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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커라 Mar 22. 2024

제 꿈은요

밥벌이를 계속 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나의 꿈은 한결 같이 '화가'였다.

그림 그리는 걸 곧잘 했고 또, 좋아했으니까.


그러다가 10살 때였나, 교내 독후감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고

선생님으로부터 "글 잘 쓴다"는 칭찬 몇마디에 고무되어

'작가'로 꿈이 바뀌었다.


수업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짝꿍이

"넌 꿈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노벨문학상 타는 거"라고 가당치도 않게 당차게 말한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땐 참 순수했었고 당돌했었네)


그렇게 전공도 우여곡절끝에 공대에서 문학도로 바꾸게 되었고..

학과 특성상 여학생이 많았다.

소설창작론인가...

2학년때 한 노교수님께 수업을 듣는데

"느그들, 글 쓴다고 하면서 놀고 먹으면 안돼. (일종의 '취집'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음)

돈을 버는 과정에서 글도 나오고 삶도 나오는기다~~"


이상하게 그 말이 '꼰대'가 아닌

정말 뼈가 시리게 우리를 위한 간절한 조언이라고 느꼈다.

교수님의 그 말씀은 진심으로 우리를

이 사회에 필요한 작가이자 글쓰는 노동자로 배출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나이 마흔을 넘긴 지금,

이제 내 또래들은 그런 질문도 하지 않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또는 내가 나에게

"꿈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밥벌이.'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하루 하루 밥벌이의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어린 시절 꾸던 꿈이


애틋하고 허망했었다는 생각과 부딪친다.


그 꿈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고

그 꿈이 오늘의 나를 괴롭힌다.


조직, 직장은 나에게 한달의 생활비, 양식, 그리고 자존감과 조직원이라는 자부심을 

매달 일정하게 주고 있고


그만큼의 압박과 내적 갈등, 자괴감, 무력감도 매달 넘치게 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작은 재주로 내 능력치보다도 넘치게 인정받고 보상받고 있다고

나를 달래고 속이는 가운데,


화가를 꿈꾸던 작은 아이는

이제 면피와 피할 수 없는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자존감과 자괴감 사이에서 줄다리기한다.


아이들을 위해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사람들에게 커피를 사고

밥을 사며

통장으로 매달 입금되는 숫자에 감사하고

또 그 숫자에 눌려죽어가는 꿈을 동시에 꾼다.


월급은 누가 뭐래도내 한달치 삶을 평가하는

가장 투명한 척도이자

나의 숭고한 로동의 대가다.


통장에 찍히는 아라비아 숫자들이 

잘 갈린 낫보다도 더 날카롭고

마약보다 더 (안먹어봐서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으로) 중독적이라는 사실을

25일 ATM 기계에서 매달 확인 중이다.


그러나 난 아직도 돈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형상화가 어려운 세계를 이뤄보고 싶은

생각들이 있다.

...

이런걸 "욕심"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마흔둥이의 "하고 싶은 것"들은 욕심이다.

순수한 열정? 학문에 대한 갈망?


절대 아니지.


더 잘나 보이고 싶고

더 도드라지고 싶은 욕망.


그런 것들이 삶의 원동력임을

알기에 욕심껏 살고 있다.


그러나 마흔둥이에 사회생활 10년차를 넘기면서

겁도 많아졌다.


채널별로 골고루 운영하던 모든 개인 SNS를 다 없애고

딱 하나 PR용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이젠 얼굴도, 직업도 은은하게 가리게 된다.

그렇다고 티를 안내면 PR도 안되니

소심한 회색분자로 운영하고 있다.


혹여나 관종으로 보일까,

어설픈 지성인 흉내쟁이로 보일까,


이러한 고민은 결국 나는 엄청난 지성인이 아니기에

귀여운 고민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지만.


나도 키보드질로 먹고 살기에

글자 하나, 문장 한 줄의 무서움을 잘 안다.


무서운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니

매일 간이 쪼그라들고 있다.


부족한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이

월급만이 아니길 ...


자신감과 자뻑의 근육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


키보드 워리어가 아닌

행동과 실천의 지성인으로 나아가길...


그나마 위안이 되는 한가지는

그토록 바라던 등단을 했고

지금 밥벌이이자 내 월급의 근원이

글쓰기에 있다는 것.


어린 시절 꿈과 전공과 밥벌이를 일치시킨 내 자신에게

미약하나마 자랑스러움이 있다는 것.


자랑스러움이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자리잡도록

자뻑 근육을 더 키워나가련다.


(계약을 연장해준다는 회사의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무자비한 길들이기에

한껏 쪼그라든 새벽에 남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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