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언제나 부족해진다
루미에르의 오후는
언제나 비교로 시작했다.
“경쟁사 A안은
전환율이 18% 나왔습니다.”
프레젠터의 손끝이 리모컨을 눌렀다.
스크린이 바뀌고 그래프가 겹쳐졌다.
막대는 더 높았고, 색은 더 선명했다.
“B사는 이번에 메시지를 이렇게 가져갔네요.”
문장이 화면에 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당신을 위해.
회의실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정도는 가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말했다.
조심스러운 어조였지만의미는 분명했다.
지금보다 더, 지금보다는 위로,
지금보다는 나은 쪽으로,
이지윤은
노트 위에 펜을 얹은 채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더 나은 나.그 문장은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광고에서, 포스터에서, 자기계발서에서,
마치
지금의 나는 항상 부족하다는 전제처럼.
“지윤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강태하의 목소리가
다시 회의실을 가로질렀다.
이지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스크린에는 여전히 문장이 떠 있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당신
“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숨을 고르는 시간에 가까웠다.
“이 문장을 보면
항상 한 가지가 먼저 떠올라요.”
회의실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모였다.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는 말 같아서요.”
(정적)
그 정적은 아까보다 더 무거웠다.
“사람들이
항상 더 나아져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지금의 나는 항상 실패자가 되잖아요.”
누군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
“광고는 희망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른 쪽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희망이 비교에서 시작되면,
그건 희망이라기보다
압박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이지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흐트러지지도 않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면
선택받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
“그게
정말로 사람들을 움직일까요?”
회의실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강태하는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프도, 문장도 아닌
그 너머를 보는 눈이었다.
“광고는
항상 사람을
앞으로 밀어붙여 왔죠.”
그가 입을 열었다.
“성공으로.
완벽으로.
비교의 위쪽으로.”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하지만
사람이 멈추는 순간은
대개 거기쯤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계속 비교당하고,
계속 부족하다는 말을 듣다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는 이지윤을 바라봤다.
“지윤 씨 문장이 불편했던 이유도
거기 있었어요.”
"더 나은 나를 강요하지 않아서.”
회의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정답을 찾지 못한 얼굴들이었다.
복도로 나오자
이지윤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윤새롬이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회의 때
조금 위험했어요.”
“알아요.”
“대표님이 막아주지 않았으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이지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막아주신 건 문장이었어요.”
윤새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강태하는
대표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회의 자료를 다시 넘겼지만
시선은 자꾸 한 문장에 멈췄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문장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멈춰도 된다고 말하는 문장이었다.
그는 어릴 적을 떠올렸다.
늘 비교 속에 있던 시간
누군가는
항상 더 잘했고,
자신은
항상 그 아래에 있었다.
그때 누군가 한 번만이라도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괜찮다고.
(그날 밤)
이지윤은
집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이번에는
광고 문장이 아니라
메모장을 켰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말에
익숙해졌지만,
지금의 나를
인정받는 데는
여전히 서툴다.”
그 문장을 쓰고
잠시 멈췄다.
그리고 지우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문장을 지우지 않고
남겨둔 게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광고는 위로를 멈춘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용히 자기 자신을
순위로 매기기 시작한다.
그 사실을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사람들은 왜 진심보다 전략을 먼저 묻는가.”
설득이 시작되는 순간,
관계는
조용히 어긋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