렇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야 행복하다’는 말을 믿은 건,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사랑받기 위한, 생존법이었다.
이제는 안다.
진짜 행복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걸.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지금 여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 속에 있었다.
서툴고, 다투고, 화해하고, 웃고, 울고,
그 모든 게 행복이었다.
공부는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다.
잘하든, 못하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며 배우면 된다.
공부는 머리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확장하는 일이다.
사랑도, 삶도, 성적순이 아니다.
공부보다 먼저 배워야 할 건,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