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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밸류어블 Feb 20. 2020

그려려니~그럴 수도 있지~그런가 보다~ 1편

타인의 시선에서 , 그리고 나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나에게는 별거 아니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분통이 터지는 억울한 상황이 나의 기준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누군가에게는 하루 종일 기분을 상하게 했던 말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는 말일 수 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라온 배경도,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삶의 가치관도 모두 다르니 하나의 단어를 놓고도 서로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4년을 넘게 살다 보니 대한민국 작은 땅덩어리에서 사는 5천만의 사람들이 하나하나 다른 모양인데 이 넓은 미국 땅에서 서로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품고 대한민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베이스를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40년을 넘게 살았고 미국에서 이제 4년을 산 나에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바로 '남의 시선보다 중요한 나의 가치관', 그리고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냥 그러려니~그럴 수도 있지~그런가 보다 하다 보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내가 정해놓은 틀이 절대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님을 알게 된다.


1. 아이비리그 vs 주립대, 둘 다 합격했다면 당신은 어느 학교를 선택하겠습니까?

'미국은 돈만 있으면 다 대학 가더라~' '미국 입시는 한국보다 쉽잖아~'라는 경험 없는 '~카더라'에 너무 화가 난다. 여기서 자녀의 입시를 치러본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말은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는 4천 개가 넘는 대학이 있고 커뮤니티 컬리지라는 지역에 있는 전문대학교 같은 시스템도 있어서 웬만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과 같이 재수, 삼수 시스템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이 안된 경우 일단 다른 대학에 입학하여 편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열려있다.

아무튼,  그저 대학을 가는 길은 다양하지만 탑 랭킹 대학을 가는 것은 한국 이상으로 훨씬 더 어렵다. 그리고 문제는 학비이다. 기본적으로 유명한 사립대학교의 학비는 5만 불이 넘어가며 대부분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기숙사 비용에 기타 비용까지 감안하면 1년에 1억이 들어간다는 말이 사실이다. 콧대 높은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 각 대학교에서는 우수한 학생을 영입하려는 전쟁이 엄청나기 때문에 많은 장학금 제도를 통해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며 우수 학생 영입 전쟁을 치른다. 그러니 공부뿐 아니라 다방면에 다재다능한 학생들은 많은 학교로부터 입학허가를 받게 되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아이비리그의 합격증과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가 장학금까지 주겠다는 주립대학의 합격증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다. 그 학생의 경우 아이비리그에 가려면 대학 4년간 약 4억의 돈이 필요하지만 주립대학은 거의 공짜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옵션을 안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실례로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자녀가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코넬의 비즈니스 전공과 뉴저지의 최고 주립대학의 약대 전공의 선택을 놓고 고민하다가 코넬을 선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저렴한 학비와 미래가 보장된 약대를 포기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의견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학 네임밸류의 힘을 몸소 체험한 세대에서 산 나 역시 코넬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어느 쪽이 맞다, 미국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절대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남의 시선보다는 나의 삶의 목표, 가치관, 합리적인 상황 고려가 판단의 기준에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2. 노브라, 레깅스, 크롭티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패션 스타일


처음 하이스쿨에 아이를 데려다주던 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여자아이들의 복장이 너무나 자유분방하여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혼돈스러웠다. 엉덩이살이 반쯤 보이는 짧은 반바지, 배꼽이 드러나는 크롭탑,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레깅스에 슬리퍼를 신은 아이들의 모습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러웠다. 물론 몸매가 모델처럼 예쁜 아이들도 많았지만 뚱뚱해도 배가 나와도 전혀 어색해하거나 숨기려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자유로운 패션은 10대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들도 민소매에 짧은 반바지를 입었고 뚱뚱하고 셀룰라이트가 울퉁불퉁한 여성들도 레깅스를 입고 엉덩이를 다 드러내고 다녔다. 해변가에는 나이나 몸매와 전혀 상관없이 비키니를 입고 당당하게 즐기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가장 놀라운 것은 아무도 이런 모습을 손가락질하거나 스스로 어색해하거나 가십거리 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Nobody cares'였다. 남자아이들은 여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노출에 크게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고 그 모습이 야한 게 아닌 그냥 일반적인 복장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의 한 연예인을 자살로까지 몰았던 노브라 이슈. 물론 그것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21세기 현대에 사는 우리가 느낀 그 사건에 쏠린 더럽고 폭력적인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팔뚝에 붙은 살 때문에 민소매는 외국 여행할 때만 입었다. 두꺼운 다리 때문에 짧은 반바지 역시 그랬다. 비키니를 입고 싶었지만 그 위에 항상 무언가 한 장을 더 입었다. '저 아줌마 왜 저래'하는 시선이 두렵기도 하다.

옷 입는 것조차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마음만 가져준다면, 그런가 보다 하며 그냥 지나쳐 준다면~ 훨씬 더 자유롭고 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의 시선이 두려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시선을 누군가에게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3. 연령의 잣대에서 자유로운 그들 - 10대와 80대가 함께 즐기는 카페 문화

나이가 먹으면서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어가는 느낌이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한국에서 20대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매장에 들어가면 왠지 어색하고 눈치가 보이기도 했던 경험들이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있을 법도 하다.

미국에 살며 느낀 것은 어떤 장소든 취향이나 선호도에 의해 구분되지 연령에 의해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카페에 가도 10대의 영한 아이들과 70대 80대의 할머니들이 함께 옆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떤다. 누구도 그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50~60대 어른들이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들 중 한 가지가 바로 연령의 잣대로 공간을 구분 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문화를 100% 다 아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문화를 폄하하는 것도 아닌 그저 개인적인 경험치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만일 한국에서 어떤 카페에 들어갔는데 옆에 연세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카페 물이 왜 이래? 노인네들이 이런 곳에 왜 와?' 이런 분위기가 상상이 되었다.

그냥 누가 옆에 있던 신경 쓰지 않는 것,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는다면 그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는 것~ 이것이 삶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 저래?' 대신'그러려니~'가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누구보다 내 기준이 명확했던 사람이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항상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나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은 사람은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도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 자신이 너무 힘들어졌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인데 내 기준에 맞추다 보니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무시하고 혹은 상처를 받기도 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트러블을 최소화하고,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훈련이 바로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지~그런가 보다~' 훈련이었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너그러운 마음, 포용력, 리더십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고 너무나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데에도 매우 도움이 되었다.


이제 2편에서 나머지 얘기를 더 풀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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