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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Apr 06. 2024

프라다를 벗어던지고.

너의 곁에.

'나 이제 정말 간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은 겨울의 마지막 찬 바람과 눈이 내린 3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저와 남편이 얼른 스키장으로 가자고 아이를 꼬셔봤지만.. '이미 겨울 내내 많이 탔어. 그만 탈래!'라며 소파 위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정말 부모가 하자는 대로, 가자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틴에이저의 초입에 접어든 것 같죠?)

결국 세 식구가 모두 쇼파위에 모여 재미있는 영화를 함께 보기로 했습니다. 최신 영화를 찾으며 OTT안을 위아래로 오가던 중, 저와 남편이 동시에 "저 영화 보자!!"를 외쳤습니다. 

바로 뉴욕 배경의,  아이에게 해 줄 관련 에피소드들도 있어서 재미있겠다 싶었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였어요.


영화는 벌써 2006년 작품이라 2000년대 초반의 뉴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거진 '보그'에서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1년간 실제로 일했던 로렌 와이스버거가 퇴사 후 펴낸 소설이 원작이라, 영화 개봉 이후 더더욱 유명해진 그녀(안나 윈투어)에 대해서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벌써 4년 전 즈음 전의 어느 날의 이야기지만, 영화 속 미란다 프리슬리의 실제 모델인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트라이베카에서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사무실이 바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위치하고 있기도 해서 간간이 보인다는 소문은 들었었는데, 마침 그날 친구와 함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커피를 사러 가자며 걷고 있는데 정면에서 선글라스를 낀... 어디서 많이 본 분이 오시지 않겠어요? 유명인을 보아도 티 내지 않는 뉴욕의 암묵적인 룰 때문에 티도 못 내고 속으로만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가 지나간 뒤 친구와 마주 보고 "봤어?? 맞지!!"라며 멀어지는 뒷모습을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며 호들갑을 떤 아침이 떠올랐습니다.  

실제 보았던 날도, 이런 검은색 롱 드레스 같은 것을 입고 있었던 그녀네요.

그렇게 이런저런 추억을 되살려볼 겸 선택한 영화였는데 끝까지 다 보고 난 뒤, 처음 볼 때도 함께였던 남편과 저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시간이 거의 2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련된 영화 속 불멸의 스타일링들이었고 (역시, 클래식은 영원합니다. 큰돈 쓸 때는 100년 가도 변치 않을 아이템을 사는 것으로...),

클래식은 영원하다의 살아있는 예 아닌가요:)

두 번째 이유는 저와 남편이 기억하고 있는 결말과 영화속 결말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미있게 보았고, 분명히 함께 본 것도 기억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기억에서 사라진 진짜 결말을 보고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패션과는 거리가 먼 아이비리그 졸업생으로 설정되어 있는 앤디(앤 해서웨이)는 잡지사에 들어가게 되어 처음에는 속으로 패션업계의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패션과 패션계의 모두가 모두가 과한 호들갑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그 중요성을 인정한 뒤 무서운 속도로 달라지는 패션을 선보이는 씬은 다들 아마 기억하고 계실 듯합니다. 공부쟁이 너드가 뉴욕 5번가의 패션피플로 자리 잡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앤디의 스타일링 장면은 아이언맨의 변신 장면만큼이나 짜릿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제 기억 속 줄거리와 한치도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어요.

2024년에 입고 다녀도 하나도 안 촌스러울 모습들이죠. 그만큼 멋진 스타일링이었던 것 같습니다.

격동의 적응기를 보낸 신입 어시스턴트 앤디는 여러 에피소드 끝에 본의 아니게(?) 똑똑한 머리를 인정받아 선배를 제치고 미란다를 보좌하는 역할로 파리 패션 위크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미란다의 인간적인 애환을 마주하며 측은지심이 생겨 그녀를 돕기 위해 더더욱 애쓰죠. 하지만, 곧 미란다가 자신의 성취를 지키기 위해서 오랜 기간 곁에서 보좌한 다른 직원의 일생의 기회도 무참히 짓밟았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분노합니다. 미란다의 행동을 비난하는 앤디에게, "너도 마찬가지야. 너 역시도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느냐, 이런 선택은 불가피했어.'라 말하죠.

Andy Sachs:
But what if this isn't what I want?
I mean what If I don't wanna live the way you live?
앤디 :그런데 만약, 이런 삶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당신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요?

Miranda Priestly :
Oh, don't be ridiculous. Andrea.
Everybody wants this. Everybody wants to be us.  
미란다 : 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안드레아.
모두가 이런 삶을 원해. 모두가 우리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답정너로 상대의 인생철학까지 정해버리는 미란다를 쳐다보는 앤디의 사진 속 이글거림이 느껴지시나요. 그 후 프레스에 둘러싸여서 앤디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는 미란다를 뒤로하고, 징징 울리는 전화기를 분수 속으로 시원하게 지고 휘익 돌아서서 걸어가는 앤디를 줌 아웃하는 장면이 제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얼마나 통쾌하던지요.

 그래서 과거 제 기억 속 이 영화의 메시지는 [비인간적인 조직이나 상사와의 회사 생활로부터의 탈출!]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영화의 결말은 제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는 한 자락도 존재하지 않던, 파리에서 돌아온 후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앤디는 그 길로 미란다의 어시스턴트를 그만두고 자신의 원래의 목표를 향해 신문사로 인터뷰를 보러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면접 중 이전 회사를 어떻게 그만두었는지 질문을 받죠. 끝은 별로 좋지 않았다고 주저하는 듯 말하는 앤디에게 인터뷰를 보던 미래의 보스는 자신이 직접 미란다에게 받은 레퍼런스 체크 결과를 앤디에게 알려주죠.


 그 아이는 날 매우 실망시켰지만,
그 애를 뽑지 않는다면
당신은 후회하게 될 거예요.
-미란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앤디는, 길 건너편에서 차에 오르는 미란다와 눈이 마주칩니다. 앤디를 보며 무표정한 얼굴이었던 미란다는, 차에 오른 후에 옅은 미소를 띱니다. 그리고 앤디 역시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른 길을 가죠. 서로의 다른 삶을 인정하고, 마음의 응원을 보내는 것 처럼 느껴진 마지막 씬이 이 영화의 진짜 엔딩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기억 속의 오류는 납득이 가지 않는 상사의 지시에 괴로워하며 일하던 시기에 보았던 영화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두고 탈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절함(?)이 시원하게 전화기와 함께 날려버리고 떠나는 파리를 떠나는 앤디의 모습을 만나 기억속 결말 마저 바꾸어 놓은 거죠. 이렇게 사회 초년생의 눈으로 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그저 '통쾌함'으로 기억되는 영화와였다면, 또 한번의 생의 전환을 지나며 본 영화의 메시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 사회 내에서 모두가 선망하고 추종하는 삶의 가치를 향하며,
이를 존중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중요한 가치를 따라서 사는 삶.


같은 영화라도 이렇게 보는 시기에 따라 다른 메시지가 남는다니. 참 재미있죠?

(이래서 고전은 다시 보고, 다시 읽고 해도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나 봅니다!)

뉴욕을 대표하는 패션을 포함한 풍부한 문화적 자원들을 이 도시가 늘 강조하는 '다양성'의 가치와 버무린 완벽한 이야기와 결말이었어요. 또 한편으로 이 영화의 메시지가 새삼 제게 더 콕 다가와 박힌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저 역시, 모두가 중요하다 말하는 가치가 아닌 제게 중요한 가치를 향해 가기로 어떤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프라다를 벗어버린 앤디처럼 말이죠.




“엄마, 이거 가족 캘린더에 [미팅]이라고 쓰여있는 게 뭐야? 다시 회사 가는 거야??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ㅠㅠ!!.”

작년 9월 어느 날, 아이가 화가 난 큰 목소리로 방에서 뛰어나왔습니다.

4월을 끝으로 귀국 후 이직했던 회사를 정리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아이와 함께 여름방학을 보낸 뒤, 슬금슬금 다음 스텝을 정하며 한 회사의 인사부와 잡은 미팅이 화근이었습니다. 개인 캘린더에 업데이트해둔다는 게... 가족 모두의 공유 캘린더에 적어 넣은 바람에 아이가 이것을 본 것이었죠. 내일 당장이라도 출근인가 싶어 울먹거리던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미국에서 처럼 재택이나, 탄력 근무 같은 형태로는 어떨지 이야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살살 달래 볼까 했죠. 여름 방학 동안 딱풀처럼 붙어 지낸 시간 동안 잔잔하게 '엄마 나랑 계속 이렇게 놀면 좋겠어. 엄마 나랑 맨날 있자.'라고 이야기하는 아이였기에 어느 정도의 반대는 예상했지만, 잘 설득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크게 개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물꼬를 터보려던 대화는 알고 보니 활화산에 닿아있는 다이너마이트였습니다.

“그것도 싫어!! 그럼 엄마, 또 맨날 [이것만 하고 놀아줄게]라고 백 번 말할 거잖아.

엄만.... 나만 봐준 적이 없잖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랑만 놀아. 나만 봐줘."

이 말을 듣고, 제 마음속의 무게추가 쿵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이의 말에 틀린 구석이 없었거든요.


아이가 태어난 이후, 6개월 무렵의 복직 당일부터 펄펄 끓는 열로 엄마의 부재를 온몸으로 소리치는 아이를 보면서 눈물이 났지만 쉽게 그만둘 수 없던 회사고 일이었습니다. 담당해야 하는 일의 폭이 넓고, 관계된 부서들이 많은 업무를 하고 있었기에 제가 출산 휴가를 떠난 동안 팀원들이 느껴야 했을 공백에 대한 미안함은 모성을 넘었었습니다. 제 출산휴가 동안 기존 팀원들의 퇴사도 잇달아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는 고생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일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도 중요했지만, 지난 기간 쌓은 경력과 동료들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지키는 것도 중요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정말 좀 재미있는 자료를 다루며 큰 예산을 굴려보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된 연차였고, 여러 후배들의 어시스턴트를 받으며 다양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시기기도 했기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오랜 기간 저를 곁에서 지켜본 남편 역시, 아이를 낳고 바로 회사로 나가고 싶어 할 줄 알았다고 믿는 마음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을 정도로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저는 밤새 일하면서도 재미있다고 했던 워커홀릭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모두 다 하고 있으니 저 또한 당연히 하면 된다 생각한  '워킹맘'의 삶에 몇 가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등장했습니다. 우선 제가 일반적인 케이스보다는 좀 어려운 출산을 겪으며 출산휴가에 이어 따로 병가를 내야 할 정도로 몸이 많이 상해버렸습니다. 이전처럼 밤새 일하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니 쉬지 않고 감기 몸살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가 100이 아닌 200,300을 내놓아야 아이가 없던 시절만큼의 표면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온전한 도움이 있다고 치더라도, 엄마로, 아내로, 조직의 일원으로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의 기본 값은 훨씬 높아졌던거죠.  


업무 강도가 낮고, 출퇴근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일 대신 정신없이 다이내믹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있는 일 '화장품'이라는 필드가 재미있어 선택한 과거의 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2013-4년부터 K뷰티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한국을 벤치마킹한 제품들이 글로벌 브랜드에 출시되는 결과를 마주하며 한국의 패션과 뷰티가 전 세계 유례없이 까다로운 소비자와, 이에 맞춘 브랜드들을 가진 특별한 소비재시장이라는 것이 서서히 알려지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시장 환경에 발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가기 위한 높은 업무 강도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요. 야근의 반복 속에서 잠들기 전 아이 얼굴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시간들이 지나갔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이는 매일 새로워졌습니다. 매일 매일 자라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 변화들을 다 눈에 넣을 수는 없었고, 이런 아쉬움들이 마음 속에 계속 차오르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출산 후 복직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잡힐 줄 알았던 워킹맘 라이프의 밸런스는, 매일 달라지는 아이 곁에서는 영원히 잡기 어려운 유니콘 같은 그 무언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여러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책도 읽어보며 방법을 찾아보며 해답을 찾아 헤메었어요.


그런데, 그런 고민들이 순식간에 해소된 것은 달라진 제 주변환경이었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이 가득했지만, 아이에 관한 일이라면 회사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 '당연한' 뉴욕에서 많은 엄마들이 일을 하면서도 전업주부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학교 행사나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이벤트에 다들 충분히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어린 영아들은 부모와 함께 출근해서 사무실의 회의실에서 함께 있다가 퇴근하는 회사들도 있었고, 온라인 미팅 중에 불쑥 등장하는 자녀들이 딱딱한 미팅에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기본값인 곳에서는 그간 제가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고민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행사나, 주말의 놀이터에 아빠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게 여겨지는 육아 환경은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로 '일을 하느냐 or 하지 않느냐' 보다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가 더 고민의 바탕을 이루었습니다. 그 안에서, 아이 역시 '일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다른 친구들을 보며 계속해 나갔죠. 덕분에, 다시 재택이라는 형태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타지에서도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일 하는 엄마'에 대한 많이 다른 사회적인 시선과 기본값으로 깔려있는 배려들 속에서 제가 걱정할 것은 저의 체력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며 예상보다 빨라진 제 이직과 출근에도 이전보다는 걱정이 덜했습니다. 그 사이 아이도 자랐고,  일하는 엄마의 모습에 이제 완전히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로부터 희망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8살이면 아이가 이제 곧,
엄마가 없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할 거예요.
학교에서 직업을 배우고 나면,
일하는 엄마를 더 좋아하는 얘들도 있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따뜻하게 호로록 마신 우동 국물이 목 안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것처럼 마음이 뜨끈해졌습니다.


아아..그런데 안심은 일렀나봅니다.

처음에는 웃으며 보내주던 아이가 제 월급날 아이 손에 쥐어주는 뇌물도 마다하고 ‘이제 가지고 싶은 것 없으니 회사 그만 가. 아니면 미국에서처럼 집에서 일하면서 나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이 있어서 외롭지 않으면 덜할까 생각하며 당장 낳아줄 수는 없으니, 강아지 동생을 대신 데려왔지만..... 이 새로 온 우리 집 막내는 누나랑 노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 둘이 함께 저만 따라다니게 아닙니까. 하하하하하하

(아이랑 놀기를 바라며 강아지 입양을 생각하시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고 부탁드립니다 ㅎㅎㅎ)

제가 화장실을 가도 따라다니는 개아들이네요 ㅎㅎㅎ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아이와 상관 없이 고분군투하며 일을 놓지 않고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꽃을 피우고 싶은 제 마음은 변치 않았지만, 한층 구체적으로 자기주장을 명확하게 적절한 이유를 꺼낼 줄 아는 아이의 입을 통해서 나온 '엄마는, 나만 보아준 적 없잖아.'라는 이 한마디는 제 인생의 여러 가치들과 기준들 중 무엇이 중요한지 하나하나 짚어보게 만들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인정받고 ,

가정 내에서는 아이와 남편에게 사랑받는

그런 여성이자 엄마이고 싶은 마음.

이 마음에 변화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 중, 우리 가족만이 가진 자원과 특이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다른 가정에는 가능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해결되기도 한다고 알려진 이슈들도 모두에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하는 엄마라 모두 참여하기 어려운 학교 행사를 그럴수도 있는 일로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와 부모가 있는 가정도 있는가 하면, 눈물 먼저 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일하는 엄마의 모습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하교 후 엄마가 없는 허전함을 메꾸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되려 더 큰 자율성과 독립심을 키워가는 아이들도 많죠. 하지만, 부모의 빈자리가 그저 큰 슬픔과 허전함으로 다가오는 아이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마음이 각자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크고 있고, 이를 대하는 부모들의 마음의 역시 서로 다른 형태로 튼튼하기도 약하기도 합니다. 우린 다 다르니까요. 신문의 사회면에 나오는 용어로는 '맞벌이 가정'이라는 한 단어로 응축되는 우리였지만, 이 안에는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가정들이,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외부의 기준에 맞춰 우리를,저를 보는 것 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들을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부모인 우리의 일과 직업환경,
아이의 성격과 아이가 속한 학교의 분위기,
우리 가족 모두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기대되는 각자의 역할들.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뒤, 달라진 사회적 환경과 변화한 개인적 상황들을 모두 찬찬히 살펴보며 그 안에서 부모인 우리와 아이의 마음이 어떠한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재택에서 출근으로 업무 형태가 바뀐 저였기에 물리적인 공백으로 생긴 허전함은 당연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영어와 한국어의 사이에서 적절한 자신의 자리를 찾느라 홀로 헤매고 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압도적으로 아빠보다는 엄마의 학교 활동 참여가 높고, 엄마가 아이 곁에서 교우관계까지 살뜰히 챙기지 못하면 방과 후에 친구들을 만나기 힘든 아이의 현재 학교 생활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일하면 그럴 수도 있어.이해해'라고 덤덤하게 말하기보다는 '미안해'라며 눈물이 먼저 나오는 제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나 오랜 기간 회사 생활을 하신 선배님들 중에는 친정 부모님이 근거리에 사시면서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며 딸의 지속적인 사회생활을 응원하시는 경우가 가장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의 경우 그 모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습니다. 부모 중 한쪽이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있는 일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좀 더  유동적인 일을 하며 육아에 좀 더 힘을 보태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또한 저나 남편 모두에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죠. 길어지는 커리어와 묵직해지는 제 연봉의 무게만큼,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도 해가 갈수록 그 무게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안에서 인정 받는 누군가로 사는 것에서 얻는 희열이 , 아이의 매일을 함께 지켜보며 순간순간 드러내는 아이의 마음을 곁에서 함께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제 마음속의 미안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 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어제의 의미, 엊그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내일의 의미도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이다.
여기가 길이고, 우리 집 현관이고, 이 사람이 엄마이고, 아빠이고, 지금은 낮이거나 밤인 것이다.

-'나폴리 4부작' 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중 / 엘레나 페란테


아이에게 흐르는 시간의 빠르기는 성인인 제게 흐르는 속도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아무리 날짜를 세어도, 일 년이 흐르는 것이 더디고 더뎠으니까요. 어린 시절에 배운 여러 가지 것들이 지금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지금 아이가 지나고 있는 시간의 중요성은 이미 어른이 된 제 스스로가 그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엄마, 회사 가지 마."라며 울고 매달렸던 아이가 크면 언젠가는 눈물 대신 저를 자랑스럽게 바라봐 주기를 기다린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이의 눈과 이야기를 들으며.

[그 언젠가]를 생각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으로 사는 길에 좀 더 서 있고 싶지만, 지금 아이가 내미는 손을 잡고 곁에 서주지 않는다면 언젠가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미래가 왔을 때 아이는 더 이상 제 손을 잡고 싶지 않을 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커리어를 이어가는 동안 아이는

늘 같은 말을, 아주 오래 반복하고 있었으니까요.


 "I WANT YOU to be with me."


딸을 낳고 키우게 되며 이 아이가 자라서 사회인이 될 시기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이 사회적 인정을 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어디에서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존재로, 역량을 펼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려면 그만큼 저는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죠. 그런데, 정작 그 과정에서 모든 선택의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할 [제 자신의 행복]과, 제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아이와의 시간]을 계속 다음, 다음으로... 좀 더 나중으로 미루고 있었던거죠. 모두가 저의 선택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어떤 결과]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것만으로 '나'도 분명 행복한지 물었을 때 '반드시 그럴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는 일깨워 준, 진실이었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엔딩은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오래된 가죽 재킷과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본래의 자신의 스타일로 돌아간 앤디가 은은하게 미소 짓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누구나 바라는 삶, 모두가 가치 있다고 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주관에 맞는 삶을 선택한 앤디였기에 프라다가 아니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엔딩 신

영화 속의 앤디처럼.

그날 밤 저는, 10년의 고민을 내려놓고 지금의 우리에게 맞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회사의 최종 라운드까지 진행된 면접에 갈 수 없게되어 죄송하다는 메일을 보내고, 아이의 학교 담임 선생님께는 반의 여러 행사를 돕는 학부모 역할로 지원한다는 신청서 보냈습니다. 사회 속의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의 내가 아닌, 아이 곁의 엄마 역할로 사는 시간을 택했습니다.


누구나 원하고 과거의 저 또한 꿈꾸었던 어떤 직함이 써져 있는 명함을 내려놓았습니다. 링크드인의 프로필 속 직위 하나로 간단히 저라는 사람의 효용성이 증명되는 경우도 이제 더 이상은 없죠. 고급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와 유명한 셰프의 음식이 함께하는 이벤트도, 통장에 꽂히는 제 월급만큼 자유롭던 씀씀이도 줄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 출근해야 하는 회사라는 곳에서의 일은 적어도 지금의 제게는 더이상 선택 가능한 삶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대신 학교가 끝나면 기다리는 저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어 내려오는 오후시간 아이의 얼굴을 얻었습니다. 삑삑 거리는 아이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있는 순간이 즐거운 제가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품을 파고들어 애교를 부리며 지난 시간 못 부린 응석을 채우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이가 기다린다며 동동거리는 저녁 퇴근길 대신, 오늘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일까 고민하는 저녁 시간에 감사하고 있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쌓고 있는 아이와의 시간과 매일의 에피소드들이 우리 가족의 마음을 채우는 날들이 누군가에게는 커리어의 공백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이라는 그림 안에서 이 시간들이 예쁜 색으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엄마'라는 이름과 역할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제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의 방향으로 더 열심히, 더 충실하게 채워나가 보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속의 사소한 기쁨들이 모여 만들 아름다운 그림을 생각하며 말이죠.


"I imagine happiness like needlepoint.
Dots of color, precious moments placed next to each other as time passes,
small joys doled out over a lifetime." …
"You look back, after forty or fifty years,and you see the most beautiful picture."  

난 행복이란, 십자수 같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중한 순간들과
색을 가진 점들이
서로서로 나란히 늘어서 지나가고
작은 기쁨들은 일생에 걸쳐 흩뿌려지죠.....
40,50년 후에 되돌아보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될 거예요.

-The secret life of sunflowers
by Marta Moln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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