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부대 병원에 취업한 2016년, 부동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평택 도시형 생활주택을 덜컥 사버렸다. 정확히는 엄마가 사주셨다. 말이 좋아 생활주택이지 6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비록 코딱지만 한 방 하나였지만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직장과 집이 동시에 생겨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작년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까지 도합 7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았다.
그러다 남자친구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며 아파트를 경매로 받았다. 원룸에서도 불편함 없이 그런대로 잘 살았지만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삶의 질이 수직 상승할 것이다고 기대했다. 공간이 많은 만큼 거실은 홈카페로 꾸미고 베란다는 이자카야처럼 만들어 머물고 싶은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1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 집은 어떤 상태일까?과연 상상했던 카페와 이자카야 같은 공간을 만들었을까?
택도 없는 소리였다
살림살이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 집은 1년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독하게 정리를 못한다. 아니,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정리, 청소를 하는 것은 마치 외모를 꾸미기 위해 화장을 하느라 소비해야 하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그 시간에 공부를 더하고 실력을 쌓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과거형, 지금은 정리도 실력이라고 믿는다)
게다가 나에게 아파트는 너무나 큰 공간이었다. 퇴근 후 8시까지 루틴이 정해져 있는 일상에 매일 방 3개와 넓은 거실을 정리한다는 건 애초에불가능했을지 모른다. 1년간 식탁 위에는 서류더미는 물론, 풀지 않은 택배, 헤어트리트먼트, 옷, 간식거리 일관성 없는 물건이 난잡하게 쌓여갔다.
집은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난한 곳, 답답하고 부담스러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넓고 조용한 집을 놔두고 굳이 스타벅스에 가서 공부하는 카공족의 대열에 합류했다.
정리 문제로 코칭을 여러 번 받았지만 정리하겠다는 다짐은 매번 무너졌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그러던어느 아침, 올해가 지나기 전 집을 꼭 정리하겠다는 각오로 다시 한번 코칭을 받았다. 집을 보며 느끼는 답답함은 열심히 살고 있지만 성장 속도가느린 나 자신에게 느끼는 답답한 마음과 같음을 깨닫게 되었다.집을 말끔히 정리하면 꽉 막혔던 내 마음도 뻥 뚫릴 것만 같았다.
신의 계시인지 코칭을 해주신 코치님이 정리수납 전문가 자격증 소지자였다.덕분에 코칭이 끝나자마자 청소를 시작했다.알려주신 대로 식탁 위 물건을 바닥에 내려 쓰레기더미처럼 싹 쌓아놓고 필요 없는 것을 버린 후 같은 종류끼리 분류했다.주방 찬장과 식탁위만 정리하는데4시간이 걸렸다.
정리를 하고 보니 마치 이사를 준비하는 집처럼 휑했지만 빈 공간들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리된 주방을 보고 있으니 온갖 잡생각으로 뒤엉켜있던 내 마음 역시고요해졌다.
이제부터는 이 상태 그대로 식탁 위에 아무것도 없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퇴근 후 타이머를 맞추고 10분간 정리 정돈하는 것을 루틴으로 정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에는 아침 코칭이 끝나면 필요했던 강의를 들으며 청소를 할 것이다. 중요하지만 귀찮은 일(청소)과 하고 싶은 일(강의 듣기)을 섞어 중요하면서 하고 싶은 루틴으로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