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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May 24. 2024

다시 써보는. You Can have it ALL.

But not at the same time. 

한국에서는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는 5월의 세 번째 주를 지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이 5월을 May라고 쓰는데요, 1년 여러 달들 중, 가장 외우기 쉽게 짧게 쓸 수 있는 그런 달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더 기억하라는 의미일까요? May라는 단어가 어디서 왔나 찾아보니 라틴어 [Maius]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 달력에 써져 있던 5월에 해당하는 달에 이렇게 써져 있었는데, 이 또한 Maia라는 여신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해요. 한국은 가족행사로 넘쳐나서 혹시 "가족"에 관련된 여신인가 했는데…비슷합니다!! Maia는 로마 신화에서 자연의 [생명력과 번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신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씨앗에서 자라는 새 식물, 동물의 번식, 그리고 사람들의 경제적 번영과 같은 성장과 번영과 관련된 모든 측면과 연관되어 있지요. 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그리스의 또 다른 신 Hermes(에르메스)의 어머니기도 합니다.


이런 5월이 제게는 아이의 한 학년 마무리를 맞이하는 행사들로 매일이 참으로 정신없는 시기기도 합니다. 외국인 학교는 미국의 학제와 동일하게, 6월이면 학년이 끝남과 동시에 여름 방학을 하고 다음 학년을 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5월은 한 학년 내내 얼마나 '성장' 했는지를 여러모로 살펴볼 수 있는 행사들이 가득합니다. Talent show나 콘서트, Field day(운동회)와 같은 행사들이 거의 매주 캘린더를 가득 채우지요. 뿐인가요, 이제 곧 거의 12주에 가까운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이니, 코앞의 여름을 어떻게 활용해 볼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니 매일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이어온 연재를, 5월 초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 숨고를 시간을 갖기로 했었습니다. 작가로의 제 삶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아이'를 돌보는 부분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시기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일과 엄마로써의 역할 사이에 균형을 잡으며 사는 매일이지만, 그 무게추를 잠시 “엄마”에 좀 더 실어야 하는 시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5분 대기조 같이 갖가지 일정이 쏟아지는 이 삶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는, 정기 연재를 좀 미루어두고 일상에 집중하기로 했지요. 긴 호흡으로 집중이 어려우니 그간 쌓아두고 못 읽던 책들도 읽고,  시간이 없어 미루어둔 드라마와 영화도 보며 충전을 핑계로 글을 "쓰는" 행동을 잠시 멈추기로 했었지요.


그런게 이 기간 동안 알게 된 의외의 사실들이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 갖는 힘

스스로의 약속이자, 적지만 소중한 독자분들과의 약속을 위해서 '매주 금요일 발행'이라는 공언을 한 시점에 많은 '재고'를 쌓아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에 에너지는 가득했지만, 글로 완결되어 있는 단편들이 제 글 서랍안에 가득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트위터에 '00시 00분에 신차를 공개하겠습니다..'라는 공개적인 다짐에 가까운 공지를 올려두고, 그에 맞춰서 팀과 회사를 미친 듯이 밀어붙여 던진 말들을 (때로는 다소 늦을지라도) 사실로 만드는 일론머스크 처럼, 공개적으로 해둔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떻게든 일주일의 마감을 지킬 수 있는 프로세스들을 고민하고 만들게끔 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SNS의 순기능이랄까요.


겨. 우. 일주일에 한 편....?

간신히 일주일에 한 편!

일주일에 한 편인데도, 글감을 찾느라 도서관과 집안의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야 했습니다. 읽는 양의 증가에 따라 자료들을 정리하는 노하우도 늘어날 수 밖에 없었죠. 아이의 생활을 돕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들을 온통 읽고 쓰는데 써도, 주간 마감이 빠듯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잘하게 흩어져있던 작은 시간의 조각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책을 꺼내 한 장 읽고, 아이를 운동장에서 기다리는 5분간 오전에 쓰다 만 문장을 마무리하거나, 저녁 식사로 먹을 음식을 레인지에 넣어놓고 주방에 놓아둔 노트북에 한 줄을 더 쓰며 하루의 빈틈이 없이 굴려야 했죠. 그 과정에서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줄이고, 집안 상태에 대한 기대치도 변화했습니다. 친구들과 여유있게 만나서 커피 한잔 하는 시간이나, 오랜 시간 이동이 필요한 곳으로의 나들이는 최소화 할 수 밖에 없었지만...그렇게 조각을 모아 붙이듯 적어내려간 시간 속에 쓰는 즐거움이 하나, 둘 싹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금요일을 향해 RUN RUN RUN

매주 '금요일'이라는 마감 기한을 기준으로 보통 가장 이상적인 일주일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월 : 이런저런 책이나 뉴스, 자료를 뒤적이며 이주의 글감을 찾아보고

화: 그중, 쓸만한 소재들에 대한 국내외 자료나 책을 정리하고, 주로 도서관에 가는 것도 화요일.

수: 전체 맥락은 아니더라도, 일부 단락별로 소주제에 대해서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려 두다가,

목: 조각들을 이어 붙어 흐름으로 만들어두고, 가능하면 전체 글을 한번 읽으며 수정.

금 : 필요한 이미지나 수정 후 발행.

토: 충분한 휴식을 갖으며 가족과의 시간을 만끽하고

일: 다음 생각이 들어찰 공간을 만들어주는 의미로... 머릿속을 비우면서, 다음 소재 고민을 해봅니다.

이런저런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써 내려가려 노력했지만, '주간 마감'이라는 약속 속에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들이 조금 더 체계를 갖고 잡혀가기 시작했어요. 아이와 남편 역시 바쁜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이 금요일이였기에, 저도 한 주의 마감을 금요일에 맞춘 것이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금요일 마감 이후 편안하게 가족 모두가 주말을 즐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금요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월-화-수-목 이 달려가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나약한 나라는 인간.

하지만, 제 생각보다 저는 참 약한 의지의 사람이더군요. 간신히 금요일 마감을 맞추는 어떤 날에는, 다음 주 글은 미리미리 주말에 꼭 써두겠다며 다짐을 늘 했더랬습니다. 허나 주말 내 실컷 늘어져서 마감 후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월요일에야 책상에 앉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어쩌다 보고 싶은 친구라도 하루 만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하루를 쉬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감 하루 전날인 목요일 밤이면 노트북을 펼쳐놓고 잔뜩 스트레스를 받으며 울상을 지으며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하며 초조하게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제 모습을 아이가 혀를 끌끌 차며 바라보는 날들도 속출했습니다. 덕분에, 아이에게 속사포처럼 쏟아내던 잔소리가 줄었죠. 이미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눈앞의 휴식은 이토록 달콤해서 벼락치기를 하느라 정신없으니, 열 살 아이에게도 눈앞의 즐거움을 미루고 할 일을 먼저 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구나 싶어 져서 말이죠. 긍정적인 부작용이랄까요?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가장 오래 곁에 머무는 타인인 아이를 보는 눈도 너그러워졌습니다. 아이를 향하던 시간보다, 제가 써둔 글과 씨름하는 시간이 더 많으니 그 안에서 아이는 아이 나름의 세계를 더 많이 키워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나의 눈이 향하는 곳

어떤 주제에 대한 제 생각을 쏟아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이 가는 주제'였습니다. 평소에 고민을 했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것들이 써야겠다 생각하니 떠오른 경우도 있었지만, 어설프게 알고 있다가 글을 쓰면서 조사를 해보다가 빠져든 내용들도 많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관심이 있는 키워드들이 점점 명확해졌습니다.

#아이#소외계층#육아#이중언어#외로움#기회#여성#출산율#포용성#사회문화

비슷한 결을 이야기하는 작가님들의 책과 이름이 마음에 오래 남고, 굳이 기록하려 하지 않았다면 흘러갔을 영상과 강연들이 남아 제가 자주 바라보는 세계의 색을 하나씩 칠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아직 어떤 큰 그림이 되기에는 너무 어설프게 일부를 그리고 있는 느낌이지만, 적어도 제가 좋아하는 색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에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나'를 좀 더 알게 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더 많아진다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그래서 써 내려갑니다.

처음 5월에 휴식기를 가져야겠다 생각했을 때만 해도 당분간 비어있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듯. 읽고 쓰고 보는 일에만 조금이라도 낼 수 있는 시간을 모두 사용해 보자 다짐했습니다. 쓰는 일이라는 게,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말이라는 방울이 쏟아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부지런히 쓰는 시간을 건너, 잠시의 휴식기를 갖는 동안 [말]이란,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쓸수록 차오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쓰는 동안에는 쓰고 싶은 말들이 넘쳤는데, 막상 읽고만 있을 뿐 저를 통해 나오는 말이 없는 시간은 그저 타인의 말들이 흘러들어올 뿐 제 생각이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의도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저 쓰는 즐거움과 작은 기록이 만들어내는 먼 미래의 어떤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누려보기로 했습니다. 



번영과 성장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5월은, 제가 작가로 성장하는 데에는 분명 어려운 시기임에 분명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조사에 충분한 시간을 쓰기 어려워 지나가는 상념들만 남길 수 있을지라도 이렇게 지나가는 '엄마'로 성장하는 시기는 또 다른 깊이를 선사해 주리라 믿기로 했습니다. '쓰는 일'과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며 가정을 챙기는 일'을 동시에 완벽하게 해 내기에는 버거운 달이지만, 시기가 다를 뿐 이 두 가지가 서로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리라는 사실도요.


그래서, 이 말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You Can have it all.
But not at the same time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어요.
다만, 같은 시기가 아닐 뿐이에요.

-Michell Obama 미쉘 오바마 -


https://www.youtube.com/watch?v=2J37brQgk88


5월의 저는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저는 두 가지 모두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놓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그러니, 조금 쉽고 가벼운 글이라도 계속 써내려갑니다. 과거에 지나온 어떤 순간들이, 적어놓은 어떤 말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돕고 있듯, 오늘의 제가 내일의 저를 또 좋은 길에 놓아 줄 것이라 믿으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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