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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Park Apr 30. 2020

나는 다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좌충우돌 캐나다 영주권 및 취업 도전기

영주권을 받기 위해 고생을 했던 1년을 첫 번째 터널 또는 축구경기의 후반전에 비유를 했었었다. 이제 캐나다에서의 취직을 두 번째 터널 또는 축구게임의 연장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캘거리 소재 항공 관련 IT회사에 이력서가 전달한 후 이틀 뒤에 소개해 준 친구에게 연락을 하였고 이메일로 자기 매니저에게 보냈다고 하였다. 이제 매니저에게 이력서가 전달되었으니 이제 영주권만 받으면 문제없이 취직이 되겠구나! 하는 막연한 바람과 함께 컴컴했던 터널 안에서 끝에 보이는 작은 한 줄기 빛을 향해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이 시기는 내가 영주권 받기 두 달쯤 전인 6월 중순이었고 매니저에게 이메일이 전달된 후 2주가 넘어갔으나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였고, 미안함을 무릅쓰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 친구 왈, "아니 아직 연락이 안 갔어요?"


흠, 이게 무슨 영문이지? 전달하고 며칠 안으로 나에게 연락이 올 거라고 믿고 있었던 그 친구도 의아했는지 자기가 매니저에게 직접 물어보겠으나 지금 출장 중이라 돌아오면 물어보겠다고 하였다.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다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대하였다. 며칠 후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전화기로 들리는 목소리가 그리 밝지는 않았다. 물어보았는데,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만 하였단다. 기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주가 지난 후 다시 이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경력은 좋아 보이는데 영주권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단다. 당연히 아직 영주권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캐나다 연방에 현재 영주권 수속 중이라고 전달하였더니 영주권 받으면 그때 인터뷰하자고 했단다. 그 친구는 자기도 면목이 없는지 미안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영주권이 없으니 합법적으로 그 회사에서 일을 시작할 수 없는 것은 맞는 말이었다. 지푸라기 같았던 캘거리 IT 업체로의 입사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주방에서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일을 하면서 영주권을 받기만 기다려야 했다.



앞에서 밝혔던 영주권은 캘거리에서 무사히 랜딩 인터뷰를 마치고 8월 15일 우편으로 수령하였다. 자, 이제 영주권도 받았으니 그 회사로 연락하여 인터뷰를 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알아보는 것만 남았다. 그 친구에게 조심스레 다시 연락을 하였고 "나, 영주권 카드 받았어요.... 매니저에게 잘 전달 부탁해요~"라고 말을 하였다.


그 친구도 자기 일처럼, "정말 축하드려요. 당장 매니저에게 얘기할게요"라고 하였다. 나는 다시 희망을 가지고 조만간 인터뷰 일정이 잡히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 그런데, 지금 회사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여 당장 고용을 하지 못하니 다음에 기회를 보자고 하였단다. 그 친구는 두 달 전에 관심이 있었을 때 영주권이 있었더라면 그때 아마 쉽게 고용이 되었을 거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고 한다. 참, 무심하기도 하였다. 회사 인사 정책이 두 달만에 바뀐단 말인가?



누구는 100군데 정도 지원해도 연락 오는 곳은 2-3 군데밖에 없었다고들 한다. 나는 겨우 10군데 정도 밖에 지원을 하지 않았으면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인가?


나는 다시 www.indeed.com을 통하여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역시 연락을 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영주권 카드를 받고 레스토랑을 그만두기로 한 시점이 9월 15일이었고 나는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 놓고 여전히 주방에서 일하던 중 9월 초에 indeed.com에서 나의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해 온 업체가 있었다. 내가 지원했던 회사들과는 무관하였고 나의 이력서를 읽어보고 자기들과 적합하다고 생각했는지 회사 사장이 직접 메시지를 보내왔고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다음날 쉬는 시간에 사장에게 연락을 하였다. 회사는 Edmonton에 있는 크지 않은 ATM 관련 비즈니스 회사였고, ATM을 일반 스토어나 공공장소에 납품하고 운영하는 회사였다. 내 경력이 대부분 ATM 관련 경력이라 이 사장도 자신들과 맞다고 생각했나 보다.



전화로 1차로 간단히 인터뷰를 하였고 언제 직접 볼 수 있냐고 하길래, 식당 사장님께 하루만 휴가를 얻을 수 있을지 여쭤 보았고, 흔쾌히 하루 잘 갔다 오라고 하셨다. 나는 주중 바쁘지 않은 목요일 날짜를 정하여 이 회사 사장에게 목요일 방문하겠다고 하였다. 드디어 목요일이 되었고 Edmonton으로 향하는 나는 모든 하늘이 파랗게 보였고 아 이제 내가 살 곳이 Edmonton 인가?라고 섣부른 예상도 하고 있었다. 캔모어에서 Edmonton까지는 약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아침에 출발하여 오후 2시쯤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구글 주소로 주위를 사진으로 확인도 하였는데 도착하니 생각보다 작은 회사였다. 조그만 사무실로 들어가니 백인들 몇 명이 나를 반겨 주었고 회사 사장 방으로 안내하였다. 사장은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고 나름대로 대답도 잘하였고,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계들도 내가 이미 접해 보았던 기계들이어서 친숙함도 있었다. 또한 제조회사 사람들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나는 인터뷰하는 동안 나한테 적합한 회사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었다. 약 1시간가량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사장은 전화를 받고 있었고 나중에 전화를 주겠다고 하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5시간 넘게 차를 운전하여 인터뷰를 보러 갔는데 인터뷰 비용 정도는 지불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거기다 점심 먹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나는 시간이 없어 점심도 굶고 인터뷰하러 갔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인터뷰 비용, 식사비가 중요한가? 그냥 나를 고용만 해 준다면 더 이상 좋을 일은 없었다.


캔모어로 출발하기 전에 H-Mart에 잠시 들려 한국분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Edmonton의 학군과 어디서 살면 좋은 지 등등 질문을 하였고 그분도 열심히 잘 설명해 주셨다.



캔모어로 돌아오는 길은 기분이 착잡하고 또한 한 줄기 희망이 있기도 하고 모호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캔모어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아무튼 첫 인터뷰라 떨리기도 하였지만, 나 자신에게 "오늘 잘했어! 한번 기다려 보자"라고 얘기했다.



돌아온 후 다음 날 이 회사 사장에게 간략하게 문자와 이메일로 감사의 뜻을 전달하였다. 감사? 그냥 나를 인터뷰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일 뿐이지만 이런 사소한 인사가 상대방에게는 강력한 인상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어느덧 식당에서 그만 둘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으나 이 회사 사장으로부터 문자나 이메일 답변이 오질 않았다. 나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하였고, 용기를 내어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관심이 있으면 언제 고용할 것인지요?"라고 물었고 돌아온 답변은 얼마를 받고 싶냐고 하였다. 나는 "최소한 6만 불(한화 5,500만 원 정도)은 받아야 합니다."라고 하였고 사장은 알겠다고 하였다. 며칠 후 한국으로 나는 돌아갔다 한 달 뒤에 돌아올 것이니 그전까지 답을 줬으면 좋겠다고 전달했고 사장도 며칠 내로 답변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나는 한 군데의 직장도 정해진 바 없이 한국행 남방항공 비행기에 9월 18일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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