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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Apr 12. 2024

타이거 맘과 헬리콥터 맘. 그리고.

너의 맘(heart)

재미있는 단어 하나와 마주쳤습니다.

Snowplow Parents

[제설차량]이라는 뜻의 Snowplow 뒤에 붙은 Parents '부모'라는 단어가 참 이질적이었는데요, 그 뜻을 알고 보니 더 재미있습니다.

Elwood Watson, Ph.D.의 Medium


 Snowplow Parents (제설차량 부모) 란.. 말 그대로, 아이 앞에 쌓인 산더미 같은 눈을 쓸어 치워 주는 부모. 즉 아이 앞에 놓인 어떤 문제와 장애도 싹 해치우고 깨끗한 길만 걷게 해 주려는 부모들이 양육 스타일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bulldozer parenting (불도저 양육스타일) 또는 lawnmower parenting (잔디깎이 같은 양육 스타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해요.


이 특이한 단어가 생긴 배경에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행된 온라인을 통한 성적 통보가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2011년부터 online grade book이 시행되기 시작한 뒤, 성적이 공지되자마자 학생과 학부모들의 문의와 항의가 빗발쳐서 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고충 역시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미 고교를 졸업한 성인이나 다름없는 대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뉴스에서 이런 사례를 보고 어이없다 생각했는데, 웬걸요. 대학 가면 독립시킨다고 생각한 미국에서도 다르지 않은 것 같죠?

출처 : 조선일보 2023.10.12자 기사 [초등교인 줄? “학사 문의, 부모님 아닌 본인이” 공지한 대학교]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더욱 급진적으로 온라인을 통한 과제물 공지, 시험결과 확인 또는 성적 확인과 같은 일들이 기본으로 이루어지면서 아이를 키우는 각 가정마다 많은 이유로 애를 먹었습니다. 저학년들의 경우 일일이 부모가 다 챙겨주지 않으면 수업에 접속을 하거나 과제물을 확인하고 업데이트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 반드시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지요. 좀 더 큰 학생들의 경우 수업 내용이나 결과를 부모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데 따른 불화도 상당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는 재난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들 어떻게든 지나갔다.. 했는데, 한번 생겨난 시스템은 사라지지 않고 이제 기본값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한 때 저희 꼬마가 다녔던 한국의 수학 학원만 해도, 정규 수업 시간 외에 온라인으로 자가 학습을 하며 문제를 풀고, 푼 문제는 직접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선생님의 채점을 기다리고 테스트 결과 역시 온라인 플랫폼에서 부모가 직접 확인하게 해 두었으니까요.


이렇다 보니 최근 많은 학생들이 각종 테크놀로지와 부모의 도움에 과하게 기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심화된 일부 가정의 경우 이미 대학에 입학한 자녀들의 성적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과한 나머지 자녀들로 하여금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힘"을 부모에게 내주게끔 강요하고 있기도 한다고 하네요. (미국의 경우, 대학생인 학생의 부모가 학생의 의성적 열람을 원할 경우 이에 대한 자녀 본인의 동의 서명이 제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부 유학생들이 온라인 시험의 경우 시험 전문가를 과외 선생님처럼 고용하여 대리시험을 치게 하여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는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가 들리기도 합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겠지만... 없지도 않겠다 싶은 현실이죠.


불도저로 장애물이랑 장애물은 다 싹 밀어버리고,

잔디 깎기 기계로 평평하고 고른 앞길을 만들어 주고,

산더미 같이 쌓인 눈도 시원하게 치워버리는….

그런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내 아이가 걸어가길 바라는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이 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아이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표를 향한 부모의 노력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이 참 다르고 미국과 한국은 참 같은 듯 다른 면이 많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자녀들의 성적이나 학교, 직장 등이 자연스럽게 자랑이 되고는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자녀가 성장하고 나면 자녀가 결혼한 배우자, 사는 집, 동네 등으로 기준점은 변화하지만 여전히 '내 자녀의 삶'에 대한 언급이 많은 이유는 그건 마치 아이의 삶 그 자체가 부모가 일구어낸 어떤 인생의 결과물처럼 여겨지기 문화적 특수성 때문이죠. 전반적으로 한국 가정의 엄마들의 경우 서양의 엄마들보다 훨씬 더 자식의 인생을 본인 삶의 일부분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와 같은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아이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돕기 위해 애쓰는 삶이, 한국 엄마를 포함한 아시안 엄마들의 기본값이 되어 있기도 하고요.


이런 아시아의 부모를 떠올리면 [타이거맘]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2011년에 등장해서 벌써 10여 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이 타이거맘...이라는 단어는, 작가이자 예일대 법대 교수인 중국인 에이미 추아 (Amy Chua)가 미국에서 자신의 두 딸을 키우는 경험을 회고한 책 “호랑이 엄마의 군가”(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에서 처음 사용이 되었던 용어입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아이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서구식 양육보다 성취를 우선시하는 중국식 양육을 옹호하고 있죠. 책이 발간된 뒤, 그녀의 이런 육아 방식이 한국에도 굉장히 일반적인 육아 형태였기 때문에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두 달이 예일대& 하버드대에 입학한 것도 한몫했겠죠?)



타이거 맘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학업적인 성취와 그에 따른 성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성공을 향해 달리고, 그 과정에 필요한 요소들을 아이가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지만 동시에 무서울 정도로 아이가 성취해 낸 결과에 대해 엄격하죠,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투자와 열의, 학업성적에 대한 부모와 아이 모두의 집중을 이끌어내는 좋은 결과 못지않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부분 역시 상당합니다.

타이거 맘으로 대표되는 아시아의 훈육 방식은 정해진 바운더리 안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자유를 허용하기도 합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 내에서 규정하는 암묵적인 룰에 따라 어른의 말에 '토 달지 않고' 따르면서 이를 존중하는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역시 가정과 사회 내에서 아이들에게 부모가 기대하는 부분입니다.


반면, 이런 타이거맘의 반대 스펙트럼에 위치하고 있는 것'스칸디맘'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양육방식입니다. 위계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서양에서는 자아 표현과 개성의 극대화가 교육의 현장이나 육아, 훈육의 현장에서도 매우 강조되는 가치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장려받는 아이들은 아이와 어른 간의 나이 차이에 의한 심리적 거리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아시안 부모의 관점으로 보자면 부모님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에게도 존경심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면이 있기도 합니다.

아직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자랄 경우, 자신이 가진 감정과 의견 표현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유소년기에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표현의 권리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죠.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위계를 벗어난 토론과 논의가 가능한 문화는 가정 내 부모와 자식 간의 서로에 대한 존중을 형성합니다. 결과보다는 무언가를 해내는 과정에서 많은 칭찬을 통해 아이가 감정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아이가 완벽한 성적을 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해낸 부분에 대한 칭찬에 비중을 더 싣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점이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듯 정해져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테크닉을 기르는 데는 어려움이 있고, 특정한 성취를 이루어내는 다소 느슨한 목표 의식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날 수도 있죠.


1980년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저 역시 전통적인 아시안의 육아방식으로 자랐습니다. 학업정인 성취가 중요했고, 부모님의 말씀은 다 이유가 있으니 반대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그대로 따르는 것이 기본이었죠. 그런데 그런 제가 정작 제 아이의 '훈육'에 발걸음을 떼던 시점에 제가 자란 환경과 정반대의 양육방식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제 몸에 배어있는 전통적인 아시안 부모와 주변의 친한 엄마 사람들이 모두 서양의 엄마들인 상황 속에서 미묘한 내적 갈등과 문화적 충돌이 이어졌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포옹과 키스를 하며, 넘어지는 아이를 향해서도 "My love, are you OK? " 라 말하고, 아이가 일어나기만 해도 "Good Job!! You can do it, my love"라고 사소하더라도 긍정적인 언어들을 24시간 마르지 않는 샘에서 물을 길어내듯 꺼내는 친구 곁에서  "그것 봐, 에그...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지."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제 모습을 보며 묘한 자괴감이 들고는 했으니까요.

어느 날인가는, 뉴욕에서 잘 나가는 스타트업의 CEO로 일하는 친구 마이클(가명)이 신규입사자와 밥을 먹다가 취직하고 나서야 살면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칭찬을 받았다는 중국계 직원의 이야기에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부모님께 칭찬을 받았다는데... 아시아에서는 보통 이래?? "라는 질문을 제게 한 적이 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늘 "그래 이건 잘했지만..."으로 끝나는 짧은 칭찬과(때로는 그마저도 없이) 거기에 이어지는 지적과 개선사항을 듣는 것이 더 익숙한 제가 이들의 시선에서는 참 낯설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잘한다, 사랑한다 말 한마디에 더 신이 난 듯 작은 어깨가 쭉쭉 펴지는 아이와 지난 제 유년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더해 다섯 살 아이를 바라보면서 칭찬과 사랑을 더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자 했던 5년 전 그날의 다짐은 이렇게 글로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잘하고 있다.", "열심히 해 "라는 말과 함께 아이의 등을 두드려 주기만 할 뿐 어떤 기준을 설정하여 이를 향해 아이를 끌고 가려하지는 않았던 우리였습니다. 이미 저나 남편의 몸에 익어있고, 심지어 일하면서 더 심화된 '목표 지향적인 특성'들이 육아를 하면서도 발현되어 아이의 숨통을 조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1과 -1을 더하면 0이 되듯, 의도적으로 더 반대의 방향으로 걷고자 애쓰면 중간 즈음에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하며 말이죠.


그런데, 기본적인 훈육의 시기를 지나 '교육'으로 접어들며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또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도래한 코로나로 인해 시작된  온라인 클래스를 통해 각 가정의 교육과 훈육의 차이를 극명하게 접하며 그동안 우리가 키워온 방식이 맞는지, 계속 이대로 가도 될지 깊은 고민에 휩싸였어요.


한국에서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선행학습을 하는 친구들의 아이들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며 아이의 어설픈 글쓰기 속 수많은 오타와, 찌글찌글 지렁이 기어가는 글씨들의 향연을 보며 걱정이 늘어가기도 했죠. 그리고 그즈음 같은 반에는 마침 믿을 수 없는 너무나 깔끔한 글씨와 유려한 작문 실력을 보여주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이런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후에 친해지고 보니 Korean Amerian인 이민 3세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내나라도 아닌 곳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으려면... 이들보다 더 뛰어나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가 너무 느슨하게 살았나.'라는 걱정과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이의 학업적인 성취는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불안 요소를 줄여줄 '수도' 있는 셈이기에 수많은 아시안 부모들이 문화적 환경과 전혀 다른 미국에서도  '타이거맘'에 가까운 양육방식을 고수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엄격한 훈육이란 결국 생존의 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또 부모자식 간의 세대차이나, 문화차이 이상의 심각한 갈등으로 빚어지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한국인 부모들이 강조하는 가치가, 이미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그 무엇일 수 있으니까요. 아시안 부모의 높은 기준과 이에 대한 노력을 요구하는 모습 속에서 주변의 친구들이 가진 부모의 모습과 다른 점에 좌절하고 자신이 부모의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는 점에 실망하며 방황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자녀들의 이야기도 낯선 스토리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타운에서 자라며 유복한 가정환경에 사립학교를 다니던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한인 여고생의 자살을 둘러싸고, 해당 사립학교의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들을 만난 교수님의 인터뷰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다.
학교 성적(performance)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가혹하다.
(심지어) 하버드, 예일대에 다니는 (아시안) 학생들도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패에 대한 강박관념이 많다
- 보스턴 대학 사회사업학과
함혜욱 교수 인터뷰 중*-
(보스턴코리아  2019-06-13 기사)


비슷한 다른 예로, 인정받는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Jim Lee의 인터뷰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서울을 떠나 미국 오하이오로 이민 가서 자라며 의대를 가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맞서야 했던 그는, 유년시절과 양육 환경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합니다.


In a Korean household, fear of failure is a big thing, right? That you won't get the good grades, you wont' get into medical school, you won't be a success in life.

"한국 가정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받거나, 의대에 갈 수 없거나, 삶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실패에 대한 공포는 정말 커요."

의사였던 그의 부모 역시, 그가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의대에 가기를 바랐었기에 그의 오랜 꿈이었던 만화가가 되기까지는 엄청난 부모의 반대와 그의 의지를 증명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다섯 아이의 부모가 된 그는, 지금 자신의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보며 행복하다고 말하죠. 아시안 부모 아래서 자라며 부여받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원하는 바를 위해 부모를 상대로 투쟁해야 했던 그 였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https://youtu.be/wywU0K8BTME?si=Sz1QLNQN0YzYVga7

Jim Lee의 인터뷰


물론, 어떤 이슈나 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엄마들을 '타이거맘 (= 아시안 맘)'과 '스칸디맘 (= 웨스턴 맘)'처럼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일정한 바운더리를 정해주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의 부모라고 해도…. 다 커서 시집까지 간 딸이 두 아이를 낳고 다시 공부하고 싶어 하자 비행기로 4시간이 걸리는 다른 주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 딸이 사는 근처로 이사와 육아를 도와주는 경우도 보았고, 운전으로 네 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살면서도 뉴욕에서 맞벌이로 바쁜 자식내외가 SOS를 치면 언제든 달려오는 벌써 일흔이 넘으신 부모님을 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아시아의 타이거맘처럼 엄격한 생활과 학업적 성취를 기준으로 혹독하게 아이를 다루고 자녀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으면 무시하는 부모를 두고 중년이 다 되어서도 가슴앓이 하는 미국인 친구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마주하게 된 다양한 육아의 면면을 관찰하며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한 시간과 함께 아이는 성장했습니다. 내일은 좀 더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자고 다짐하기도 하고, 더 확실하고 엄하게 가르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도 하며 지나가는 매일입니다.


2020년대 한국의 양육방식은?

일방적으로 부모의 의견이나 가이드를 강요하는 이전 세대의 부모보다는 자녀들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아이의 시선과 감정을 위주로 한 육아 프로그램의 종류와 내용이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한국의 육아방식인 듯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발표된 2023년 자료에 등장한 역사상 최대의 사교육비 26조(OECD 국가 중 GDP 대비 비율이 가장 높음)에 대한 내용을 보고, 이런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이 아직 현재의 한국은 타이거맘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아시안의 양육방식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겠다는 가늠을 해볼 수 있었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1%를 초과하는 수준/  GDP 대비 사교육

아이가 어린 나이부터 시작되는 사교육에 드는 비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학교 외에서도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이죠. 그저 노는 것이 좋은 시기에 시작되는 여러 가지 교육을 아이가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만큼의 강력한 훈육과 부모의 의지가 필요하기 마련이니, 원하던 원치 않던 강력한 사교육의 이면에는 타이거맘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사교육비용과 동시에   2017년 7.7명에서 2020년 11.1명으로 3년 새 44% 치솟은 청소년 자살률을 이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OECD 국가 내 자살률 1위는 전 연령에 걸쳐 동일하지만, 그중에서 9~24세에 속하는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23.6명으로 OECD 평균(11.1명)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합니다.(2021년 수치 기준) ***


안 그래도 기록적인 저 출산율인 시대에 , 이미 태어나 크고 있는 아이들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확률이 이렇게 높다는 점은, 분명 이 한국 사회에서 또는 세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까운 양육의 방식이자 교육의 방식이었을지언정 그 안에서 변화해야 할 부분을 생각해보게 했죠. 강한 훈육과 교육철학까지는, 심화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더 우선시되어야 할 아이들의 감정이나 개인별로 다른 성향등이 충분히 고려되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어디부터가 시작일까요.

저는 그 힌트를, 엉뚱하게도 양육방식에 관련한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독특한 영상의 덧글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상의 썸네일은, 남고생 하나가 이제 막 머리를 감고 나온 엄마 흉내를 내는 모습이었죠. (미국에 있는 학생들..로 추정됩니다.ㅎㅎ)

"너 잘하고 있는지 2분마다 와서 확인할꺼야" 라며 엄마 흉내를 내는 모습 (영상 주소는 하단에..)

'이상한 영상을 잘못 찾았네. '라는 라는 마음에 다른 자료를 찾아보려다가, 영상에 달려있는 댓글을 보고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 그제야 거꾸로 제목을 확인했습니다. 영상의 제목은 [4 Hours of Asian Mum to Help You Focus on Practising/Studying/Working : 당신의 연습, 공부, 일하는 것을 도와주는 아시안 엄마의 4시간 ]였습니다. 일종의 Study With Me(스터디 위드미 : 비대면으로 누군가와 함께 공부하는 거나, 그렇게 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영상)의 아시안 엄마 버전인 거죠.

보다 보니 너무 웃겼습니다.

"엄마 좀 있다 와볼 테니, 숙제 열심히 하고 있어."라고 하고, 목욕하고 가운을 두르고 나오기 무섭게 또 딴짓 안 하고 있나 방에 가보고, 과일을 깎아 들고 오가는 제 모습과 정말 한 치도 다르지 않았거든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서 조용히 문을 열고 매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까지 똑같아서, 영락없는 아시안 엄마인 저는 집중이 되기는커녕 눈물이 날 만큼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가만히 읽어 내려가다가, 거꾸로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남자(영상 속 엄마 흉내를 내는 사람)가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가끔 방 안을 확인하는 데 4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정말 아시안 엄마의 헌신 그대로야."
"진짜 2분마다, 내가 잘하고 있나 들어와서 보는 것도, 문 열어두고 가는 것도 울 엄마랑 똑같네--;"
"농담이나 하려 했는데, 솔직히... 좋았어요. 불화와 차가운 공기가 있는 집 말고 다른 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존재를 느끼고, 부모님이 자주 확인하고 좋아하는 음식과 간식을 가져다주는 가족이 있는 집은... 어떤지 몰랐어요.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에요."


끊임없이 집안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과일을 가져다주고, 문 안으로 슬쩍 들여다보며 말없이 '잘하고 있니'라며 찾아오는 엄마를 흉내 내는 소년이 등장하는 어설픈 영상을 보며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따뜻한 사람냄새나는 집에서, 꾸준히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 속 사랑과 관심을 주는 아시안 엄마]였거든요.

육아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금쪽같은 내 새끼>에, 미혼인 2030 남녀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온전히 이해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뒤늦은 치유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챙겨본다”는 시청이유는 이미 성인이 되었을지언정 이들이 바라는 부모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려줍니다.


사랑과 믿음을 주며

아이가 가는 길을 지켜보는 부모의 관심.


결국 그것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한 가지이고, 양육자로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전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키워야 할 자질을 위해 엄격한 부모가 되는 날도, 또 어떤 날은 느슨하게 넓혀놓은 울타리 안에서 부딪히고 넘어지는 아이를 멀찍이서 지켜보는 날도 있겠지만, 사랑과 믿음. 이 두 가지만 놓지 않고 충분히 표현한다면 어떤 양육방식에 가까이 서게 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출처 @responsive_parenting






관련 자료

https://youtu.be/3RGEo2Kohb8?si=JvwxF_1bDxi_YsSN

4 Hours of Asian Mum to Help You Focus on Practising/Studying/Working


 https://www.bostonkorea.com/news.php?mode=view&num=28803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0738#home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10/12/KJKQG4MT5NB4VAN6WTL2RAF7GM/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6091

https://babydashblog.wordpress.com/2021/08/23/asian-vs-western-parenting-style-which-is-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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