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한 청년에 대한 단상.
"엄마, I'm hungry...이거 언제 다 구워져?"
"조금만 기다려, 아저씨가 열심히 하고 계시잖아."
크레페를 굽고 있던 아저씨가 우리 대화를 듣고 끼어들었습니다.
"Are you guys from Korea to see Mr. Sohn?" (한국에서 손흥민선수 보러 왔어요?)
작년 늦가을밤. 런던 리버티 백화점 바로 앞의 크레페 가게 아저씨는 한눈에 우리가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Are you Japanese(일본인입니까?)? 아니면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We are Korean!(한국인이에요!)라고 설명을 늘어놓아야했는데. 세상에. 한국의 위상이 정말 달라졌습니다. 너무 반가웠어요.
우리가 주문한 크레페를 굽고 계시던 아저씨는 딸이 운영하는 크레페 가게에 어쩌다 지원을 나오신 듯 했습니다. 마법사 같은 손길로 얇은 크레페를 촥촥 구워 초콜렛을 찹찹 바르고, 바나나를 짝짝 잘라서 순식간에 크레페를 만들어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빛의 속도로 떠나보내는 따님과 달리, 아무리 기다려도 아저씨의 크페레는 완성될 줄을 몰랐습니다. 국자로 크레페 반죽을 뜨는 것도 어색해 줄줄 흘리며 팬까지 가져오시것도 모자라, 뿌리는 초콜렛이 아니라 병에 들은 초콜렛 청크를 꺼내서 크레페에 바르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보니 속이터져 제가 들어가서 구울뻔 했더랬죠. 여하튼, 그렇게 첫번째 크레페는 너무 두꺼워서 버리고, 두번째 크레이프를 다시 구워야해서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떻게 저희가 한국인인 줄 아셨어요?"
"손흥민 선수가 주장이 되고 나서, 그를 보러 정말 많은 한국인들이 런던을 오거든요. 난 아주 오래된 토트넘 팬이랍니다."
그랬습니다. 아저씨가 한 눈에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본데는, 위대한 주장! 토트넘의 주장인 손흥민 선수의 역할이 매우 지대했죠. 그런데 아저씨 옆의 크레페 달인인 따님이 한 마디 거드네요. "
토트넘이라니. 흥! 난 첼시팬이에요."
그렇게 한참을 한참 토트넘이 더 낫네 첼시가 더 낫네 툭탁거리는 부녀의 맞은 편에서, 남편은 아이에게 이렇게 오래된 팬이 많은 크고 유명한 팀의 주장이 한국인 '손흥민' 선수라며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을 했죠. 아이도 어디서 들어봤는데..라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더니
"아!!! 그 메가커피 아저씨!!!!" 랍니다.
축알못 어린이에게 손흥민은.
네, 그렇습니다. 메가커피 아저씨..였네요 ㅎㅎ
허허. 이렇게 축구에 관심없는 아이덕에 런던까지 가서 경기도 안 보고 온...축구와 거리가 먼 삶을 살며 메가 커피와 크레페로 손흥민 선수를 떠올리는 우리 가족입니다만(좀 더 정확히는 축구팬인 남편 빼고 저와 아이...^^;;;), 그의 위상이 어떠한지 여행의 짧은 찰나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크레페 아저씨는 물론, 바에서 축구 경기를 보며 응원하는 팬들 중에도 그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과거 일본 유학중,겨울연가의 욘사마 덕분에 삶이 너무 가슴뛰고 행복했다며 유학생인 제게 일본 할머니가 제 손에 쥐어주신 용돈.
봉준호 감독 덕분에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로 가는 파티마다 팔짜에 없던 영화 기생충 해설위원(?)이 되어 우쭐했던 기억.
이런 추억들을 떠올리며 지금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 살고 있는 교민들에게 손흥민 선수의 활동이 뿌린 작은 호의의 씨앗들이 얼마나 쑥쑥 자라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훌륭한 선수를 키워낸 손선수의 부모님들도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물론이죠. (요즘은, 멋지거나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 ‘멋있다..!’보다 '부모님이 어떻게 키우셨나?'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ㅋ)
손흥민 선수는 16살에 독일로 이적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축구 유학을 간 셈이죠. 어린나이에 유학을 간 친구들이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것이 외로움, 불안함, 소외감인데 다행히 그의 곁에는 아버님이 늘 함께 계셨다고 하니 그 모든 시간들이 오롯이 높은 수준의 세계에서 실력만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워낙 그의 생활이나, 훈련에 대한 여러 본받을만한 점들은 인터뷰 등을 통해서도 많이 언급이 되어서 이미 잘 알고 계신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
손흥민은 “게임을 좋아할 수도,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있다”면서도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면) 항상 제일 중요한 것은 축구”라고 말했다.
- 2023.01.17 해럴드 경제 인터뷰 중
우선순위를 명확히 알고 몰두한 모습과 겸손한 태도까지 여러모로 참 존경할만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죠? 더불어, 어린나이에 해외에서의 활동을 택하고, 적응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결국 성공하여 더 큰 시장에서 훨훨 날고있는 것을 보니 손선수의 부모님이 얼마나 뿌듯할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손흥민 선수가 올해 들어 가장 크게 온 국민의 입에 오르내린 일은, 그가 속해있던 '국가대표팀'내의 다른 선수인 이강인 선수와 있었던 경기 전날의 불화였습니다. 그리고 전 이 사건을 지켜보며, 또 다른 [해외파] 이강인 선수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일명, '하극상'이라는 키워드로 가장 많이 언급된 이 사건에 대해 대중은 주장인 손흥민 선수의 손가락 부상을 야기한 이강인 선수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이강인 선수를 모델로 기용한 기업들은 광고를 빠르게 내리기 시작했고, 여론은 그야말로 매일매일 악화되어 이번에 새로 대표팀에 소집된 것을 두고도 여러가지 좋지 않은 보도들이 오가는 상황입니다. 작년 11월 파리의 생제르망 스토어에 들렸을때만 해도 그의 유니폼이 모두 SOLD OUT이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던 상황이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이 한 사건은 계기로 그에 대한 여론은 완전히 반전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며…저는 한국 국민이기도 하지만, 한 아이의 부모로, 특히 해외에서 돌아온 아이의 좌충우돌을 마주하고 있던 부모로 참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 이런 질문이 들었어요.
'이 상황이.
오롯이 이강인 선수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봐야할...까?'
저는 왜 이런 질문이 들었을까요?
이 사건의 핵심으로 매일의 뉴스에 끊임없이 언급된 이강인 선수는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나이에 온 가족과 함께 스페인으로 이사를 갑니다.
4학년이라.
지금 저희 집에 있는 꼬마와 딱 같은 나이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이제 막 진입한 나이라 좀 큰 어린이인가 싶기도 하지만, 집에서 보는 초4란 교우관계도, 공부도 죄다 어설프기 그지없어 '다 크려면 한참 멀었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나이입니다. 그래서, 이런 나이에 간 이강인 선수가 과연 어떻게 현지에 적응했나 궁금해졌죠.
기사로 보도된 여러 자료를 읽다보니,
몇가지 눈에 들어오는 힌트들이 있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할 때 스페인어로 생각하며 꿈도 스페인어로 꾼다고 한다.그만큼 스페인어에 익숙해져서인지 한국어를 말할 때 발음이 어눌한 편이다. 그의 한국어를 자세히 들어보면 "~하먼(하면)", "저가(제가)" 등으로 발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이강인 나무위키)
나는 이강인과 마음이 정말 잘 맞았고, (마요르카 시절에) 잘 어울렸다. 그는 성격적으로 한국인보다는 스페인 사람에 가까운 것 같다" -(절친 쿠보 다케후사의 인터뷰 중)
이강인은 스페인어가 모국어에 가깝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11년 발렌시아 유스팀 입단 테스트를 통과해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유럽에서 생활한 지 11년이 흘렀다. 사고 방식도 유럽에 가깝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모국어가 포르투갈어지만 이강인과는 격의없이 스페인어로 소통한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취재진과는 거리낌없이 인터뷰가 가능하다. (2022.12.07, 조선일보)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었지만, 그의 모든 가족이 그의 장래에 희망을 걸고 구단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으로 떠났다니 이 어린이가 느꼈을 책임감과 가족들이 마주한 비장함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이구나 싶었죠. 그리고, 매우 어린 나이부터 가족과 함께 스페인에 정착해 산 지 이미 11년이상 되어 스페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잘하고 오히려 한국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편하다고 한다는 내용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보며, 거꾸로 이강인 선수가 얼마나 치열하게 외국어인 스페인어를 익히고 스페인 생활에 적응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영상 중 어눌한 한국어로 지적받은 "~하먼(하면)", "저가(제가)" 은, 주로 교포들이 자주 구사하는 한국어의 전형적인 발음 실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이를 보며 어쩌면 한국인들은 그를 '한국인으로 유럽에서 뛰는 이강인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스페인에 이민을 가서 스페인 사람으로 자란 한국인 이강인 선수'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졌습니다. 직접 이 선수를 만나 본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생활까지 다 알 수는 없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있는 힌트만 모아보았을 때 내린 결론이 그랬습니다.
이선수가 스페인으로 떠난 11살이라는 나이.
어떤 시기일까요?
이 시기에 배우는 외국어는, 외국 문화는
어떤 형태로 남게될까요?
보통 2번째 언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서 가장 마지막으로 모국어처럼 흡수할 수 있는 시기로 알려져 있는 것이 11세-15세라고 합니다. 이 때까지는 그래도, 두번째 언어를 배워서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거죠. 이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이후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정도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보았을 때 이강인 선수는 스페인어를 '모국어' 와 같이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의 스페인어 구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 환경적 요인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바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안하고에 따른 사회 내의 성공수준이죠.
책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에 이런 실험이 나옵니다. 미국 심리학자들이 미국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의 어린이 5세와 7세를 대상으로 언어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를 검사합니다. 여기서, 더 많은 아이들이 아이들은 [한국어 억양이 있는 영어로 말하는 친구] 보다 [미국인 영어로 말하는 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답변을 하죠. 한국식 영어가 자기 집과 같은 친숙함을 더 주는데도 말이죠. 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언어보다 인종이 변하지 않는 개인적인 특질임을 인지하고, 자기도 모르게 사회에서 더 유리한 가치를 줄 수 있는 선택을 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기도 합니다.
온 가족이 자신의 축구선수로의 생활에 기대를 걸고 인생을 건 도박과 같은 마음으로 스페인에 간 11살의 어린이가 스페인어와 문화에 흠뻑 빠져든 것은 어찌보면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스페인어의 구사력에 따라 팀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의 레벨이 달라지고 팀메이트들과의 관계가 달라졌을 테니, 11살이라는 시기적인 요인과, 그가 속한 환경적인 요인들이 맞물려 이강인 선수는 '스페인 사람보다 더 스페인사람 같다'는 평가 될만큼 녹아들어야 했겠지요.
11살의 해외생활과,
20살의 해외 생활에 큰 차이가 있을까?
언젠가, 뉴욕에서 있을 때 남편이 회사 워크샵에 다녀온 뒤 제게 "여기서 이렇게 일하고 살려면, 중학교때 왔어야 했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이 선택하고 지나온 길에 후회나 아쉬움 같은 이야기를 별로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 무슨일인가 싶었는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업무 환경을 떠나서 진행되는 워크샵이라 각자 선호하는 문화나 스포츠를 즐기며 조금 개인적인 면을 내보이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그동안은 '일'이라는 공통분모로 어느정도 공통점이 느끼며 함께 지내던 동료들과 남편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것을 크게 느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각자 과거에 어떤 공부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에 상관 없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크게 유행한 노래를 들으면 다들 함께 흥얼거리며 당시 유행하던 춤이나 패션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되죠. 우리가 H.O.T의 캔디나 행복을 부르며, '그 때 나도 그 털장갑 한번 사서 껴봤다.' '장기자랑에서 그 엉덩이춤 추었잖아.' 같은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는 것 처럼, 90년대를 미국에서 학생으로 사춘기 시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또래문화를 함께하며 지나온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들이 당연히 존재하겠죠. 그리고 이것은 '공부'를 한다고 해서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영역이 아닌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시대를 한 문화 내에서 함께 살아낸 사람들만이 갖는 공감각 같은것이니까요. 그래서, 그 큰 차이를 느끼고 씁쓸하게 말하는 남편을 보며 왜 한국에서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서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교에 바로 진학해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고 너무 잘 살고 있는 친구들도 '중학교 때 왔어야 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는 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습니다. '잘' 살 수는 있지만, 내가 이 사회에 대부분을 이루는 사람들과 같은 기억을 공유한다는 느낌은 사춘기 시절을 어디에서 보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러닝과 함께요. 지금 아이가 한국에서 다니고 있는 외국인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가족들 중에도, 미들스쿨 과정 이전에 다시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관점에서 이강인 선수가 떠난 시기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그의 인터뷰나 동료들의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11살에 스페인으로 떠난 이강인 선수는, 스페인 사회에 마치 스페인 사람처럼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명이 하는 경기가 아니라 11명이 함께 뛰는 축구에서 팀원들과의 조화가 중요할텐데 '스페인어'라는 벽을 넘고 그 문화를 몸에 완전 붙이고 스페인 사람처럼 생활에 녹아든 이강인 선수를 외국인이 아니라 '축구 잘하는 선수'중 하나로 차별이나 소외의 대상에 들어가지 않게 된 것 역시 이런 부분이 크게 작용했겠죠.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베컴'에서, 이강인선수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과 연륜을 쌓은 그도 영국 리그를 떠나 스페인 리그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초반에는 말도 통하지 않아 팀원들과 겉돌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한참을 이렇다할 성과도 내지 못하던 중, 회식 자리에서 스페인 팀원들과 바디랭귀지를 동원해 이런저런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난 다음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생기고, 그때부터 그의 기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하죠.
개인적 기량이 뛰어난 선수에게도 스페인 내에서의 '소속감'이나 선수들간의 '친밀감'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볼 수 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그러니, 이 벽을 뛰어넘은 이강인 선수가 현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예견된 성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 문화.
11살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떠난 그 가족들에게 스페인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아마,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강인 선수에게도 그랬겠지만, 가족분들에게도 엄청난 문화 충격이 가득했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불어, 가치관도 상당히 많이 변화했을 것 같구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으로 하나씩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학생으로 지내던 시절,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발렌띠나(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하던 이 친구는, 일본 미술을 본인의 작품세계에 반영하고 싶어서 유학을 선택했다고 했었어요. 당시, 학교에서는 유학생들이 함께 지낼 기숙사와 일본에서의 생활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어서 선택의 여지 없이 모든 유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함께 해야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는데, 일본에 온 지 2달 즈음 되었을까요? 이 친구가 나날이 수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아픈건 아닌지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매일 10시면 문을 닫는 기숙사 생활이 감옥같아서 도무지 견딜수가 없어...난 이렇게 매일을 재미없게 사는 삶은 정말 해본적이 없는데 도대체 다들 어떻게 참고 사는거야?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하철 안의 사람들 봤어? 다들 매일 아침 지친 얼굴로 지하철에 타고 있고, 저녁 시간도 마찬가지야. 일본 사람들은 삶을 즐길줄을 몰라! 이건 사는게 아니야."
당시,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도 기숙사에는 안전을 고려한 통금이 있었고,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회사와 학교를 다니느라 지쳐 다들 핸드폰 아니면 책에만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도 같은 풍경이었기에 이 친구가 말하는 '스트레스'의 포인트가 전혀 이해가지 않았습니다. 힘내라고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나날이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시들시들해져가는 친구를 보며 크게 공감해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즈음 후. 여행으로 스페인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그 때 왜 발렌띠나가 그렇게 괴로워 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습니다. 좀 늦게 숙소에 도착한 우리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 나온 오후 3시. 식사가 가능한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글로만 읽은 시에스타가 이정도구나를 실감했지요. 모두 매장 문을 닫고, 쉬는 시간이라는 표시를 달고 정말 말그대로 쉬.고.있.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공공기관들도 오후 2시까지 밖에 영업을 하지 않고 학교의 강의도 2-4시는 쉬어간다더군요. 한 낮의 '쉼'에 대한 중요성이 어느정도인지 느껴지시죠?
이렇게 시에스타가 있다보니...충전된 에너지로 밤 10시가 되어도 거리는 이른 저녁시간처럼 사람들이 곳곳에 가득했습니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거의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도 식당에, 거리에 아이들도 가득했어요.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늦은 시간에도 곳곳에 음악소리가 가득하고 온가족이 한 밤의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기숙사의 밤 10시 통금이 왜 그렇게 발렌띠나에게 고문같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정열적이고 즐거운 삶]이라는 명제가 진짜 생활 곳곳에 내려앉아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와는 정 반대의 [규격화되어 있고, 규제와 규율이 있는 삶]인 일본과 한국에서의 삶이 그녀에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괴로운 삶으로 와닿았던거죠. 그러니, 그 사이에서 자라야 했을 이강인 선수는 아마도, 당장의 선수로서의 생존에 깊게 연관되어 있는 스페인 언어와 문화를 모국의 문화와 같은 수준으로 받아들였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큰 문화의 차이를 가진 나라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 이강인 선수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그가 온전히 한국식의 위계질서나, 단체생활에서 감안해야 하는 개인활동의 규제를 완벽히 받아들였으리라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애초부터 쉽지 않은 요구인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어에는 위계와 공손함에 대한 집착이 정말로 언어의 뼛속까지 자리 잡은 듯 보인다.
한국어로 말하는 사람은 연장자나 사회적 직위가 높은 사람에게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존대를 해야한다. 그들을 부를 때 특정 대명사를 선택하고, 어떤 명사나 동사에는 존댓말이 존재하며 (예컨대, house의 보통 형태는 '집'인데, 연장자에게는 '댁'이라고 해야한다.). 일부 동사와 명사의 끝에 존댓말 어미를 붙이고(예: ~십니다,~세요), 오로지 상대를 높이는 목적으로 문장 끝부분에 음절이나 소리를 발음한다.(예: ~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어에는 여섯가지 공손함 표현(가다- 가십니까, 가오, 가나, 가니, 가요, 가)이 있기 때문에 미묘하게 다른 변이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문장 끝을 다르게 말한다.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사회적 구분에 관심이 없는데 언어가 그렇게까지 세분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P.136,137 / 줄리 새디비 지음, 김혜림 옮김-
스페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스페인 리그에서 너무나 잘 적응한 이강인 선수와, 저녁을 먹고 난 뒤 다른 친구 선수들과 어울려 탁구를 치러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를 떠난 이강인 선수. 모두 '개인의 여유와 즐거움'의 삶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스페인 문화를 기준으로 볼 때는 한 흐름내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 사람의 모습인거죠. 이에 대해 지적하는 선배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경하게 전달하는 것 역시 어찌보면 그가 자란 문화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요.
하지만 위계와 어른(팀의 리더)의 지시에 따르고 전체적인 팀워크를 위해 개인적인 시간도 희생해야 하기도 하는 한국 문화를 기준으로 보자면 그는 문제있는 행동을 한 젊은이로 비추어집니다. 스페인어에도 존댓말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위의 책에서 언급된 한국어처럼 그 체계가 여섯가지로 분화되지는 않지요. 그리고 제가 친구와, 여행지에서의 단적인 면을 보고서도 짐작할 수 있었듯, 한국과 스페인이라는 두 문화는 참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한국의 국가대표로 참여하지만, 그의 일상을 둘러싼 환경을 생각해보면 경기시에만 소집되는 국가대표팀 내의 조직문화나 그 안에 분명 뿌리깊게 자리잡았을 한국식의 위계질서나 방식이 이강인 선수에게 되려 이방인의 그 어떤 것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 듯 합니다. 체계적이고 상대적으로 좀 단조로운 생활의 독일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손흥민 선수와 또 달리, 스페인이라는 자유롭고 유연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 이강인 선수.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두 선수의 배경에는 이런 문화적 차이도 존재할 수 있기에, “해외파”라는 단 세글자로 이들을 모두 하나의 특질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 입니다.
축구계의 오랜 선배인 차범근 축구해설위원의 이야기도 이 맥락에 닿아있었습니다.
“지난 1979년 내가 처음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직후 훈련을 앞두고 작전을 설명하는 감독에게 거칠게 화를 내는 동료 선수의 행동에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고 운을 뗀 그는
“이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훈련에 임하는 감독과 선수들을 보며 한 번 더 놀랐다. 그들에겐 감독-선수, 선-후배를 넘어 생각이 다르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웠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 “아시안컵을 마치고 23살 어린 축구선수 이강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고 언급한 차 감독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 성장할 땐 대수롭지 않았던 상황들이 우리 팬들을 이렇게까지 화나게 할 줄 선수가 미처 몰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4.02.29 중앙일보 - '전설' 차범근의 조언 "이강인 향한 비난, 나부터 회초리 맞아야"
빌보드 뮤직어워드에는 K-POP 부문이 신설되었고, 지난주말 열린 오스카 시상식에는 '셀린 송'감독이 한국계 배우들과 만든 Past Lives 패스트 라이브스가 작품상과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뉴욕 록펠러 센터 앞의 채널 가든에는 이배 작가님의 큰 조각상이 비치되었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주장은 한국의 축구선수 손흥민입니다.
이렇게 1989년 여행 자유화가 막 된 시절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자리와 공간에,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수시로 접하게 되는 2024년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가진 훌륭한 기량을 마음껏 세계인을 대상으로 펼쳐볼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 사이 더 잘살게 된 한국과, 강화된 영어교육, 해외 여행의 증가와 진화한 디지털 플랫폼이 있겠죠. 이를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즐기며 한국문화의 접점에서 더욱 큰 성장 포인트를 찾아낸 사람들이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까요. 제 글마다 한번씩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BTS 는 뭐 이런 사례로 두말하면 입 아플정도구요:)
그런데 이들의 잘 살펴보면 바로 '한국'이라는 정서와 기본 문화를 바탕으로, 현지 문화에서 가장 잘 받아들여질만한 포인트나 기량을 최대화 했다는 한가지 큰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차범근 감독님 또한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동양적인 희생과 겸손,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들을
촌스럽고 쓸모없는 거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는 엄연히 우리의 자산이자 무기다.
-2024.02.29 중앙일보 차범근 축구해설위원 인터뷰 중-
저는 스물 셋 이강인 선수가 잠시 이 무기를 놓쳤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에 가서 살더라도, 설사 국적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김새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흐르는 '한국인'으로의 자아도 사라지지 않죠. 어딜가도 사람들은 우리를 아시안이자 한국인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아무리 벗어나려 애를 써본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고유값이니까요.
이 고유성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할 때, 더 멋진 무언가가 된 사례를 요 몇년간 우린 이미 수도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은 이강인 선수 말고도 또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불굴의 근성, 노력, 희생같은 전통적인 가치들이 더하는 순간 그건 오직 '그'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무기로 변모할테니까요. 그리고 운 좋게도, 그의 곁에는 이미 이런 모습을 갖춘 선배가 존재합니다. 손흥민 선수 말이죠. 그러니, 이번 기회를 통해 더해야할 부분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더 멋진 선수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이렇게 해외로 어린시기에 진출해서 현지에서 살아남은 훌륭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한국 사회도 좀 더 접근 방식을 바꾸어 지켜봐야하지 않을까요. 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지 않을 때 가장 잘 성장한다고 해요.*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강인 선수처럼, 손흥민 선수처럼, 해외에서 다른 경험을 쌓으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이런 사람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작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만큼, 이렇게 해외의 경험을 토대로 기량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을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잣대로만 판단하지 않는 요령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이런 다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할 한국의 인재들을 품어서 더 키울 수 있도록, 좀 다른 문화와 다른 방식에도 이 사회내의 어른들이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필요도 있어보여요. 그렇게 지적보다는, 이미 지나온 경험과 문화를 토대로 '한국적 가치'라는 무기를 더할 수 있는 조언을 할 선배들이 더 많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수 많은 멋진 세계속의 한국인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이제 스물 세살의 젊은 청년을 향한 비난은 거두고 그의 다음 스텝을 지켜보았으면 합니다. 그 발 끝에서 터질 더 많은 골과 두 문화 사이에서 성장한 그를 보기 위해서라도요.
참고자료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https://biz.heraldcorp.com/view.php?ud=20230117000073
https://www.nvp.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513
https://n.news.naver.com/sports/wfootball/article/117/000375149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2063#home
https://www.chosun.com/sports/football/2022/12/05/7W3TDPGDBRQ4MN7LWEZ6HMXG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