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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an 07. 2021

반지하 10년 콤플렉스.

반지하 10년 콤플렉스


유년 시절 아주 잠깐 아파트에 살았던 적이 있다.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아버지는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무리해서 대출을 받았다. 아파트 매매는 형편에 맞지 않다고 극심히 반대했던 어머니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결국 아파트를 팔아야 하는 순간이 왔고 가계 부채는 전례 없이 불어났다. 이후 우리 가족은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 가는 신세가 되었다.


반지하의 불편함.


가장 오랫동안 거주했던 집은 반지하였다. 나는 초등학생을 벗어나 중학생이 되는 순간 반지하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사를 가는 순간 나는 그 집에서 10년을 넘게 살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반지하로 이사를 간다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어떤 삶이 그려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반지하를 본 적도 없었고, 그곳에서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도 몰랐기 때문이다. 반지하는 벽지에 스며든 곰팡이, 다리가 여러 개인 벌레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이웃집 고성이 만연한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삶은 물리적으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6000 반지하 전세 살이


그때 나는 ‘또래 집단에 영향을 받는’ 사춘기 시기의 여학생이었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우리 집에 오라고 말하는 건 상상만으로도 괴로웠다. 내 친구들은 우리 집 크기의 두 배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비유하는 것도 아니고 과장하는 것도 아니다. 물리적인 크기가 최소 두 배였고, 질적으로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계단을 내려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스마트폰도 없고 배달앱이 활성화되지도 않던 시기였다. 배달음식을 시킬 때 ‘지하 1층 오른쪽에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조차 싫었다. “넌 반지하 살잖아.”라는 걸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세 6000이라는 건 적잖이 충격이었다.


오피스텔에서 보이는 도시의 고도화


시간이 흘렀고,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반지하에 살지 않는다. 일반 빌라의 전세로 살고 있다. 나는 일로 인해 1인 가구로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다. 10평 내외의 신축 오피스텔에 입주하는 순간 나는 해방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피스텔은 만족감을 주었다. 이곳에는 깨끗한 세면대와 샤워 공간이 있다. 방 한 칸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습기나 벌레로 인해 소름 끼쳐하지 않아도 된다.



공동 재경비, 공동 전기료를 감당하며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오피스텔 주민이 되었다. 나는 늘 아파트 혹은 오피스텔에서 살고 싶었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주의에 최적화된 거주 공간이기 때문이다. 개성 없이 모두가 똑같은 구조에 산다는 것은 전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편의 시설이 근처에 마련되어 있고 창의성 없이 몰개성적인 거주 형태라 오히려 좋았다. 반지하는 늘 너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이다.


나는 늘 집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집에 대한 열등감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사는 동안 내가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 반지하에 살던 때 ‘나는 반지하에 살아’라며 친구를 반지하에 부른 적도 있었다. 어느 순간 집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진 게 아니라, 더 이상 사춘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집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집은 나에게 부동산 가치로 환원되어 재산의 규모를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다. 내가 꿈꾸는 집은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어떤 물리적인 방해가 없는 곳을 의미한다. 그것 외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다.


여전히 나의 집은 없다.


여전히 ‘나의 집’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있을 뿐이다. 매매가 아니라 평생 전세로 살아도 좋다. 감당할 수만 있다면 월세로 살아가도 괜찮다. 나는 재산으로써 집을 가지고 싶은 게 절대 아니다. 내가 편할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10평 이상 오피스텔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굳이 아파트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 개인적으로 책을 소장하기 때문에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서재를 마련한 수 있는 공간이 구비된다면 좀 더 좋을 것 같다는 솔직한 마음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부족한 것은 없다. 불편하지 않고, 그래서 나는 만족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이다.


올해 10월  오피스텔을 떠나야 한다. 정부 정책과 회사로 인해 운이 좋게도 분수에 넘치는 신축 오피스텔에서 살 수 있었다. 반지하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무리해서 대출을 하고 과분한 곳에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행복한 것처럼, 싫어하는 집에만 안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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