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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May 09. 2024

간호사라는 직업이 애틋했던 진로박람회

얘들아... 나 좀 봐줄래?

지독한 목감기로 3일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모기소리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환자들한테는 귓속말을 했다. 더 큰일인 건 아이들과 간호사 체험을 해야 하는 진로박람회 일정이 오늘이었다. 코로나 환자와 한 방에 마스크 없이 함께 있어도 살아남았는데... '감기에 무너진다고?'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한 대 맞고 항생제 3일 치를 받아 나왔다. '박람회 전까지는 무조건 묵언수행이다!' 다짐을 하며 목을 아꼈다. 살면서 이렇게 목관리를 해본 적이 있던가? 용각산, 콧속 스프레이, 목구멍에 좋다는 사탕,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원 없이 먹고 도포했다. 내친김에 강의용 마이크도 샀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 다지?'


4일 만에 목소리가 나왔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스포츠경기장에서 평택시 진로박람회가 열렸다. 진로 강의를 갈 때마다 매번 1~2시간씩 차를 타고 다녔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침 9시에 도착해 부스 세팅도 직접 했다. 이런 신박한 경험이!

가져간 물품들을 세팅하고 주변을 살폈다. '또 나만 혼자네', 옆에는 4명의 해군 군인들이 팸플릿까지 준비해 지나가는 아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내 앞 방송댄스 부스에는 시작도 전부터 신나는 댄스시범이 이어졌다. 철저히 혼자인 나는 최대한 불쌍하게 지나가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이래도 안 올래?' 그렇다면 내 필살기는 주사실습이다. 아이들의 눈에 띄는 곳에 엉덩이를 대줄 인형을 배치시켰다.

다행히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초5학년부터 고3까지, 친구 따라 어쩔 수 없이 오기도 하고 남을 돕는 게 좋아 관심 갖고 온 친구들도 있었다. 평소에 못 보던 중2 학생들이 제일 많아 바짝 긴장을 했다. '대체 공산당보다 더 무섭다는 애들은 어떨까? 가뜩이나 주사 체험은 위험한데 사고 나면 어쩌지?'

늘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이다. 막무가내라던 중2 아이들은 세상 예의 바르고 말도 잘 들었다. 갈 때도 정중하게 90도 배꼽인사를 하고 아름답게 떠났다. 아이들을 만나면 신기하게 없던 에너지가 생긴다. 나의 욕망을 알게 해 준 내 직업 '간호사'가 새삼 애틋한 날이었다.


참,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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