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지 않으려해.
아이의 생일과 봄방학을 핑계로, 아이가 태어난 뒤 처음으로 아이와 단 둘이 일본 여행을 왔습니다. 아침 이른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출국날 새벽 일찍 집을 나서는데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분들이 국가별로 다양한 언어를 어우르는 이야기들을 한 권씩 펼쳐내실 예정이라고 하셔서 예약 주문을 해두었는데, 그중 '일본어'에 관련된 책이 딱 동경행 비행기를 타는 날 새벽, 집 앞에 도착해서 여행 가방에 딱 꽂아 넣고 출발했습니다.
응용 언어학자로 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작가님이, 일본 도쿄 다마가와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게 되셨는데…그 바람에 급! 마주한 일본어의 장벽을 하나하나 넘어서 일본의 문화와 사회에 가까워지며 한국-미국-일본을 언어라는 통로를 통해서 읽어 내려가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그렇네요.
문화를 읽어 내려가는 그 시작점에 [언어]가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한번 더 책 속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되새겨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옛 추억에 젖어보았어요.
거의 20년 전, 제가 교환학생으로 요코하마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어 처음 일본 공항에 내린 날, 신난다는 생각보다 '엥? 한국과 너무 비슷한데 온 거 아냐...?'라는 생각을 더 먼저 했었습니다.
비슷한 머리색, 비슷한 언어구조, 비슷한 가정 내의 문화, 먹는 음식 등…모든 것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공항에 내려 기숙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전혀 [한국이 아닌 해외]라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에이... 그냥 유럽 쪽으로 지원할걸...'이라는 후회가 첫날부터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어딘가 김 빠진 시작이었던 일본에서의 대학 생활은 의외로 3개월이 넘어가자 거꾸로 매우 흥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외견 안에 담긴 일일이 나열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차이들을 하나 둘 발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어요. 낯설다 못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어떤 콘텐츠라도,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캐릭터 산업.
작은 시즌 이벤트라도 성대하게 즐기려는 각종 프로모션과 행사들.
슈퍼 안에 크게 자리 잡은 와인코너와 디저트 코너.
백화점의 1층의 수많은 고급 초콜릿과 디저트 류.
과장된 리액션의 방송 패널들, 이해는 안 갈 정도로 자극적인 방송테마들.
방송 속 넘쳐나는 요리와, 요리사들.
약국에서 파는 별의별 용도의 제품들.
처음 보는 형태의 먹을거리들.
.
.
나열하자면 끝이 없었죠.
이 모든 관찰과 의문의 시작에는
늘 두 가지 질문이 존재했습니다.
'왜... 이렇지?'
'한국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더라...?'
일본을 들여다보고 일본에 대해서 고민하며 한국을 다시 돌아보고, 한국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찾아보게 되는 그런 신기한 경험을 무수히 반복해야 했습니다. 일본의 사찰을 보고 한국의 절이 궁금해졌죠. 한국에서 자라면서도 잘 몰랐던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힘을 알려야겠다는 아무도 주어준 적 없는 책임감도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아직 알려지기 전의 무언가를 발견하며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20대의 호기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귀국과 함께 호기심 상자가 훅 닫혀버렸습니다. 귀국과 함께 일단 당장 맞서서 방향을 찾아야 할 취업과 결혼이라는 문제가 앞에 턱 하니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기억 너머로 희미해지는 일본에서의 기억과 함께 사라졌던 두 가지 물음표가 다시 찾아온 건, 그로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후의 미국이었습니다.
서른 중반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 없이 뉴욕으로 이사를 했죠. 그런데 옆동네도 아니고, 언어도 문화도 완전 다른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지만 이미 일생을 [도시여자]로 살아온 제게 뉴욕이 엄청나게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놀러 오는 곳으로 즐거웠던 도시의 첫인상은, 아이 키우기 불편하고 정신없고 지저분한... 오래된 도시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환희보다는 끊임없이 발견하는 불편으로 나오는 이방인의 신음을 입에 달고 다니며 새 생활에 적응하는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동네 지리 파악도 좀 끝나고, 아이도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어느 날.
잊은 줄 알았던 그 질문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질문 상자에는 비교군이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일본'이었죠.
'왜... 이렇지?'
'한국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더라...? 일본은 어땠지?'
그렇게, 마주하는 상황마다 한국, 미국, 일본이라는 3가지 조미료가 들어있는 박스에 넣어서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며 그 차이와, 어떤 문제 대한 경향 같은 것을 약-중-강 순서로 늘어놓아보기도 하고, 그림으로 그린다면 각각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마침, 새로 받은 책에서 비슷한 구절을 만나 너무 반가웠어요.)
그렇게 들여다본 많은 이슈들 중, 가장 독특하게 느껴졌던 것이 바로 '성(gender)'에 대한 이슈였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같은 아시아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고,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많은 경우 긴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미국과 일본이 있고, 한국은 일본 쪽에 좀 더 가까운 경우가 많았는데 이 문제는 좀 경우가 달랐습니다.
아이가 뉴욕에서 4 세반 Pre-K에 입학한 뒤 친구들을 사귀고, 방과 후에 함께 플레이데이트를 하는 날들이 늘어갔죠. 그날은, 갈색 곱슬머리의 아이 친구 카멜라가 놀러 와 방 안에서 소꿉놀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집안에 있는 인형을 다 끌어모아 들고 가길래 가족 역할극을 하려나보다 생각했어요. 꼬마들이 좋아할 간식을 들고 놀이방 테이블에 살포시 얹어두고 나오려는데 재미있는 대화가 들렸습니다.
"우리 어떤 가족 놀이할까? 그냥 엄마랑 아빠 있는 집? 아니면... 엄마가 둘 인 집? 아빠가 둘 인 집?"
"음...엄마만 있는 집도 있잖아."
"그렇네! 우리 어떤 가족 놀이 할까???"
네 살 꼬마들의 대화의 기저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1+1=2 같은 공식보다는 이들이 보아온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녹아있었습니다. 아빠와 엄마 대신 아빠가 둘인 가정의 아이인 친구가 있었고, 엄마가 가장으로 회사를 다니고 유모가 돌보아주는 친구도 있었죠. 그리고 유치원에는 미소년의 얼굴을 가진,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화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 모두는 한국에서는 ”정상“이라 칭하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삶일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좋은 선생님이자 재미있는 친구 아빠였고 맛있는 간식을 자주 만들어오시는 옆집 아주머니였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을 몸과 마음으로 대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국 사회가 [정상]이라 칭하는 것들의 기준이 참 협소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더랬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 (GENDER)의 경우, 한국과 미국이 긴 스펙트럼의 각기 다른 끝이지 않을까 싶었죠. 어린이 또는 청소년기에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 싶은 한국에 비해서 미국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급진적인 흐름과 보수적인 흐름이 여러 가지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죠. ** 청소년기에 본인이 가지고 태어난 성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성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어떠한지를 보아야 하는데 이 부분부터 큰 차이가.. 있거든요. 이 논의의 시작점이 되는 성소수자에 대한 통계도 존재하지 않는 한국이기에 직접적인 비교 자체가 사실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성에 대한 담론만 이러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음…. 아니요.
우리는 “성”이라는 단어를 아직도 상당히 음지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다른 나라의 성 문화에 내용을 보여주는 일종의 다큐 시리즈에 출연한 “동물농장 아저씨” 신동엽 씨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성인대상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동엽 씨가 어린이들이 많이 시청하는 동물농장 MC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시청자 청원이 빗발친다는 기사를 보며 또 물음표가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성.. 역시 삶의 일부분 아니었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성에 대해서 궁금해하면 안 되는 것일까?
왜 따로 나누어 보아야 할까?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일본인 친구도, 중국인 친구도, 인도네시아와 스페인 친구도 모두 함께 모여사는 기숙사생활을 했습니다. 3층짜리 건물에 총 10여 개 나라의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살며 중앙 건물에 있는 공동 주방과 공동 홀을 사용했습니다. 이곳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잔뜩 만들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 공간 자체가 굉장한 문화 교류의 공간이었더라고요. 국적도 문화도 다른 친구들이 여가시간이면 나와 앉아서 책도 보고, 수다도 떠는 동안 그 안에서 각기 다른 문화들이 부딪히며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거든요.
하루는, 공동 홀에 친구들이 가득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보며 시끌시끌하길래 "뭐야?"라며 저도 고개를 삐죽 내밀었습니다. 친구들이 모여서 보고 있던 잡지는 '정기 발행되는 앙앙 AnAn'이라는 여성 패션지였습니다. 다만, 다들 열광적으로 보고 있던 이유는, 일반적인 패션을 다루는 내용이 아니라 1년에 딱 한번 발행되는 특별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내용인 즉.... 앙앙 매거진에서 투표한 '안기고 싶은 남자 연예인 1위'를 한 인물이, 여성 모델과 전라로 찍은 화보가 실려있었던 거죠….
한국으로 치면, 송강, 현빈, 김수현, 공유..와 같이 여성팬이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배우가 찍은 셈인데, 상상이 가시나요? 제가 본 그 해에는, 당시 10년 가까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기무라 타쿠야가 화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지금도 웹 상에서 해당 화보를 볼 수 있지만. 음. 이 글이 19금이 아니라 제가 올려드릴 수가 없네요.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시면 경로를 공유....하핫) 비교불가의 탑스타가 찍은 높은 수위의 화보에 기절하고 있는데, 화보 뒤에 실려 있는 내용들은 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20대 여성의 성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예쁜 일러스트를 포함, 갖가지 귀여운 활자의 설명 등으로 한 권 가득 풀어내고 있었으니까요.
거의 2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이런 류의 화보나 자세한 설명은 성교육 자료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잡지에 이런 내용이라니.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자면 많이 '개방적'이 되었다고 하지만…. 일명 '유교걸, 유교보이'들이 살고 있는 한국에서 온 제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과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곁에 있던 일본 친구를 보며 저도 모르게 한탄에 가까운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내놓고 말았어요.
"너희 나라(일본)는... 성에 너무 개방적인 것 같아. 가슴 부분이 노출되어도 괜찮은 공중파 심야 방송 프로그램도 그렇고, 이런 잡지도..."
"그래? 근데 말이야. 동양에서도 한국이랑 중국만 엄청 폐쇄적인 거 아냐? 사실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중국이랑 한국이 특이한 것 아닌가?"
그랬습니다.
기준을 한국에 두었을 때는 일본의 성에 대한 풍조가 '이상할 정도로 개방적'이었지만.
기준점을 일본, 아니 다른 나라들로 옮겨서 보니. 한국이 '이상할 정도로 폐쇄적'이라고 볼 수도 있었어요.
잡지 한 권으로 시작된 그날의 대화는, 그간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사고의 기준점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나라의 어떤 현상이 하나의 이상적인 목표지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각기 다른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해 온 나름의 이유가 있기에, 어떤 나라의 문화가 최고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SNS와 유튜브로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2024년을 살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측면으로는 지구상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함께 흘러가도록 보이지 않는 힘을 가하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속도로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한 가지 유행이나 사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만 보아도 그렇죠.
제가 청소년기를 지나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이 부산까지 가는 데는 반년이 걸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본 뉴욕과 도쿄의 인기트렌드와 브랜드 아이템도 직구로 사서 바로 입을 수 있습니다. 워낙 속도가 빠르게 흐르는 문화인 패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즘은 다양한 가치관들도 빠르게 전파됩니다.
작년에 들었던 구성애 선생님의 성교육 관련 강좌에서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을 놓치면 안 되는 골든타임으로 강조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쉬쉬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발달한 미디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보수적인 문화에서 자란 부모들이 믿을 수 없는 수위의 정보들을 보고 알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전적으로 그나마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따르는 “초4 겨울방학“이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직은 그런 것을 알 때가 아냐. “라고 말하는 동안 아이는 유튜브와 sns, 그리고 또래집단을 통해서 더욱 자극적인 정보를 접하고 성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와 구체적인 사례를 강연 중 들으며 저 역시도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해서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보고 듣는 엄청난 수위의 방대한 성에 대한 정보와, 매일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 내의 성 인식 차이에 너무 큰 간극이 있는 거죠. 그렇다 보니 청소년기에 소리 내어 자연스러운 욕망과 질문들을 말할 곳을 찾지 못해 생기는 여러 문제들의 경우와 사례가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증가 중이고, 태어나면서부터 미디어를 끼고 산 세대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시기가 되면 어떠할지 더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걱정스러웠습니다. N 번 방이 그랬고, 화장실마다 붙어있는 몰카범죄 관련 경고 스티커가 왜곡된 성문화가 어떤 식으로 괴물이 되어갔는지를 보여주죠.
2020년, 덴마크의 성교육 교재를 번역한 자료가 초등학교에 교육 자료로 배포되었다가 학부모들의 심한 반발로 회수조치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197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교재인데, 50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 말하는 어른들이 더 많았셈인데요. 글쎄요...기성세대의 눈에는 그럴 수도 있었을 듯 한데 과연 이 초등학생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접하는 컨텐츠들이 덴마크나 미국, 일본의 어린이들이 보는 것과 다를까요? 우리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어떤 기준들은, 지구상 대다수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어야 할 때인 듯하다는 생각을 한국 사회의 성에 대한 담론을 보며 자주 생각합니다.
한국의 콩나물 국밥을 소울푸드라 말하는 동시에, 치즈 피자는 뉴욕이 최고라 말하는 아이는 일본의 스미코구라시(すみっ コ ぐらし) 캐릭터 굿즈를 사모으기 좋아합니다. 한미일 짬뽕탕같은 문화를 즐기며 성장중이죠.
이렇게 우리 아이처럼 여러 가지 문화가 혼합된 삶이 일상일 아이들을 보면, 언젠가 지리 시간에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는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한 생물들이 살게 된다는 것을 배운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이 모든 문화들이 혼합된 삶 속에서 그 어느 시대보다 풍성한 문화들을 향유하며 살게 될 세대일 듯해서요. 참 부럽기도 한 동시에, 이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한국에서는”이라는 말이나 기준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싶어 집니다.
그러니 이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삶이 그 어느 시대보다 좀 더 바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세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읽고 그에 맞춰 부모인 사람들이 빠르게 변화하지 않은 채 “우리는 이렇잖아.”의 틀에 머물러 있는다면. 어느새인가 아이에게 전하려는 말이 닿지 않는 날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관련 참고 기사
https://m.sports.chosun.com/entertainment/2023-04-28/202304280100235100030296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8271647001#c2b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내용을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