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홍대 골목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간만에 데이트를 나온 윤서와 지훈은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려 했지만, 윤서의 마음은 무겁다. 자신이 조금 전 결제한 가방 속 커피 영수증이 구겨진 채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단은 이랬다.
“여기 파스타 되게 맛있대. 우리 들어가볼까?”
지훈의 밝은 목소리는 늘 그렇듯 부드러웠다.
“응… 그럴까?”
윤서의 대답은 웃음 뒤에 작은 떨림이 숨어 있었다.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그녀의 눈은 자동적으로 가격표로 이동했다.
20,000원, 18,500원 ...
음료 6,000원...
금액들은 숫자가 아니라 압박처럼 느껴졌다.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손끝이 살짝 차가워졌다.
“난 이거 먹어볼래. 너는?”
지훈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난… 그냥 제일 기본으로 할게.”
윤서는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골랐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음식이 나왔고 대화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윤서는 포크를 돌리며 계속 생각했다.
이 정도면 이번 주 예산에서 얼마가 빠지는 거지…?
“회사 요즘 어때? 지난주에 너 좀 피곤해 보이던데.”
지훈의 말에 윤서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뭐… 똑같지.”
말끝이 가벼웠지만, 진짜 이유는 회사가 아니라 ‘돈 생각’이라는 걸 말하지 못했다.
계산대로 향하는 둘의 걸음은 자연스러웠지만, 동시에 조심스러웠다. 두 사람은 동시에 카드를 꺼냈다.
“내가 낼게.”
“아니야, 이번엔 내가—”
“됐어. 지난번에도 내가 냈잖아.”
지훈이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윤서는 말없이 웃어 보였지만, 마음속에서는 안도감과 미안함이 동시에 부딪혔다.
이 감정은 어느새 둘 사이에 작은 틈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도 파스타 가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문 후 진동벨을 받아 들자마자 지훈이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요즘 데이트하면 좀 많이 쓰지?”
“응?”
윤서의 심장이 한 박자 멎었다.
“그냥… 요즘 네가 좀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지훈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윤서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커피 두 잔이 테이블에 놓였다.
지훈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난 네가 부담 갖는 거 진짜 싫어. 그냥 얘기해도 되는데.”
윤서는 커피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시간을 끌었다. 뜨거운 김이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도 편하게 말하고 싶어… 근데 잘 안 돼.”
“왜?”
“음… 나도 잘 모르겠어. 데이트는 즐거운데,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커피값 영수증뿐이라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린 듯하면서도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잠시 정적.
지훈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돈 때문에 부담 주는 사람이야?”
“그런 뜻 아니야. 그냥… 나한테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
“그럼 우리가 더 아낄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데이트할 수도 있잖아.”
지훈의 말은 상냥했지만, 미세하게 서운함이 스며 있었다.
테이블 위의 두 사람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창밖의 시끄러운 홍대 거리와 대비되는 정적이었다.
집에 돌아온 윤서는 가방에서 구겨넣은 커피 영수증을 꺼냈다. 쇼핑백도, 새로 산 것도 없었다.
그는 현관 앞에 서서 그 종이를 바라봤다.
왜 데이트가 즐거움보다 계산이 먼저일까. 나만 이런 걸까.
침대에 앉아 무심코 인스타그램을 켰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익숙한 계정 ‘경자코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카드뉴스였다.
〈데이트 비용이 부담될 때 꼭 기억할 것〉
사랑은 나눔이지만, 돈은 계산이다.
비용의 균형은 감정의 균형을 지킨다.
데이트비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두 사람의 구조다.
윤서는 그 문장을 천천히 입모양으로 따라 읽었다.
“돈은 계산… 관계는 균형…”
오늘의 감정이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신호였다는 걸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돈 앞에서 작아지는 이유도,
아마 ‘돈의 방향 없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아주 작게 스쳤다.
그는 영수증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금액은 그대로였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 영수증은 ‘부담’이 아니라
바뀌고 싶은 마음의 증거처럼 보였다.
★ 경자코치 메모 ★
데이트비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관계 안에서 지출 부담이 쌓이면 감정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역할·분담·범위가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연애비가 부담될 때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월지출 구조 내에서 데이트비가 차지하는 비중
한국 2030 평균은 총지출의 약 15~25%입니다.
2. 누가 얼마를 부담하는지의 ‘패턴’
한쪽이 더 낼 수도 있지만, 규칙이 없다면 감정이 흔들립니다.
3. 데이트비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두 사람의 합의 구조’
“이번 주는 집 데이트”, “다음 주는 너가 커피, 내가 식사”처럼
작은 합의가 감정의 균형을 지킵니다.
윤서처럼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건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점입니다.
감정은 문제를 알려주는 신호일 뿐, 당신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데이트 이후 돈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윤서는... 마침내 다음의 결심을 하는데... (3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