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자기 Jan 30. 2022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그리고 체호프의 <바냐 삼촌>


모 출판사의 SNS에 이 영화에 체호프의 <바냐 삼촌>이 나온다고 해서 보러 갔다. 사실 영화에 대해 딱 여기까지만 알고 간 거라서 심지어 이 영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도 영화 오프닝에 나오고 난 뒤에야 알았다. 그런데 이 부분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을 수 있었는데, (원작과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은 음... 무라카미 하루키스럽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줄거리는 주인공인 가후쿠의 부인이 죽고 난 뒤에 시작된다. 그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연극제에 연출가로 가게 되고, 여기에서 체호프의 <바냐 삼촌>을 연기할 배우들을 뽑아 연극을 준비한다. 이때 연극제 측에서 그의 운전사를 고용하는데, 그가 바로 미사키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찾아본 스틸컷에서 미사키의 얼굴을 봤는데, 딱 <바냐 삼촌>에 나오는 소냐의 얼굴이었다. 나는 <바냐 삼촌>의 소냐, <갈매기>의 마샤 같은 캐릭터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사랑이 마음속에 생기면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한다는 마샤의 말이나, <바냐 삼촌>에서 소냐의 마지막 장면은 거의 멱살 잡고 끌고 가듯이 마음 한 편에서 내 삶을 지탱하는 기둥 같은 존재다.


1970년작 소련 영화 <바냐 삼촌> 속 소냐

특히 인노켄티 스모크투놉스키가 주연한 1970년작 소련 영화 <바냐 삼촌> 속 소냐의 뒷모습을 너무 사랑한다. 이 영화는 진짜 너무 재밌고, 좋고, 연기부터 의상, 미술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어서 강추한다. 아래 영상에서 전체 영화를 볼 수 있다.

https://youtu.be/EF3A9mmRzGc


다시 <드라이브 마이 카>로 돌아와서, 이 영화에서 두 명의 소냐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한 명은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에 출연하는 한국인 배우 이유나이고, 다른 한 명은 연극제 동안 가후쿠의 운전기사가 된 미사키이다.


유나는 처음 <바냐 삼촌>의 오디션을 볼 때 소냐가 바냐 삼촌에게 훔쳐간 모르핀을 돌려달라고 하는 장면을 수어로 연기한다.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미사키는 가후쿠가 연극 연습 기간 동안 심란한 일을 겪은 후 바람 쐴 장소로 데려다 달라고 하는데, 그곳은 바로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거대한 갈고리가 쓰레기 더미를 들었다가 놓는 장면을 보면서 약간 눈 같지 않냐고 묻는 미사키의 모습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미사키의 약간의 거리를 두는 듯 무심하면서도 운전기사로서 예의를 갖춘 태도와 백미러로 슬쩍슬쩍 쳐다보는 단단한 눈빛도 너무 좋았다.


그러고 보면 유나와 미사키의 소냐는 살짝 느낌이 달랐다. 유나의 소냐는 배우로서 연기하는 소냐 같다면, 미사키의 소냐는 삶 속에 살아있는 소냐의 느낌이 들었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 영화 내내 대본을 읽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특히 초반 대본 리딩 과정에서 배우들이 감정을 배제하고 대사를 건조하게 읽는데, 그 톤이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체호프의 연극에 어울리는 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예전에 한국에서 본 모 <갈매기> 연극에서 너무 감정 과잉으로 극을 끝내버려서 과몰입한 덕후로서 엄청 열 받은 적이 있었는데, <드라이브 마이 카> 속 체호프 연극이라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의 또 다른 특징은 배우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한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아마도 일본어랑 독일어로 연기한 것 같았고,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준비한 <바냐 삼촌>에서는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그리고 수어 등 역시 다양한 언어를 가진 배우들이 자신의 언어로 연기했다. 연습 과정에서 상대의 언어가 익숙해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상대의 언어를 배우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타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점이 또 체호프의 연극과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호프의 연극에서도 인물들이 서로 대화를 제대로 주고받지 못하고, 서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결국 대화가 진행될수록 소외감이 커지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마치 같은 언어로 이야기함에도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하는 연출은 이 점을 부각해 주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서로 다른 언어로 대사를 말해도 연극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 상대의 감정을 어쩌면 같은 언어로 대화할 때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체호프의 극 속 서로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는 인물들과는 또 다른 점이다.




영화의 프롤로그에는 아직 가후쿠의 부인인 오토가 죽지 않았을 당시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토는 결국 가후쿠와 어떤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죽는데, 이후 가후쿠는 <바냐 삼촌>을 연기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체호프는 두려워. 그의 대사를 입에 올리면 나 자신이 끌려나와.



이 대사가 또 정말 좋았다. 체호프의 희곡은 글로 읽는 거랑,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거랑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희곡은 연극 공연을 목적으로 쓰인 것이지만, 배우들이 직접 희곡 속의 대사를 말하고 연기하는 게 훨씬 더 극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면 '아, 정말 이건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되고, 글로 읽을 때보다 텍스트가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때로는 불편하게까지 다가온다. 독자와 관객 입장에서도 이런데 직접 대사를 입에 올리는 배우는 오죽할까.


그리고 체호프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는 어떤 면에서 삶의 진실을 보고, 그것을 작품 속에 담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욱 그의 작품이 시대와 나라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계속 읽히고 공연되고 있는 거겠지.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영화였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어서 좀 긴데, 하루를 통째로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집에 돌아와서 체호프의 <바냐 삼촌>을 다시 읽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영화 속에 나왔던 대사들이 희곡에도 그대로 나와서 신기했다. 그리고 <바냐 삼촌>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작년에 읽을 때는 작중 인물의 대사에 공감하면서 하하호호 읽었다면, 이번에는 살짝 거리를 두면서 읽을 수 있었다. 다음에 읽을 때는 어떤 느낌을 받을지 또 궁금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연극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연극하는 장면, 대본 리딩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 외 장소에서 마치 연극하는 것처럼 긴 대사를 치는 장면들이 몇 번 등장한다. 배우의 엄청난 집중력과 연기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라서 그 장면에서 대사를 하는 인물이 이전과 살짝 달라 보였고, 그래서 그다음 극 속에서도 이전과 달라 보였다.


나는 이렇게 마치 연극처럼 연출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1970년작 소련 영화 <바냐 삼촌>도 장면 장면 연극하는 것 같은 영화다. 어쩌면 연극이나 영화 그 자체보다는 이렇게 연극처럼 연출한 영화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 마지막에는 갑자기 한국이 등장한다. 배경에 보이는 한국어와 한국어 대화에 살짝 놀라게 되는데, 심지어 장소는 메가마트다...;; 히로시마에서 <바냐 삼촌>을 공연한 이후 가후쿠와 미사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결국 히로시마에서 미사키가 운전하던 가후쿠의 빨간색 차는 이제 미사키의 차가 되었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도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꽃같은 생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