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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pr 20. 2022

자취하지만, 독립은 아닙니다

자취,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생활한다. (=비용 감당할 수 있는가?)


자취,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취, 부모님의 집을 나와 처음으로 내 공간을 마련하고 그 공간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살림을 꾸리는 것이다. 라고 착각했었다.


자취를 한다는   완전한 독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홀로 물리적 공간을 거주한다는 것만으로  사람이 독립된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낼 수는 없다. 자취는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요구하며, 그닥 낭만적이지 다. 오히려 나의 미성숙함을 깨우치게 한다.


집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자취를 하면서 느낀 건 집에서 내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누군가의 지속적인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먼지는 매일 쌓이고, 머리카락은 하루에도 몇 개씩 빠지니 바닥이 깨끗할 틈이 없다. 자취를 하고나서야 아 내가 탈모인가 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아니다. 누군가 바닥을 쓸어주고 있다는 것을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만들어 먹고, 화장실에 물때가 끼지 않고 분리수거가 밀리지 않는 것도 다 누군가의 희생 때문에 가능했다.

 

나도 달팽이로 태어나고 싶다. 달팽이는 태어나면서 집이 있으니까


10평 내외 작은 공간에서 혼자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었지만 유별나게 좋은 거도 없었다. 원룸 공간에서 주거 공간과 다용도실이 분리되지 않은 채 식사와 생활을 한꺼번에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의 전세는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이라 매달 원리금상환대출 이자를 납입해야 했었다. 매달 끊임없이 대출 납기일을 예고하는 문자를 보면서 끊임없이 나를 찾아주는 유일한 연락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 또한 물론 감당은 했지만 버거웠던 순간이 있었다.


10평 내외의 원룸에서 좁다고 느끼면서, 금액은 너무 크게 느껴진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필요한 것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딱 내려놓기도 어렵다. 한심한데 뭐 어쩔 수 있나라는 심정으로 ‘다방’이나 ‘직방’ 같은 것을 본다. 진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예쁜 매물, 물론 살 수도 없다. 절대 이사를 갈 일 없을 것 같은 지방 도시로 설정하고 집 매물을 알아본다.


어라? 그 지역도 내 수준으로 크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매번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그만해야지ㅡ식의 허무함을 느끼는 것처럼 부동산 어플을 지웠다. 그리고 반복한다.

 

집 하나라도 있는 게 어디냐는 친구의 말

“집 하나라도 있는 게 어디냐.” 한 친구가 집 두 채있다는 친구를 부러워하자, 다른 친구가 꺼낸 말이다. 50-60대 자신의 부모님은 재개발에서 제외된 지역에서 살고 있다며 한탄하고 있었다.


음 동년배인 우리 부모님은 전세로 살고 계셔, 서울도 아닌 경기도 지역에서 30년째 말이야. 전세금이 몇 십 억짜리인 집도 아니야. 2억도 되지 않은 전세금, 대출 이자 꼬박 은행에 납입하면서 일하고 계셔. 입 밖으로 차마 내뱉지 못한 말들이 목청에 오래 머물렀다. 열등감에서 오는 구겨진 마음은 좀처럼 펴지지가 않는다.

 

반지하 10년 컴플렉스

10년 동안 지류벌레들이 나오는 반지하에서 살았다. 바퀴 벌레, 지네, 개미, 뭐 수없이 많은 벌레들을 봤었다. 통풍이 잘 되지 않고 습한 반지하에서 벌레들이 서식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마다 불평을 늘여놓았지만 엄마로부터 들려온 대답은 “네가 깨끗하게 방을 치우지 않아서 그래. 그러면 안 나와”라는 회피뿐이었다.


엄마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현실적인 대책이 아니었다고도 생각하지만 지금 반지하의 전세도 구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어떤 대꾸도 할 수가 없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을 부모님에게 요구하는 것은 폭력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어떤 비용보다 사실 나를 양육하는 비용이 더 컸을 것이기에.

 

네온사인으로 빛을 잃어버린 고층빌딩이 좋다.

프랜차이즈 카페, 브랜드 아파트처럼 규격화된 몰개성적인 곳을 좋아한다. 주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개인 카페의 독특함에는 흥미가 없다. 굳이 누가 데려오지 않는다면 시간을 들여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어디를 가도 표준화된 커피. 맛의 개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공간에서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쩔 수 없이 주인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는 무슨, 내진 설계가 잘 되었는지도 모르는 곳에 생활하기 위한 짐들만 잔뜩 쌓여 있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사춘기 소녀는 아파트가 아닌, 반지하라는 공간에서 10년이나 살줄은 몰랐다. ‘또래집단’과 동조화되어 ‘소속감’을 느끼는 게 중요했던 나는 그곳이 끔찍이도 싫었다. 명의가 타인인 곳이라 우리집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자취를 통해 배웠던 것은 난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집은 반지하가 아닌 곳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나는 내가 그렇게 꿈꿨던 개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10평 오피스텔에서 자취했었다.


자취를 통해 느꼈던 것은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문자 그 이상의 무게가 있다는 것이다. 10년간 내 일상이 담긴 그 공간을 끔찍이 싫어했으면서도, 그 공간에서 편안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랐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지금 그만큼의 전세를 마련해서 누군가를 양육할 수 있는 어른인가? 아니. 나는 나를 책임지는 것만 하고 싶다. 자신을 책임져 독립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왜 나는 반지하에서 살아야 되냐고 10년 동안 억울했고, 지금도 집에 대한 콤플렉스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렇게 나를 양육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선택을 유보했을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자취 #독립 #이번생은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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