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던진 첫 질문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는 라틴어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종종 오해되곤 한다. 그 의미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 체념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삶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좋은 순간뿐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순간까지도 내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어린 나이에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 사회에서 자기 의지대로 삶을 선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어른은 고모였다. 고모는 늘 나를 고모 친구의 아들딸과 비교했는데, 나는 그들을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더 나은 대학,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기준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전공을 선택할 때도 기준은 내 것이 아니었다. '취업이 잘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가, ' 나는 그 기준에 맞춰 전산과에 들어갔고, 결국 첫 직업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했다. 나는 원래 컴퓨터에 큰 흥미가 없었다. 지금도 정보 검색이나 간단한 업무 외에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 않는다. 그런 내가 프로그래머가 되어 높은 연봉을 받았으니, 그만큼 일의 성과에 대한 중압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그 스트레스는 결국 내 몸을 무너뜨렸다. 망막박리. 조금만 늦었더라면 왼쪽 눈이 실명될 뻔했다.
응급 수술을 받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때,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앞으로도 이렇게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에게 묻지 않았다. 왜 이 길을 가는지,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나는 그저 남이 정해준 길을 의심 없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답하기는 막막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된 이유는, 내가 아닌 타인의 기준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진짜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되묻지 않았던 것이 모든 꼬임의 시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삶을 바꾸는 길은 단순했다. 지금과는 다르게 사는 것, 남이 아닌 내가 선택한 길을 가는 것뿐이었다. 막막했지만 괜찮았다. 지금이라도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으니, 남 탓하지 않고 내 의지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된다. 이것이 내가 배운 진짜 아모르파티다. 내 삶에 내가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했으니, 이제는 오롯이 나답게 살아갈 차례다.
“지금 당신이 걷는 길, 그 길의 주인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