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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처음으로 나에게 던진 질문

심장이 미친 듯이 뛰던 그 순간...

by 희원다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겉으로 보기엔 잘 나가는 직장이었지만, 마음은 늘 불안했다. 흥미도 없는 분야에서 성과만 쫓아야 했고, 언제 들켜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의 코딩 실력 때문에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늘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래서일까. 회사 안에서 웃고 있는 순간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불안이 꿈틀거렸다. '언제든 이 자리가 내게서 사라질지 모른다.' 그런 공포 속에서 하루를 버텼다. '다들 힘들다는데, 나만 예민한 건 아닐까.' 스스로를 다그치며 애써 외면했지만, 마음속 질문은 점점 더 무겁게 자리 잡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스트레스에 짓눌리던 나는 출근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흔히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눈앞이 깜깜하다’라는 말을 쓰지만, 그날의 나는 달랐다. 커튼이 쳐진 것처럼 시야가 순식간에 가려진 것이다. 놀란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고, 망막박리라는 진단을 받았다. 응급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물었다.


"계속 이렇게 살면 어떨 것 같아?”

너는 뭘 좋아해?”

"잘하고, 해보고 싶은 게 뭐야?"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


어떠한 질문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실마저 나를 더 한심하게 만들었다. 그즈음,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다. 비행기에 오르고, 기내 서비스를 받던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승무원은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늘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리더십까지 갖춘, 내가 어린 시절 선망하던 친구. 서울로 전학을 간 뒤로는 소식이 끊겼는데, 이렇게 하늘 위에서 다시 만나다니..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얼굴은 달아올랐고, 손끝까지 전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떨림이 승무원이라는 직업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선망하던 친구를 다시 만난 충격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내 안에 맴돌던 질문, “앞으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그래, 나도 승무원이 돼야겠다.”


그 다짐은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서울에 대한 동경’, 선망하던 친구의 모습, 그리고 우연한 재회의 충격이 겹쳐져 나온 반응에 가까웠다. 충동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남이 아닌 내가, 내 삶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 답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보려 한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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