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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Feb 10. 2023

1인치의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능 <피지컬 100>


욕구란 모름지기 단순히 ‘욕망’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그 필수적인 성격 때문에 생이 약동하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회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들 욕구의 예로 드는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을 생각해보라. 남녀노소 상관없이 이 욕구 없이 생이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허황된 생각일 뿐이다. 이 욕구가 똬리 틀고 있는 육체는 따라서 가장 원초적인 장소이고 우리의 관심 대상이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가장 먼저 대면하고 호기심을 보이는 대상은 자기 몸 아니던가.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2023)(이하 <피지컬)은 육체를 전시하는 게임쇼다. 1회부터 등장하는 자신의 몸을 직접 본뜬 토르소는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곳을 가리킨다. 100개의 토르소는 그 위용을 드러내지만 경쟁에서 탈락되는 순간 산산조각나 버린다. ‘최고의 몸’을 찾는다는 기획 아래 미션을 통과하지 못한 육체는 그 순간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인기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원초적 육체의 살과 살이 부딪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육체가 생존을 위해 경쟁할 때 오는 시각적 쾌감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우리가 스포츠로 즐기는 격투기가 일대일로 링에서 벌어지는 혈투라면, <피지컬>은 100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듯 다수가 벌이는 경쟁이다. 그래서 재미가 더 배가 되는지 모른다. 고대 로마의 검투사가 집단 결투를 벌일 때 더 짜릿한 스펙터클이 연출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직업, 성별, 나이 등과 상관없이 경쟁에 참여한다는 설정은 묘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어떤 게임이든 이외의 결과가 벌어지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즐기는 이유는 뻔한 고리를 깨는 이런 우연을 보고 싶어서 아닌가. 


무대 역시 이 쇼의 경쟁을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다. 정적인 공간과 동적인 신체가 대비되며 경기에 더 열중하게 만드는 주된 장치다. 게임을 설명하는 자막 없이도 그리고 중간에 진행을 맡은 사회자 없이도 <피지컬>은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보여준다. 게다가 다양한 신체적 능력을 측정하는 각양각색의 게임은 어떤가. 근력에만 치우진 경기가 아니라 지구력, 순발력, 정신력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능력을 평가한다. 이런 장치 덕분에 이 쇼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1인치의 언어 장벽은 정말 이 쇼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게임쇼가 앞으로 어떤 육체를 최후의 승자로 남겨놓을까. 게임의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만으로 이 쇼는 흥미롭다. 게다가 세계적인 반응에 힘입어 또 다른 시즌을 기약할 것이 현재로선 분명하다. 그때는 전작의 미비점을 수정하고 더 향상된 쇼를 선보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육체의 어떤 한계를 보게 될 것인가. <피지컬>은 벌써부터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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