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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Mar 08. 2024

Let there be love

제가 오아시스는 아니지만…카리나를 보며 불러봅니다.

자연스레 타고난 끼가, 한국인의 근성과 집념이 더해져 꽃을 피운

얼마 전, 학원에서 만난 아이 친구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물었습니다.

"너 이 노래 알아?"

"...... 음. 모르겠는데?'

제가 끼어들었죠.

"엇, 그거 르 세라핌의 EASY 아냐?"

르세라핌 - 'EASY'노래 너무 좋더라구요!:)

저희는 늘 이렇습니다. 틱톡에서 유행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이보다 정작 엄마인 제가 아이돌 노래를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SNS도 유투브도 못하니 이런가 싶습니다만..) 이렇게 아이는 얼마 전 자기는 이제 K-pop에 관심이 없다며 한때 가졌던 관심임을 커밍아웃하고 아예 관심을 껐지만, 저는 반대로 과거에도 쭉 관심이 있었고 앞으로도 아마도 계속 쭉 있을 예정입니다. 클럽 HOT부터 이어진 아이돌 사랑은, 일하며 꽃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덕업일치라 해야할까요. 마침 제가 쭉 마케터로, 브랜드를 키우는 사람으로 다뤄온 '화장품'이라는 제품은 트렌드를 읽으며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이들을 프로모션 하는 제품이나 캠페인의 모델로 기용하는 것을 고려해야 했기에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분야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장 인기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어떤 이미지를 대중이 관심 있게 바라보고 소비하는 중인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했죠.그래서 HOT 이후로도 꾸준히 여러명의 오빠들을 거쳐 이제는...동생들을 여전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들뻘이 아닌게 다행...입니다 ㅎㅎ)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저를 중년의 아미로 만들어준 방탄 소년단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저는 뉴욕에서 방탄소년단에 입문(?)하였고, 본진인 서울에 돌아와서는 더 적극적으로 그 관심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잘생긴 청년들"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점이 없지만, 뉴욕에서의 방탄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는 문화대사인 동시에, 마이너리티들의 삶의 애환을 대신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해외에서 사는 한국인으로서 더 감정 이입이 되었겠죠? 그래서 뉴욕에서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국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이유가 덩달아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보았을 때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 멤버들의 행동이나 복장들이, 문화적 배경이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는 의도치 않은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말이죠.


예를 들어,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방송 활동을 위해서 하는 메이크업들의 수준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게이 또는 레즈비언) 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하는 수위에 가까워서 K-POP이 처음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에는 무대 위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후에 K-POP의 인기가 보편화되고, 완벽한 무대와 퍼포먼스를 위한 일종의 장치라는 점이 널리 알려지고 나서야 이 오해는 사라지고 있죠. 하지만 아직도, 남성들이 완벽한 피부 표현와 때에 따라서는 색조까지 가미된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가족 못지않은 끈끈한 정을 쌓은 이들이 하는 별것 아닌 남자아이들끼리의 스킨십이 팀 내에 게이 커플이 있다는 썰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몸의 라인이 가늘고 무용과 같은 동작을 선보이는 한 멤버는 특히 서구 문화권의 일부 팬들이 게이로 미리 가늠하고 그의 성적 취향을 지지한다는 글을 올리고는 하는데요, 이들이 증거라며 제시하는 장면들을 보면 저로서는 실소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면, 이들이 이야기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일련의 모습이나 행동들은, 한국의 남자 고등학생들도 친구들끼리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여기에 간혹, 스타일리스트가 별생각 없이 무지개색이 있는 옷을 6월에 입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역시! 암묵적으로 너희가 GAY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시해 줘서 고마워. LGBTQ를 응원하다니.. 감동이야..!!'같은 피드백들이 넘쳐나곤 해서 과연 기획사에서는 이런 사태를 알고는 있나 강력한 의구심이 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6월은 보통 성적 소수자들 LGBTQ를 지지하는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달이고, 이에 대한 상징으로 무지개가 사용됩니다)

여성 걸그룹의 경우 반대로, 톰보이 스타일의 옷을 즐겨입는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커밍아웃을 못하지만 사실은 레즈비언'으로 해외에 소문이 나있는 멤버들도 있었습니다. 성적 취향이야 본인들만 알 일입니다만, 후에 남자친구 관련 스캔들로 지면을 장식한 것을 보고 레즈비언으로 오인받은 것도 꽤 억울했겠죠?


이렇게, 하나의 K-POP 아이돌을 바라보는 각 나라의 팬들의 천차만별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배경으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는 것]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실감했었습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K-POP답게 이들이 미치는 영향과 대상도 커지다보니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면 중 하나였습니다. 과거 일본의 회화가 유럽으로 건너가 인상파 화가들의 관심과 총애를 받고, 이를 계기로 이 화가들의 작품 세계가 엄청난 성장을 이루며 서로다른 두가지 문화가 만났을 때 어떤 멋진 결과를 보여주는 지 이미 문화적 역사를 통해 우리는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K-pop으로 엄청나게 달라질 문화들을 바로 목격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라니, 짜릿할 수 밖에요.

그런데 말이죠. K-POP의 발상지인 한국에서, 이 문화의 중심에 위치한 아이돌들과 이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시선을 바라보며 가끔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은 순간들이 자주 생겨납니다. 동시에 문화 대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이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가진 아이들은 정말 괜찮은 것일까.'라는 걱정도 함께요.



얼마 전.

그룹 에스파의 멤버 준 한 명인 카리나 양이 프라다의 패션쇼에 함께 참석한 남자배우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한 매체를 통해서 보도되었고, 결국 두 사람은 열애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걸그룹 멤버인 카리나를 둘러싼 팬들의 분위기가 돌변합니다. 카리나가 속한 그룹 에스파가 참석한 이벤트에, 늘 큰 카메라를 가지고 달려오던 카리나의 팬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글들이 보이더니, 얼마안가서는 SM 사옥 앞에서 트럭시위를 하는 팬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결국 다음날, 팬들을 향해 카리나의 자필 사과 편지가 올라왔습니다. 열애설의 주인공이 된 것을 사과하는 편지였죠.

이미지 출처: 아주경제.

2000년생이라는 카리나의 나이는 올해 24살입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시작이 십 대의 사춘기라면, 발달한 사회성과 함께 이를 실행에 옮기고 다양한 사람들을 가장 많이 활발하게 만나볼 나이기도 합니다. 24살의 나이에 함께 일을 하며 시간과 경험을 함께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연애하기에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돌이 본연의 책임을 져버린 무책임한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팬들의 말을 들으며 그 말 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일=삶'이라는 공식을 생각해 봅니다.


17년 전.

그룹 GOD의 팬덤이 절정을 이루던 2년 차에 열애 스캔들이 터진 GDO의 리더였던 박준형은, 소속사 싸이더스로부터 하루아침에 퇴출 통보를 받습니다. 아이돌 그룹의 연애란 있을 수 없는 일이던 시절이기에 기획사에서도 초강경 대응을 한 것인데요, 팀원들과의 연락도 차단해 버려 오해까지 깊을 대로 깊어진 그가, 이 상황에 택한 기자회견에서 그는 지금도 회자되는 명언을 남깁니다.

 "내가 죄가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 한번 만나려고 한 것... "

"나 서른두 살이에요. OK? 서른두 살이면 여자친구 있어야죠."


이 기자회견 후,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여론은 선회하고 나머지 멤버들 역시 박준형 없이는 팀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겠다고 하며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연예인, 특히 아이돌의 열애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됩니다.


그런데, 2024년 카리나의 사과문을 보며 과연 그 17년 전과 얼마나 달라져있나 생각해 봅니다. 일과 사랑, 아이돌에게 공존이 어려운 명제라고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일이라면 가능한 것은 맞을까요?


일. 일은 "노동의 순 우리말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서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고 정의됩니다.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일, 누군가에게는 회사를 다니는 일, 누군가에게는 운동선수로 뛰는 일, 누군가에게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일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인 강압과 책임이 개인의 삶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사람으로 태어나 누려야 할 욕구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 삶은 슬퍼지고 우울해지기 시작합니다.


지속되는 야근과 초과근무 속에서 과로와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결국 보장된 미래도 마다하고 퇴사를 결정했던 그 언젠가의 제 마음과, 야근에 초과근무를 해서도 조직 내에서 존중받지 못함을 걱정하다 결국 자살을 택했던 현대 자동차의 디자이너의 자살, 그리고 학부모의 갑질로 교사로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토로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는 모두 각자 단계는 다를지언정 한 개인이 살아가며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채워지지 못할 때, 어떤 식의 결정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 이미지 : 출처- 나무위키

한국의 GDP는 3만달러를 넘어 35,000달러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도 전쟁 후 '생존'의 욕구가 넘치던 시기를 지나 좀 더 고차원적인 '심미적 욕구'와 같은 것을 추구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100만원짜리 꽃병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기사를 통해서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완판을 기록한 로얄코펜하겐 블루 풀 레이스 화병. 로얄코펜하겐 (출처, 매일경제)

그래서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도 변화하고 있는 듯 합니다.

워라밸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시기를 넘어, 2000년대 일본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프리터족’(자유를 뜻하는 영어 단어 프리‘free’와 노동자를 뜻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이 한국에서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이런 변화의 배경을 두고 이미 이런 사람들을 오래 연구해 온 일본의 야마구치 신타로 도쿄대 교수는 “개인적인 삶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었고, 일에 대한 가치관도 변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죠.


조금 모양새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 단계를 거친 뒤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삶에 가까운 모습을 저는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미국과 프랑스에서요.

과거 제가 다닌 회사들 중, 미국 회사 한 곳과 한국회사 한 곳을 제외하면 모두 프랑스에 본사가 있거나 프랑스에서 시작된 브랜드들이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어가 아니라 불어를 공부할 것을 그랬다는 생각을 일하는 내내 참 많이 했네요...!) 그곳이 파리인지, 아니면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인지에 따라 기업의 무드가 깍쟁이 파리지엥이냐, 더욱 느긋한 남프랑스냐로 달라지긴 했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여름이 되면,

모두 길게 휴가를 간다는 점이었어요.


매 달 본사와 진행하는 월간 리뷰 미팅등이 여름에는 길게는 두어달까지 쉬어간다는 것이 한 숨 돌릴 기회를 주어 기쁘긴 했지만, 본사의 담당자들이 여름이면 사라지는 것을 염두한 한국 오피스에서는 이 시기에 결정이나 준비가 필요한 부분은 2-3달, 길게는 6달까지 일을 당겨서 해두어야 했었습니다. 한국 시장에 OFF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시기는 없으니까요. 저쪽의 휴가를 위해 우리의 오늘이 더 바빠지는 아이러니함, 웃기죠? 그런데, 출장을 가서 여름 휴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되려 그렇게 쉬지 않는 우리를 의아해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려면 재충전에 그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하면서요.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이 24시간 운영되는 동대문 시장을 보며 놀라움을 표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특히 오후 5시나 6시면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고 장사를 하던 사람들도 집으로 가는 것이 익숙한 유럽에서 온 사람들 눈에는, 잠 잘 새도 없이 돌아가는 한국의 시장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쉼'이나 '휴식'이라는 단어는 사치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문화 속에서 살던 한국인의 시선에서 볼 때, 여름에 길게는 두 달씩 사라지다시피 하는 이 프랑스인들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휴가만 그랬을까요. 내 애는 집에서 엄마 언제오냐고 묻는데, 아이를 옆에 안고 미팅에 들어오는 프랑스 상사에 샘 아닌 샘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욕으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되면서 슬슬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 리. 만.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영화와 책과 영화 속에서, 유러피안의 시선으로 미국인을 말할 때 '돈만 밝히고 가족과 휴식이란 뭔지 모르는 채 일하는 (천박한) 일벌레들' 와 같이 설명하고는 합니다. 특히 뉴욕은 미국의 그런 면을 가장 부각하는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요. 미국 내에서도 유난히 성취 지향적이고, 야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기에 [뉴욕에서 해 낸다면, 세계 어디서든 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일부분 사실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프랑스인들의 여름휴가가 2 달이고, 뉴욕의 휴가가 길어야 2주인 차이가 있듯, 뉴욕 사람들과 프랑스인들이 '일'을 보는 시선과는 약간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직업이란 나를 이루는 여러 가지 페르소나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는 느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이라면, 일과 가족 그리고 쉼을 함께 밸런스 있게 가져가는 삶을 지양하고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유능한 인간으로 평가되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 미국(특히 뉴욕)이라 일부러 더 가정적 면모를 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일'은 전체 삶의 어떤 부분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나라의 문화는 맥락을 함께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소위 글로벌 일벌레들이 가득한 뉴욕에서 열일하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는 늘 '가족'과 '쉼'이 '일'과 함께 공존했습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면 업무용 메일 확인이 안되니 불안해서 크루즈 여행은 안한다는 수십억대 연봉의 변호사도 아이와 또는 아내와의 약속을 뒤로 미루거나 그 자리에 빠지는 경우는 없는 아빠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카드 회사의 회계팀을 이끌고 있는 여성 리더였지만, 아이의 학교에서 학부모 위원을 맡아 학교의 예산 집행을 리뷰하고 이를 관리하는 역할까지 하며 빠짐없이 학교 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두 아이의 엄마였죠.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일과 떨어져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고심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방면으로의 시장 역시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일'에 대한 개념의 변화와 젊은 세대의 직장이나 회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종국에는 한국도 이 두 나라 중 어느 한쪽에 가깝게 변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고는 하는거죠.


하지만 현재를 기점으로 볼 때,  K-POP 아이돌들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은 그저 그 일과 역할 자체가 그들의 삶이를 바라는, 과거형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잘 아는 기획사들은 아직 비판적 사고가 형성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학생들을 캐스팅해서 성장과 트레이닝을 함께 하며, 마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음식처럼 "계약 후 0년까지는 연애금지"와 같은 조항을 계약항목에 명시합니다. 그리고 이를 보는 일부 팬의 시선 역시 기획사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카리나의 사과편지를 보며 느낄 수 있었죠.


소설 Crying in Hmart( H마트에서 울다) 에는 이런 부분이 등장합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나,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방학이면 한국에 왔던 어린 미셀 자우너는 가는 곳마다 이국적인 외모로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가족들과 간 민속촌에서는 그곳에서 촬영 중이던 방송팀의 디렉터로부터 이국적인 그녀의 외모가 눈에 띄어 캐스팅용 명함을 받게 되죠.

작가이자 뮤지션인 미쉘 자우너. 이미지 출처- 엘르

한국 아이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들뜬 그녀를 향해 그녀의 엄마는 한국에 살지도 않고 한국말도 못하는데 무슨 아이돌이냐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하죠.

"나 한국말 배울 수 있어, 엄마! 내가 한국에 살면, 나 유명해 질 수도 있다고!"

이런 딸에게 엄마가 말합니다.

"넌 한국에서 절대 유명해질 수 없어.

넌 누군가의 인형으로는 못사는 아이니까!

넌 엄마가 모자를 쓰라고 해도 안 듣잖니."

일련의 대화 끝에 미쉘은 생각합니다.

That was Mom, always seeing ten steps ahead. In an instant, she could envision a lifetime of loneliness and regimen, crews of men and women picking at my hair and face, choosing my clothes. instructing me on what to say, how to move, and what to eat. She knew what was best: to take the card and walk away.

Just like that, my hopes of living as a Korean idol were squashed, but for a short time I was pretty in Seoul, maybe even enough to have a shot at minor celebrity. If it wasn't for my mother, I might have wound up just like the pet alligator at the Chinese restaurant. Caged and gawked at in its luxurious confinement, unceremoniously disposed of as soon as it's too old to fit in the tank.

그게 우리 엄마였다.
늘 열 걸음 앞을 내다보는 사람.
명함을 건네 받은 그 순간, 엄마는 나의 일생을 휘감을 외로움과 규제들, 내 머리와 얼굴을 매만지며 내가 입을 옷을 고르는 스탭들. 그리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 먹는것까지 지시하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나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내게 최선인지 알고 있기에, 그 명함을 받고 최대한 멀어지는 쪽을 택했다.

그냥 그렇게, 한국에서 한국 아이돌로 살 수도 있다는 나의 희망은 무참히 부서졌다. 하지만 잠시나마 나는 소소한 유명세란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에서는 꽤 예쁜 아이였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난 아마도 중국 레스토랑의 애완 악어처럼 생을 마감했을 지도 모르겠다. 고급스러운 우리에 갖혀 얼빠진 듯 바라보다, 나이가 들어 탱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면 바로 처분되는 그런 악어 말이다.

- Crying in H Mart : H마트에서 울다/ 미쉘 자우너 -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나이에 가능하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K-POP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렇게, [고급스러운 우리에 갇힌] 삶이라고 보는 안타까움과 비난이 함께 존재합니다. 그 결과, 이런 삶을 살아낸 아이돌들 중에는 원활히 자아에 대한 그 고민을 넘어 성인이 되어 또 다른 삶을 이어가는 아이돌들도 있지만, 아주 어린나이부터 한 사람보다는 주어진 일을 잘 해내어 최상의 퍼포먼스를 내보이는 [아이돌]이라는 하나의 상품으로 자라나 이와 분리할 수 없는 자아를 갖지 못하는 고통을 토로하며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있었지요.


 "연예인들도 사람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연예인 일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가
 
‘너는 상품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최상의,
최고의 상품으로 존재해야 해’라는 거예요.”
- 설리(최진리ㆍ1994~2019) -


설리의 자살을 보며, 이들의 공연과 연기를 보며 즐기는 이 사회가 아이돌을 한 인간의 '삶의 일부'로 인정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른 나라, 특히 일과 삶의 분리가 확실한 곳에서 태어나 무대위의 자신과 무대 아래의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고, 그 두가지 다른 삶에 대해서 대중 역시도 너그러운 문화였다면 그 일을 좀 더 즐기며 할머니가 된 설리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운 마음 말입니다.


이 부분은, 현재 해외로 뻗어나가는 K-POP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이 한계점으로 언급할 때 늘 함께 언급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K-POP 아이돌이란 개개인의 타고난 끼와 개성에 한국의 트레이닝 시스템으로 강화된 결과라기 보다는 정한 컨셉에 맞춰 인위적으로 훈련하고 만들어낸 인물에 가깝고, 그 안의 아이돌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으로 치부되는 현실. 음악방송을 보고 있으면 분명 아까 본 것 같은 그룹이 또 나오나 싶게 비슷비슷한 모습들이 넘쳐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테구요.

“These days, I get the sense that when most people hear the term K-pop — and by ‘most people,’ I mean people around the world and not just in Korea — they often just think of girl groups and boy bands that fit a particular mold,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K-pop이라는 용어를 들을 때 —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이라 함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 그들은 종종 특정한 모델에 맞는 걸 그룹과 보이 그룹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Regina Kim,a New York-based journalist who writes about Korean pop culture. @ New York Times -


저는 해외살이에 지친 소수민족으로의 삶을 위로해준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좋았고, 한국인의 기예가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는 그들의 무대가 자랑스러워서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팬이기에 앞서 더 많이 산 어른으로 이들을 오랜시간 지켜봐오면서...이 혈기왕성한 이십대의 젊은 청년들은 연애도 (표면적으로는) 못하고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과연 정신적으로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들었어요. 기본적인 사랑에 대한 욕구는 분명 플라토닉 러브에 가까운 팬들의 사랑으로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비슷한 나이대의 미국의 아이돌 저스틴비버처럼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도 하고, 이별도 해보고, 그 와중에 진짜 사랑도 만나고..한다면 이들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열애설이 난다면,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아이돌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바라봐줘야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이들의 '일'도 그 사람의 일부분이라고 보는 시선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삶이 먼저 변해야 할테니까요. 나의 삶이 곧 일이 아니고, 일을 하는 것만이 삶의 필수조건이 아닌 삶이어야 타인의 삶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TV속의 인물들도, 마음껏 사랑하고, 일이 아닌 삶의 영역도 소중히 하며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내보이는 문화가 편안하게 자리잡을 즈음에는....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도 좀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라야, 우리 아이들도 더 스스로를 위해서 행복한 지점을 자유로이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자료

**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46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6942.html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3gzr399pngo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70722000039#:~:text=%EB%B0%95%EC%A4%80%ED%98%95%EC%9D%80%20god%20%ED%99%9C%EB%8F%99%20%EB%8B%B9%EC%8B%9C,%EA%B2%8C%20%ED%99%94%EC%A0%9C%EA%B0%80%20%EB%90%98%EA%B8%B0%EB%8F%84%20%ED%96%88%EB%8A%94%EB%8D%B0.

https://www.koreatimes.co.kr/www2/common/viewpage.asp?newsIdx=273514&categoryCode=398

https://youtu.be/SFhuS9IpNcI?si=kipohsH4EjYLtwOc

박준형씨의 실제 기자회견 장면

https://www.mk.co.kr/news/it/1095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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