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놉>(2022)
영화를 보고 나면 감독의 전작이 궁금한 경우가 있다. 그만큼 작품에 매료됐다는 얘기다. 영화 <놉>(2022)은 내게 그런 영화였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애써 감독의 전작 <겟 아웃>(2017)을 찾아볼 정도였으니까. 조던 필(Jordan Peele)의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유도한다. 그렇기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특히 미스터리나 공포물의 외피를 쓴 장르라면 더욱 더. 속 시원히 불안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으니 관객 입장에서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 찜찜함을 견디고 영화를 주시해야 한다.
영화 놉은 처음부터 질문을 던진다.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에 맞아 O.J.헤이우드(다니엘 칼루야)의 아버지가 사망한다. 여기부터 미스테리다. 공중에서 낙하한 동전이라니 이게 무슨 일일까. 게다가 영화 초반에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정체 모를 사건이 등장한다. 리키 주프 박(스티븐 연)의 트라우마로 각인된 사건이 바로 그런 예다. 전후 사정 없이 보여진 이미지에 관객은 혼란스럽다. 영화를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의 단서를 줘야 하건만 영화는 굉장히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관객평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호평과 악평이 공존함에도 내가 이 영화를 그리고 조던 필의 다른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관객에게 마지막 퍼즐을 맞출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도 관객이 없다면 의미 없다. 이런 사정은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석의 단계까지 갈 때 비로소 작품의 의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원한다고 해서 불평할 일은 아니다. 관객은 어쨌든 생각을 해야 하고 마지막 퍼즐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정답이 있는 과정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자.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으면 충분하다.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내개 영화 <놉>은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아버지의 사건이라든지 침팬지 살인 사건이라든지 하다못해 초기 영화의 단편으로 소개되는 말의 이야기까지 마찬가지다. 관객은 하늘에서 불쑥 떨어진 동전의 출처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시트콤 촬영장에서 침팬지가 난동을 부린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마주와 말의 이름은 기록으로 남겨졌는데 비해 흑인 기수의 이름은 지워진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보이지 않은 것을 계속 묻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답을 알기에는 너무 정보가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영화의 주인공 O.J.가 뚜렷하게 쳐다볼 수 있으면 길들일 수 있다는 호언은 저 질문의 힌트다. <놉>은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정면을 응시하라고. 시선을 회피한다든지 올려 본다든지 하는 그런 시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당당하게 앞을 봐야 보이는 것이 있는 법이다. 영화의 가장 큰 미스테리였던 괴생명체도 마찬가지다. 구름 속에 숨겨진 정체를 알아챈 인물은 주인공이었다. 그는 자신의 불안을 외면하는 손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동생 에메랄드(케케 파머)가 도망치자고 권유해도 말이다. 물론 매일 아침 말에게 밥도 줘야 하고 할 일이 많아서 였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가.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감독은 그런 찜찜함을 가지고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을 지 모른다. 영화의 잔상은 남았고 그 이미지와 사운드는 관객의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감독의 다음 작품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가 아닐까. 조던 필이 언제 자신의 각본으로 영화를 내놓을지 모르지만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