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캐나다 영주권 및 취업 도전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나의 관심은 Edmonton 회사의 사장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시차 적응 기간도 어느덧 지나가고 있었고, 매일같이 이메일을 쳐다 보고 혹시나 싶어 스팸 메일함까지 매일 찾아봤으나 그 회사 사장으로부터 보내온 이메일은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으면 없다고 그러든지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무슨 일인데 약속을 이렇게 안 지키는 것일까?"
나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하였고, 무릎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1주일 동안 시간을 내어 사장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나를 채용한다면 기꺼이 거기서 일하고 싶은데 관심이 없으면 없다고 얘기를 해달라. 그리하면 다른 업체와 인터뷰를 진행하겠다고 거짓말을 조금 섞어 이메일을 보냈다. 이번에도 답장이 없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이메일이 회사 사장으로부터 날아왔다. 내용은 나의 이력서를 검토해 봤는데 프로그램 실력이 어떤지 몰라서 자기들도 뽑지 못하겠고 처음부터 Full Time으로 고용을 못하고 수습기간을 거쳐 고용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냐? 는 것이었다. 나는 어차피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안되었고, 답장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한국에서 할 일이 있어서 한 달 내로 다시 캐나다로 들어갈 것이니 그때 다시 연락하겠다고 답장을 보내었다.
그래도, 아주 거절하는 게 아니라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가서 무작정 부딪혀 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다시 캐나다로 향하는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 사이에 다른 회사에서 연락 온 이메일이나 전화는 여전히 없었다. 캐나다로 출발 하기 하루 전 그 회사 사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내일 캐나다로 들어가니 언제 회사로 가면 되겠냐?라고 묻는 이메일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에 도착하면 답변이 와 있겠다고 싶어 출발 전에 간단히 메일을 보냈다.
이제 가족들과 다시 아쉬운 이별을 하고 떠날 날짜가 왔다. 내가 출발한 날짜는 10월 29일이었고, 한국에 입국했던 날짜가 9월 18일이었으니 약 한 달 열흘 정도 머물렀다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핀 제거 수술한 무릎은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의 무릎 통증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곧 캐나다에서 만날 것을 다짐하고 탑승장 게이트로 들어섰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여 부산 김해 공항 활주로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창 밖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그런지 승무원이 아직까지는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나 꺼달라고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내 휴대폰에 낯선 음이 들려서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휴대폰에 연락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10년 전에 내가 미국 텍사스에 주재원으로 근무할 당시 LA의 오렌지 카운티에 소재하였던 우리 회사 고객이었던 회사의 직원 중 한 명인 카를로스였다. 당시 나의 업무는 미국 내 ATM 구매회사에 소프트웨어 개발 및 현지 설치 및 운영과 관련하여 CUSTOMER SUPPORT이었고, 카를로스는 내가 LA에 출장 가 있을 때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줬던 친구였다. 고객이었기에 나는 친절하게 대하였고 고객의 사업이 잘 되어야만 우리 기기도 많이 팔 수 있었기에 나의 개발 업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었다. 사실 주재원 기간이 5년이었고 본사에서는 한국으로 복귀하라고 하였을 때 나는 미국에 영주권을 받고 살기를 바랐었기에, 이 회사에도 영주권 스폰서십을 타진했었으나 그 당시 하고 있던 사업을 큰 은행에 모두 매각하려는 시점이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쉽게 없어졌었다. 생각해보니 10년 전이었지만 카를로스는 나와 친했었고 나를 기꺼이 사장에게 소개하여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었고 그 기회가 사라지자 많이 안타까워 했었다. 그 이후 나는 한국으로 2011년에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카를로스가 내가 캐나다로 다시 출발하는 날짜에 그것도 비행기에 타고 출발할 시점에 연락이 왔는데 연락이 온 계기도 LinkedIn이라는 SNS를 통하였던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LinkedIn은 facebook이나 Instagram, Twitter와 달리 회사 사람들이 주로 쓰는 SNS로 자신의 이력서와 현재 직장 등을 소개할 수 있고 같이 연결된 사람끼리는 Activity 등이 전달이 된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캐나다 식당 주방에서 일할 때 2019년 6월 중순쯤, 이력서를 올려놓는 작업을 하다가 LinkedIn에도 내 현황과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던 기억이 있었고, 그때 나와 연결된 지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카를로스가 그때 우리 고객사의 이름이 아닌 다른 회사의 General Manger로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역시 열심히 하는 친구는 잘 나가는구나 하고 느꼈었고 이 친구에 짧게
"Hi, my friend!", "How have you been?" "Drop me a message when you see this."라고 보냈었고
그 이후 답장이 없길래 너무 바빠서 이런 메시지도 못 보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이제야 봤는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많은 얘기를 messenger로 나눈 것이다. 한국 시각 오후 2시였으니까 캘리포니아 시각으로는 오전 10시 정도였을 것이다. 묻는 질문이 어떻게 지내느냐? 지금 뭐하느냐? 가족들은 잘 지내느냐? 등등이었고 나는 사실 그래도 얘기를 하였다. 지금 캐나다 영주권을 받아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IT 업체에 입사지원서를 계속 제출하여 취직을 하려고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카를로스는 나의 10년 전 밤새워 가면서 같이 개발하고 돌아다니며 기기를 설치하고 했던 기억이 강했었는지 나를 열심히 일하고, 신의가 있고, 똑똑한 엔지니어로 여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캐나다로 돌아가면 다시 자기한테 전화를 달라고 하였고 자기랑 할 일이 많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승무원의 휴대폰 비행모드로 변경해 달라는 안내와 함께 채팅을 마감하였다. 캐나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아, 또 이렇게 인연이 닿는구나~ 내가 그 당시 그렇게 고생했던 보람이 이렇게 나에게 또 기회가 되어 돌아오는구나!"
하면서 나에게 돌아가는 일들이 참 신기하고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나에게는 세 가지 희망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는 캘거리의 항공 IT회사에 인터뷰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두 번째는 에드먼턴의 ATM IT 회사에 실습사원이라도 갈 수 있는 기회와 세 번째 희망은 카를로스 회사와의 인연이었다. 그래도 하나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이제까지 고생했던 것이 4자 성어로 표현하기에는 이르지만 곧 이렇게 되었으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