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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Apr 19. 2024

오늘의 우리가. 내일의 우리를 지켜줄거야.

The power of Unconditional Love


"...개를 키워보라고요?"

"네, 개를 키우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귀국 후 반년 즈음 지났을까요. 학교에서 일 년에 두어 번 치르는 테스트 결과에서 황당할 정도로 뒤로 달려간 아이의 테스트 결과를 받아 들고,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청한 면담 중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찾아뵌 날이었죠.


친한 친구들, 익숙한 환경을 뒤로하고 '고국'이기는 하지만 알고 보니 낯선 곳에서 아이는 나름 고분군투 중인 듯했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양호실을 찾는 횟수가 잦았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거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는 했습니다. 퇴근한 제게 더 아기가 된 것처럼 놀자고 매달리다가도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모드로 늘어져있고는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걱정은 했지만, 눈앞에 성적이라는 수치로 드러나자 당황했습니다. 프린트해간 성적표를 들고 과목별로 여쭈어보는 제게, 선생님은 중요한 포인트는 지금 학업적인 성취가 아니라 마음을 위로해 주고 들여다보아 주는 것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그 말에 눈물이 터졌습니다.

프린트해서, 낙차가 큰 과목을 동그라미 쳐서 가져간 아이의 성적표를 들고 있는 제가 부끄러워졌거든요. 제가 더 먼저 보았어야 했던 것은, 떨어진 성적이 아니라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아이가 학교에서 겪고 있는 외로움의 그늘이었으니까요.


조언을 구하는 제게,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주시던 중 함께 나온 이야기가 바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세계가 명확히 있는 고양이보다는, 하루종일 가족들을 곁에 있기를 원하는 개는 늘 아이의 곁에 함께하며 빈 마음을 채우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이죠.



Third Culture Kids 제3문화 아이들.

이들을 평생 따라다니는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외로움"이죠.

가장 가까운 부모조차 이들과 다른 문화에서 성장했기에 이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 본인도 알지 못하는 외로움을 쌓아둔 채 자라난다고 해요. 이민 가정이나 이러한 TCK아이들에게는 같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형제, 자매의 역할이 그 누구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알면서도 엄두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이국에서의 생활은 변수의 연속이었고, 익숙해질 만한 시점에 등장한 코로나로 예상치 못한 변화에 힘든 마음은 이미 최대치를 달성했거든요. 그렇게, 우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아이는 벌써 많이 자라 버렸고, 그 외로움은 깊어갔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글을 참고하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것 같아 아래 첨부해 둡니다)

https://brunch.co.kr/@sunheean0305/168


남편이나 저나, 동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년시절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말이죠. 그러니,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키우거나, 막냇동생이라고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물이 동물이지.....'라며 작은 비난과 의문의 조각을 섞어서 바라보고는 했던 듯합니다. 친한 친구들이 반려동물을 잃어 슬퍼할 때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 못 했지요. (이해 못 했었다는 것을, 반려동물을 키운 이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처음, '우리도 동물을 키워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정작 아이가 태어난 다음이었습니다. 워낙 다양한 동식물을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여행으로 가는 모든 도시에서는 동물원과 수족관이 필수 코스가 되었고, 집에서 키우던 동물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맨해튼 그 좁은 집에서도 갖가지 동식물을 키웠으니까요. 반딧불, 무당벌레, 나비애벌레, 개미, 장수풍뎅이, 소라게, 금붕어, 열대어.... 에 거북이와 각종 화초들까지. (아마, 한국에 오면서 친구들에게 입양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 즈음 우리 집은 동식물원이 되었을 듯합니다. ) 당연히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아이의 열망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집 앞의 도그파크에서 뛰어노는 개들과, 주인과 산책하는 개들을 보면서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하던 아이였죠. 하지만 "너 하나 키우는 것으로도 힘들어~."라며 손사래를 친 것은, 기존에 키워본 다른 작은 곤충이나 동식물보다 훨씬 더 많은 손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돌아보니, 그때 우리가 과연 뭘 알기는 했나 싶습니다. 하하하하하하. 아이를 낳기 전에 [육아가 이럴 것이다]라고 예상해 보는 것이 택도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날, 선생님과의 대화는 이제 우리에게 '반려동물을 키우느냐, 마느냐'라는 선택의 이슈가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도 한 동물의 일생을 책임지겠다는 다짐의 무게가 어찌나 묵직한지… 입양 서류에 사인을 하며 남편과 함께 번갈아가며 땅이 꺼져라 얼마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생명을 평생 책임진다는 일의 무게를 너무 알아버린, 우리는 부모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개육아.”.

사람 키우는 일과 참 여러모로 비슷했습니다.

개 하나 키우기가 사람 하나 키우는 일의 1/3 정도는 되는 것 같다며 남편과 자주 이야기 하고는 했을 정도로그 강도는 약할지라도 육아와 비슷한 결의 삶이더군요.

아기를 돌보는 일. 강아지를 돌보는 일

어린 아기를 돌보는 일은 처음엔 육체노동에 좀 더 가까운 고된 일입니다. 하루종일 아이를 안고 있는 팔도 아프고, 등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죠.. 불편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죠. 그런데, 아이가 좀 자라서 육체적 피로의 강도가 낮아졌다 싶으니, 이젠 또 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상황들이 계속 새로 등장합니다. 거기에 교육문제가 더해지면, 결국 몸이 힘드냐 마음이 힘드냐의 문제일 뿐 고됨의 총량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죠.


개를 키우는 것도 참 비슷했습니다.

우리 집에 막 온 생후 4개월이 된 강아지는, 엄마 젖이 아니라 사료를 먹긴 하지만 신생아처럼 자주 먹고 자주 싸더군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 아! 사람 아기들처럼 뱃고래가 작구나...!!'

개와 함께 자는 건 아닌 듯 하니, 예쁜 개집을 사주고 거실에 놔두고 잠을 청하러 들어갔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 앞에는 펜스를 쳐두었습니다. 그런데 거실에서 밤 새 낑낑거리며 울고 있는 게 아닌가요. 며칠을 잠을 설친 뒤, 어디가 아픈 건가 싶어 병원도 데려가고 개집 안의 쿠션도 바꿔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펜스를 치워보았더니, 작은 발로 기다렸다는 듯 침대로 올라와 우리 가족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제야 알았어요. 외로워서, 가족들의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엄마가 같이 누워 토닥이다가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귀신처럼 잠이 깨는 아기처럼, 이 작은 강아지도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뒤늦게 안 남편과 저는 이 동물이 가진 아기와의 공통점들에 얼마나 너털웃음을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후, 저녁이 되면 저희보다 먼저 침대 위에 올라가서 베개까지 차지하고 자고 있는 반려견 미뉴입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를 키우며, 늘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아이가 좀 자라니 놀이터에서 아이를 지켜보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특히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줄넘기부터 테니스까지 대부분의 스포츠를 실내에서 하는 서울이다 보니 계절 상관없이 아이를 지켜보며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더랬습니다.

그런데……개에게는 실외 산책이 꼭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찬 바람도, 더운 날씨도 마다하지 못하고 목줄을 잡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하필 흰색에 털이 복슬복슬하고 다리도 짧은 우리 집  강아지는 산책 한 바퀴에도 마치 흰색 대걸레를 들고 온 동네를 한 바퀴 돈 것이나 다름없는 형상으로 변화하고는 해서, 산책 후 목욕은 필수입니다. 젖은 털까지 다 말리고 나서 시계를 보면 언제 이리되었나 어이가 없을 때가 많아요. 욕실에서 개를 씻기느라 애쓰고 나면, 얼굴에 흐르는 것이 땀인지 물인지 알기 어려워지는 순간도 도래합니다. 기분이 좋다며 후루루루룩 털어내는 물방울을 함께 뒤집어쓰고는, 사우나 다녀온 사람처럼 벌게진 얼굴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강아지를 타월에 감싸서 드라이기 앞에 앉을 때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매일 저녁 직접 해줘야 했던 아이의 목욕시간이 떠올라 웃음이 터집니다. 그때의 저와 똑같은 몰골이 너무 웃겨서 말이죠. 출산을 하며 여자는 2.8달만큼 더 늙는다는데. ** 개를 키우면서는 글쎄요... 또 2년 즈음 늙은 느낌입니다. 하악……..


아이를 키우며 포기하게 된 것들이 많다 생각했는데, 개를 키우며 더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다 큰 어른보다 좀 시끄럽고,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하고, 가끔 길가에 드러눕기도 하니.. 이 모든 것에 너그러운 곳들을 주로 찾아야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노키즈존'인지 아닌지를 미리 체크하고 가야 하는 미션도 추가되거든요. 그렇게 점점 좁아든 생활반경은 키즈카페-백화점-공원-마트의 굴레를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이 한국에서 유소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현실인데, 여기 "개"가 들어가니 갈 곳이 더 줄어들었습니다.


아이와 개 모두 불편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해주는 유일한 선택지로 완전한 야외를 택하거나, 그것도 어려운 날씨면 아예 외출을 포기하고 집에 머물기를 택하는 경우가 늘었죠. 애완견 동반이 되는 몰을 방문하더라도 식당은 애완견 입장이 안되니 결국 간식이나 좀 들고 다니며 먹다가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외출 루틴이 변화했습니다. 아이가 할머니댁에 놀러 가거나 친구네 놀러 가서 자고 오는 날도, 둘이 어딘가 나가서 놀까 하다가도 집에 혼자 있는 털북숭이를 생각하며 집에 눌러앉는 경우가 훨씬 늘어났습니다. 여행은 말할 것도 없죠. 아마 잠시라도 돌봐주실 수 있는 다른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마저도 참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아끼는 마음, 개를 아끼는 마음

그런데 말이죠.

이런 불편하고 힘든 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개육아의 세계에 들어선 지 2년이 넘은 지금은, '아이를 위해서'라는 생각에 한 선택이 아이뿐만 아니라 저와 남편까지 온 가족을 변화시켰기에 그때의 선택을 참 많이, 참 자주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삶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려동물을 꼭 키워보시라 권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개가 주인인 저를 바라보며 따르는 눈빛은 아이가 저를 바라보는 눈빛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특히, 아이가 두세 살 무렵과 참 닮아 있어요. 제가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하는 아이의 눈빛입니다. 온 세상이 엄마로 가득한 그 예쁜 시기에, 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육아하던 워킹맘이었고 아이를 마주할 시간이란 고작 하루에 한두 시간이 전부였기에 놓친 그때 말입니다. 그래서 눈에 많이 담지 못한 채 자란 아이를 그리워하며 더 이 작은 강아지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옆구리만 쿡 찔러도 웃음이 멈출 줄 모르던 그때의 아이처럼, 공만 던져줘도 신이 나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반려견 미뉴를 보며 제 웃음이 멎지 않습니다. 고작 반나절 떨어져 있었는데도 만나면 뽀뽀하고 볼을 비비던 아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할짝할짝 제 손을 핥으며 뽀뽀를 대신하는 반려견의 모습은 과거의 그 언젠가로 절 데려갑니다. 이 둘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노력보다 훨씬 큰 힘으로 돌아오는 저를 향한 무한 사랑은 가끔은 이런 사랑받을 정도로 내가 잘하고 있나 싶을 정도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구상에 고작 유전자 몇 개, 어쩌면 그것도 못 남길지 모를 나라는 사람을 이토록 사랑해 주는 이 작은 인간과 동물이 주는 행복은 가만히 있다 생각만 해도 코 끝이 찡해지는 감동입니다.


Unconditional LOVE (무조건적인 사랑)

개는 사람보다 7배 빠른 속도로 삶을 산다고 합니다.*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만 해도 1-2살 아기와 같았던 강아지는 2년 사이에 이제 올해 10살인 딸아이와 비슷한 생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것도 앞질러 곧 제 나이와 비슷해지고, 그러고 나서 제가 중장년기를 지날즈음 개는 노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과 다르게 몸은 자라지만 마음과 머리는 3-4세의 아이에 머물러 있는 개는 생의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고 저희 곁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아이와 개의 가장 큰 차이겠지요. 아이는 머지않아, 다 큰 성인이 되어 제 곁을 떠나가야 할 것이고 그래야만 하니까요.


다 자라면 떠나보내야 할 존재와,
나이가 들 수록 더욱 떠나갈 수 없는 존재.


그렇게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한 아이와 개라는 두 존재를 키우며 마음속의 빈 구멍이 채워지고 나서야, 그 구멍이 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온 마음 가득, 오직 '엄마'라는 이름 하나로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는 그 마음을 보며 매일 감탄합니다. 아이의 까만 눈 속 가득 제가 있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화장실까지 따라와 문 밖에서 절 기다리는 개를 보며 제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어라 해야 할까 고민해 보았는데, 그건 아마도 “고마움”이 아닐까요.

매일이 치열한 삶이고, 살아남기의 연속이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200년 후의 사람들에게 내 이름 한자 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떠난 뒤 잊히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죠. 그러니 한편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다면 허무하게도 느껴지는 것이 삶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매일 작은 순간의 행복을 향해 좀 더 걷자 생각합니다. 정말 운이 좋아 내 이름 석자 남길 수 있다고 해도,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생에 느끼는 충만함일 테니까요. 반려견을 키우며, 눈에 많이 넣지 못하고 놓친 아이의 유년을 떠올리며 잘 모르고 지나간 과거의 행복을 떠올리고 아쉬워한 저인지라, '지금'의 행복의 중요함을 더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아이가 가장 예쁜 나이, 반려견 미뉴가 막 성견이 되어 가장 건강하고 활발할 시기에 곁에서 이 두 생명체의 가장 빛나고 예쁜 순간을 지켜볼 수 있는, 지금을 분명 그리워할 시기가 또 올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얼마 전, 빈센트 반 고흐를 세계적인 화가로 만든,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아내였던 조애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그녀는 결혼 후 21개월 만에 남편 테오까지 세상을 떠나고 산더미같이 남겨진 아주버님(빈센트 반고흐)의 그림들과 아이를 품에 안고 망연자실합니다. 하지만, 훗날 남편과 형이 주고받은 서신들을 읽어가며 빈센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이를 아낀 남편 테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하며 반 고흐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는 화가로 만든 것이 바로 조애나였습니다. 이를 통해 그녀는 미술계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중요성을 알린 최초의 여성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들을 고통 속에 보내야 했습니다. 보수적인 네덜란드 사회의 예술인 커뮤니티란, 그녀에게는 접근조차 쉬운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그녀에게 긴 시간 삶의 힘이 되어 준 것은, 결혼 후 채 2년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넘치는 행복이었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그녀의 일기에 이렇게 써둘 정도였다고 해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와 조애나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위해 그린 "Almond Blossom"


누군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아 충만해진 마음은, 그 뒤에 어떤 인생의 풍파를 만나더라도 이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애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웃음보다 눈물이 좀 더 많았던 20대를 지탱해 준 것은, 어떤 특별한 장소에서의 추억이 아닌 네 식구가 도란도란 둘러앉아 먹던 어느 평범하고 따뜻한 저녁식사 시간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내 가정 속 남편과 아이, 그리고 반려견을 바라보며 매일 되새기는 이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 지금 아이의 마음도 채우고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아이에게도 한 번은 크던 작던 지나갈 인생의 풍파도 헤쳐나갈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은 늘 함께인 아이와 반려견이, 각자 다른 삶의 길을 가게 되는 시점에 저는 아마도 참 많이 울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날이 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와야 할 날이기에…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껴안아보며 우리 가족의 삶에 가장 행복할 것임에 분명한 구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되새겨보려 합니다. 이것이 이 모든 수고로움과 고생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곁에서 '엄마'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겠지요.







참고자료, 함께 읽어볼거리들.


1. *개 나이 환산법*

https://m.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1911291656001#c2b


2. TCK 의 외로움에 대한 글을 하나 같이 가져와봅니다.

솔직한 TCK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어요.

https://ajnabidiaries.wordpress.com/2017/09/21/why-being-a-third-culture-kid-is-lonely/

3. **여성의 출산과 노화에 대한 상관관계를 기재한 논문

Pregnancy accelerates biological aging in a healthy, young adult population

Each additional pregnancy during early adulthood was associated an estimated 2.4 and 2.8 months of accelerated biological aging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4/04/240408150449.htm


4. 조애나 반 고흐에 대한 책을 읽고 요약해 둔 글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sunnystoryofmylife/223386225180?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5. 몇 달 전 TCK 키즈에 대해서 써둔 글도 다시 퍼와봅니다.

https://brunch.co.kr/@sunheean030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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