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더키드 Apr 07. 2023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영화

영화 <길복순>(2023)

지난 주 금요일 기대하던(?) 영화 <길복순>(2023)을 봤다. 변성현과 전도연의 조합이 어떤 앙상블을 만들어낼까 개봉 전부터 궁금했다. 요새 한국 영화가 볼 게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별다른 인상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글을 미루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 잔상으로 남아있을 법한 이미지가 없다. 뭐랄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맹탕의 느낌이랄까. 과거 감독의 <불한당>을 봤을 때 특유의 리듬감이 있어 흥미로왔다. 게다가 연기 잘 하는 전도연이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으니 얼마나 기대했겠는가. 그런데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 같다. 



엄마와 딸의 갈등과 해결, 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플롯은 이렇다. 주인공의 직업을 킬러라는 모양새로 당의정을 입혀 났지만 이 작품의 본질은 가족 영화다. 엄마와 딸이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화해하는 미담(?)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주인공 복순은 미혼모로 아이를 혼자 낳고 키우는 워킹맘이다. 이 인물은 과거 경찰이던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희생자였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차민규(설경구)의 인연으로 킬러의 세계로 입문한다. 맡은 바 임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능력자로 회사와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다. 딸과 갈등에 더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또 다른 갈등은 회사와 문제다. 회사 혹은 민규는 간절하게 재계약을 원하고 그녀는 이제 평범한 세계로 회귀하고 싶다. 



딸과 문제는 서로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깔끔히(?) 해결된다. 재영(김시아)은 엄마가 사람 죽이는 모습에 놀라지만 다 국가(?)를 위해 그러는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넘어간다. 엄마는 학교 폭력 뒤에 숨겨진 딸의 정체성을 알고 그녀의 문제를 이해한다. 이에 반해 회사와 갈등은 복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해결한다. 이 영화에서 재미난 사실이 있다면 민규는 아이의 친부로 여겨지는데 복순은 그를 죽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이의 아빠는 생물학적 유전자 제공자로서 역할을 다하면 됐지 그 이상의 역할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아빠의 부재를 당연시하는 영화다. 엄마와 딸, 이 두 모녀만으로도 이 가족은 행복할 준비가 돼있다.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불순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집을 가득 채운 화초를 챙기며 그녀는 행복하다. 말도 안 하고 툴툴거리던 딸의 문제도 해결됐으니 얼마나 편하겠는가. 게다가 딸은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하고 나서 오히려 당당하다. 비록 사립 학교를 떠났지만 거기에 어떤 미련도 없어 보인다. 여기까지 좋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영화가 계속 무색무취 작품처럼 다가왔을까. 그 이유를 따져보면 극 중 인물인 복순을 알 수 없다는 데 기인하는 것 같다. 그녀의 전사가 살짝 공개돼지만 그것만으로 이 인물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가 왜 학대를 당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아이를 가지게 됐는지 등 거대한 공백만 이 영화는 남겨 놓는다. 질문만 던지고 끝내는 꼴이랄까. 



아마도 변성현 감독은 그 나이 또래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자일 거 같다. 어찌됐든 상업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감독의 기본적인 자질은 시장에서 증명됐다. 그런데 영화 <길복순>에 이르러 이야기꾼으로서 감독이 얼마나 대중을 흡입할 능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작 <킹메이커>(2022)가 관객수 100만명도 동원하지 못했다. 감독을 각인시킨 작품 <불한당>(2017) 역시 마찬가지였다. 촬영과 편집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미지만을 소비하려면 뭐하러 영화를 보겠는가. 다른 대안도 많은데 말이다. 오히려 더 신경써야 할 것은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인물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감독의 일베 논란은 진지하게 당사자가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오해가 될 만한 대사나 소품을 영화에 마치 자신의 흔적이라도 되는 듯 남겨놓은 것은 문제가 있다.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순천, 전라’의 클로즈업 장면이 그렇다. 무심코 지나칠 법한 장면이지만 이 장면이 등장할 때 나는 일부러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되감기로 확인했다. 무슨 중요한 단서라도 되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고서 말이다. 그런데 영화상 이 이미지는 전혀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요새 논란이 되고 있듯이 감독에게 문제를 찾는 것은 당연한 수순 아닐까.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고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설령 본인은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강변할지라도 말이다. 누군가는 장난이겠지만 누군가는 진지한 일일 테니까. 


뉴스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것인가, 보지 못하는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