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카지노>(2023)
어떤 이야기는 한 인물 때문에 주목하게 된다. 그 인물이 겪어왔고 헤처 나갈 이야기가 궁금하기에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카지노>(2023)는 그런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주인공 차무식(최민식)이 어떻게 자신을 향해 죄여오는 역경(?)을 극복하고 욕망을 성취할지가 관심사다. 여기서 그를 향한 윤리적 내지 법적 비난은 제쳐놓기로 하자.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니까. 지금 여기에서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장치를 다루려고 하니까.
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동력은 단연 차무식의 욕망이다. 바로 돈을 향한 갈망, 돈만을 믿을 수 있다는 의지가 이 극을 끌고 간다. 그러나 이 순수한 열정만으로 시청자가 이야기에 빠져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표피일뿐 더 중요한 이유는 그 욕망을 정당화하는 맥락이다. 이 대목에서 이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설득력 있게 제시돼야 하는 것이다. 극 초반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지나치게(?) 이 인물의 전사를 보여준다는 불만이었다. 빠르게 사건의 중심으로 쳐들어가기를 기대했던 어떤 이의 바람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인내가 없다. 그런 까닭에 극 초반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는 찰나에 시선을 돌리려는 유혹을 참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 개봉 당시 이렇게 화려한 배우진을 갖추고서도 실망스럽다는 지적이 있었다(그들은 정말 끈기가 없다!). 게다가 <카지노> 초반 차무식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최민식은 어색하다. 연기를 못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에서 60을 넘은 배우가 극중 20∙30대를 보여준다는 것은 설령 컴퓨터를 동원해 외양과 목소리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 간격을 좁히기 힘들다. 왠지 몰입감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야기에 빠져들려는 순간 ‘아! 이것은 드라마지’라고 현실로 돌와온다.
인내는 달콤하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우리는 이 문제적 인물 차무식에 열광한다. 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서서히 이 인물과 거리를 좁히고 이야기에 빠져들어왔기 때문에 그가 곤경에 처하면 조마조마하고 함정을 빠져나오면 안도한다. 앞서 불필요하다고 느꼈던 차무식의 역사가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특히 시즌2가 시작되기 전 공개된 미공개 영상은 이 인물의 군대와 결혼 이야기지만 이 인물을 이해하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본편 <카지노>에서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생략된 분량이다. 하지만 숨겨진 비사를 알게 된 시청자의 반응은 다르다. 차무식의 그 이후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심지어는 이 인물에 애정(?)을 품는다.
우리는 선한 자에게만 끌리지 않는다. 오히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에 더 매력을 느낀다. 그런점에서 차무식은 경계에 서 있는 존재이다. 돈만 신뢰한다고 공언하니 딱히 선하다고 평가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악인이라 분류하기에는 지킬 게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을 도와준 민석준(김홍파)을 따르고 자신이 부하로 둔 이상구(홍기준)나 양정팔(이동휘)을 챙긴다. 거래를 할 때 철저하게 잇속을 챙기는 사업가이지만 약속을 어기는 양아치는 아니다. 삼합회에 거액의 빚을 진 양정팔을 위해 협상을 대신하고 그를 다시 걷어주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의리있는 사람인가.
이 드라마가 어떻게 이 인물의 운명을 결정할지 현재로선 가늠이 안 된다. ‘목숨을 건 최후의 배팅’이란 포스터 문구처럼 남은 에피소드에서 차무식은 필리핀 카지노 제왕으로 돌아가기 위한 결전을 벌일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애청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귀환을 원하지 파멸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적 인물과 너무 가까워져 애정이 큰 탓이다. 드라마 <카니노>야말로 차무식의, 차무식에 의한, 차무식을 위한 드라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