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는 은수(이영애)와의 이별을 앞두고 나지막이 말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여러 계절이 지나 마침내 영화의 엔딩 씬. 둘은 창밖에 벚꽃이 보이는 카페에서 오랜만에 재회한다.
상우 : 잘... 잘 지내지?
은수 : 어. 하나도 안 변했네.
은수 : (잠시 뜸을 들이다가) 기억나?
상우 : 뭐가?
은수 : (멋쩍게 웃으며) 그냥
잠시 후 그들은 카페를 나오고 벚꽃 거리를 함께 걷는다. 지난여름에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었던 은수는 천진난만하게 상우의 팔짱을 끼며 묻는다. “우리 같이 있을까?” 지난 이별 직후 그녀에게 찌질하게 매달렸었던 상우는, 선물 받은 화분을 다시 은수에게 건네주며 간접적으로 거절 의사를 전한다. 은수의 생각과 달리 상우는 변했고, 그들은 화사한 봄날을 배경으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다.
봄이 지나 여름이 되고 가을과 겨울까지 거치면 다시 새로운 봄은 찾아온다. 상우에게 지난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계절이었지만, 이번 봄은 사랑이 지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그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한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사랑조차도 때론 흐르는 세월에 쉽게 무너지곤 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도 우리는 수많은 만남 속에서 살아간다. 왜 사람은 반드시 서로 만나야 하는 걸까. 10분 만에 100억 매출 달성, 보험 세일즈계의 전설로 여겨지는 임한기는 『평생 단 한 번의 만남』에서 모든 만남에는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목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남, 아무런 사심 없이 상대방이 좋아서 이루어지는 만남 역시 목적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용기를 주고 싶어서, 위로해 주거나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사람을 만난다. 그것이 바로 만남의 목적이며, 서로 그 목적을 이루어줄 때 만남은 좋은 결과로 매듭지어진다. 그것이 진정 따뜻한 만남일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모든 만남에 목적을 앞세우면 그 관계가 너무 메마르고 팍팍해지지는 않을까 우려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목적과 비슷한 맥락으로 모든 만남에 있어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것이 좋다고 본다. 어떤 만남에 대해 갖는 기대가 누군가에게 분명한 해나 민폐를 끼친 게 아니라면, 그것을 애써 감추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만큼 상대방의 욕망 역시 온전히 존중해 주면 될 일이다.
만남의 목적을 잘 이루는 비결로 임한기는 일본의 다도(茶道) 사상인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을 언급한다. 이는 '일생에 한 번만 만나는 인연'이라는 뜻으로 사람을 만나면 후회가 없도록 잘 대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치고이치에' 사상은 자주 만나는 사람조차도 '일생에 한 번만 만나는 인연'이라고 말한다.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와 다르듯이, 인간은 항상 변해가는 존재이므로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평생 단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치고이치에'에 따르면 단 한 번이기에 만남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면 후회가 없도록 모든 만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상대를 소중히 대하고 내가 원하는 '그 결과'를 얻어야 한다.
임한기는 스스로 가족을 만나러 가는 목적을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사랑과 믿음을 주고 싶어서, 힘들었던 하루를 위로받고 싶어서, 아들에게 아빠로서의 사랑을 주고 싶고, 아들의 밝은 얼굴과 재롱을 보고 싶어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과거에도 오늘에도 미래에도 이 목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절대 변하지 않을 목적이지만 항상 가족을 만나러 갈 때마다 만남의 목적을 되새긴다고 한다.
어떤 이들이 만남을 계속 이어간다는 건, 시간이 흐르며 많은 것들이 변해도 그들 사이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까.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부부도 스스로 그 약속을 저버리고 이혼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를 볼 때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만 같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결혼 서약을 지켜내는 이들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그 긴 세월 사이에 두 사람이 변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변해왔을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에 맞춰서 자신도 함께 변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들은 기쁠 때와 슬플 때 상관없이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은 자신을 먼저 앞세우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연애 시절에 확인했던 서로에 대한 믿음과 헌신 그리고 사랑 등을 변함없이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는 서로가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이 목적이었고, 그 목적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생 그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만남 그 자체가 목적인 만남. 그리고 그 목적이 변하지 않는 만남.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변함없이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상대방을 따라 자신도 함께 변하는 만남. 진정 아름다운 만남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