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함과 솔직함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네 나이에 무슨 취업이야? 네 사업해!"
"네 나이에 왜 자꾸 남의 밑에서 일하려고 해? 네 브랜드 만들어!"
"돈 벌려면 사업해야지!"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다른 산업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고 많은 젊은 친구들이 큰돈을 벌고 있는 화장품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나는 소위 '소심한 A형, 트리플 A형'이다. 눈이 큰 나는, 겁 많은 성격이 표정에 다 드러난다. 사실 일 할 때나 사회생활할 때는 그 환경에 적응되어 나의 소심함이 감추어지기도 하고, 오히려 '성격 세다, 성격 장난 아니다'라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천성은 자타 공인 소심 A형임이 맞고, 어렸을 때 친구들은 '난 네가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는, 그것도 적극적이고 리더십이 필요한 마케팅을 할지는 몰랐다'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왜 이 세상은 소심함을 놀림거리로, 혹은 약점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소심함이 약점만이 아닌 강점도 많다는 것을 알고 세상의 소심한 사람들에게 밖으로 당당히 나오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범한 척하면 상처 받기보다는 소심한 자신을 인정하고 강점을 강화시켜야 한다.
지금부터 이제 내가 살면서 몸소 체험한 소심함의 강점에 대해 얘기해본다.
1.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항상 배려하려고 애쓴다.
소심한 사람들은 마음에 쉽게 상처를 받는 성향이 있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도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걸까?' 되뇌게 된다. 그 말을 던진 사람은 이미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함에도 나에게는 며칠 동안 힘들 만큼의 무게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쿨하다, 뒤끝이 없다, 직설적이다, 할 말은 하고 산다'라는 소심함의 반대되는 멋진 말로 포장한 채 예의 없고 생각 없고 책임감 없는 말들을 뱉어낸다. 물론 그런 성격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단, 남에게 상처되는 말도 거리낌 없이 내뱉으며 그런 단어들로 포장하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내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하기에 신중하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예쁘게 이야기할 줄 아는 현명함이 분명 작고 여리지만 따뜻한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2. 어떤 결정이든 신중하고 오래 걸리지만, 한번 결정하면 쉽게 후회하지 않는다.
소심한 사람이 우유부단한가? 그것은 단연코 편견이다. 소심한 사람은 겁이 많다. 두려움도 많고 무모한 도전을 잘하지 않는다. 그런 소심이 신중함을 만들어 낸다. 결정을 하기 전에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주변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한다. 장단점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가상의 현실을 이미지화해본다. 입 밖으로 자신의 의견과 결정을 내뱉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니 성격 급한 사람들은 우유부단하다고 지적질을 해댄다. 그것은 우유부단이 아니라 신중한 것이며 이 신중함은 반복될수록 학습효과가 생겨 속도가 빨라지고, 업무에 있어서 궁극에는 질과 속도 모두 향상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낸 결정은 쉽게 맘을 바꾸거나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일을 최소화한다. 대충 급하게 결정하고 금방 후회하는 방식보다 훨씬 가치 있는 신중함이라고 생각한다.
3. 나 자신에게 항상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다.
소심한 사람은 자신을 자주 돌아본다. 가끔은 자꾸 내 탓을 하게 되어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단점도 있지만, 항상 자신을 점검하고 내면을 들여다본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남 탓을 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문제가 생기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충분한 생각도 하지 않고 이 얘기, 저 얘기 내뱉고 남 탓하기에 바쁘다 보면 어느새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이상한 변명들과 남 탓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는 상황을 여러 번 목격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묵묵히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문제를 객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으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눈이 생긴다.
4. 무모한 도전, 위험한 도전은 하지 않는다.
'해봐!' '그냥 질러봐' '가는 거야'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이렇게 대답해주는 경우가 흔하다.
소심한 사람들의 특징은 도전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도전을 두려워하는 것은 장점이 될 수는 없다.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도전 앞에 두려워도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무모한 도전, 위험한 도전을 걸러낼 수 있는 소심함은 신중함과 연계된 긍정적인 측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맞는 도전, 내가 할 수 있는 도전, 신중하게 선택하는 도전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막 던지는 조언을 무시할 수 있는 현안도 갖게 되는 것이다.
5. 떨리고 불안한 마음도 많지만, 담대하고 평안하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한다.
매일매일 뭔가 머릿속에 가득하다. 항상 걱정이 많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선 고민도 할 수밖에 없는 성격. 참 쉽지 않고 복잡한 성격이다. 하지 않아도 될 고민까지 해서 사람들은 나에게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이럴 땐 나도 참 단순하게 살고 싶고, 뒤돌면 잊어버릴 수 있는 성격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난 이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담대하기 위해 항상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나의 머릿속에 있는 엉킨 실타래들을 글로 정리해보고, 일기를 쓴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 노트에 옮겨 놓고, 누군가를 욕하고 싶을 땐 괜히 남에게 털어놓기보다는 일기를 쓰며 상황을 객관화해본다. 심히 걱정되는 일이 많을 땐 그 팩트를 종이에 적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책이나 브런치의 글도 많이 읽는다. 마인드 컨트롤이 생활화되면 크게 화낼 일도, 싸울 일도, 남의 탓을 하며 욕할 일도, 적을 만들 일도 없는 평안한 세상 속에 살게 된다.
6. 나에게 '넌 소심해'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너 소심하구나!'라고 얘기하면 소심한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가 싫다. 얼굴이 금세 벌겋게 달아오르며 '지가 뭔데 나한테 소심하다고 지적질이야?' 화가 끓어오르지만, 솔직히 왜 나에게 그렇게 얘기했는지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내가 봤을 때 그 사람은 대범한 게 아니라 어찌 보면 걱정을 회피하고 있고 고민이 귀찮고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활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격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성격이 된다. 똑같은 나를 보고, 누군가는 소심하다고, 또 누군가는 대범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판단자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에게 소심하다고 지적한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소심하다고 지적받을 수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럴 수도 있지'의 마인드로 사람을 바라보면 많은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전에 우연히 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재석 씨와 조세호 씨가 나누던 대화가 내 귀에 꽂혔다.
그 둘은 사실 자신들은 엄청나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고, 이렇게 예능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활발하고 외향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매일매일 끝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국민 MC로, 인기 개그맨으로 멋진 직업을 가지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본인의 성격으로 겪는 어려움을 매일매일 순간순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들 그렇게 살고 있구나, 인생이 다 그런 거구나'
그날 난, 그 두 연예인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소심한 성격이 무조건 좋다는 게 절대 아니다.
소심한 성격보다 대범한 성격이 훨씬 세상 살기 당당하고 편하다는 것도 안다.
단, 소심한 성격도 멋지게 사회생활할 수 있는 수많은 장점이 있음을 강조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소심한 사람 vs 소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이분화시킬 수는 없다. 아무리 대범한 사람도 어떤 상황이나 사람 앞에서 소심해질 수 있고 소심한 사람이 오히려 큰일이 닥쳤을 때 대범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소심하다고 탓하다가 어느 순간에 나 자신이 소심하다는 것을 느낄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러니 위의 이야기들이 공감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그저 스스로가 작아진다고 느꼈을 때, 위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기 원한다. 당신도, 나도...
난 이제 곧 미국 삶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아마도 사업보다는 취업을 선택할 생각이다. 이것이 어찌 보면 사업보다 더 큰 도전일 것이다.
소심해서가 아니라, 신중해서, 내가 나를 너무 잘 알기에, 내가 잘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도전을 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