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터로이드 시티
이유가 뭐니?
왜 그러는 거야?
What's the cause?
What's the meaning?
모르겠어요.
아마 두려워서 그러나 봐요.
그거라도 안 하면
이 우주 어디에도
내 존재를 알아줄 사람이
없을 거 같아서요.
I don't know
maybe it's because I'm afraid
otherwise
nobody else notice my existence
in the universe.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 무한한 시간 앞에 모든 것은 결국 잊힐 것이다. 그럼에도 삶이 계속되는 한 묻게 된다.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의미에 대하여.
영화는 연극과 연극 밖의 삶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연극은 화려한 컬러 색상으로, 삶은 단조로운 흑백화면으로 대비된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영화 속 연극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소행성이 추락했던 곳이고, 외계인이 나타나 다시 그 소행성을 가져갔다가 또다시 제자리에 되돌려놓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연극 밖의 삶은 원고 작성부터 배우 선정 및 무대 설정 등에 이르기까지, 연극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모든 창작과정에 대해 다룬다. 그렇게 영화는 연극과 삶을 오간다.
중층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질문은 반복된다.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아직도
이 연극이 이해가 안 돼요
I still don't understand the play.
상관없어
그냥 계속 연기해
지금 잘하고 있어
Doesn't matter.
Just keep telling story.
You're doing a right.
영화 초반부에서 연극과 삶은 각각 독자적으로 이야기를 지닌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경계가 점차 모호해진다. 마치 연극이 삶이고 삶이 연극인 것처럼.
연극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남주인공 오기 스틴벡을 연기하는 배우 존스 홀. 그는 종반부에 이르면 존스 홀이 오기 스틴벡이 된 것이 아닌, 오기 스틴벡이 존스 홀이 된 것 같은 경지에 까지 오른다. 자신의 배역에 동화된 것을 넘어 완전히 배역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연극과 삶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존스 홀은 혼란스러워한다. 오기가 지닌 상처에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하고, 오기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연극이 미처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연출가인 슈버트 그린을 찾아가 묻는다. 그러나 원하는 대답은 얻지 못한다. 다만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연기를 이어나가라는 이야기만 들을 뿐이다.
삶 역시 연극과 같다.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 퍼슨(person)의 어원은 연극에서 사용하는 '가면'의 의미를 지닌 페르소나(persona)이다. 삶은 일종의 연극무대이고 사람은 주어진 배역을 살아가는 배우들이다.
이유를 모르더라도 배우는 연극 무대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을 계속해서 연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의미를 모르더라도 삶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살아야만 한다.
결국 영화는 질문에 답한다. 삶이 혼란스럽고 상처에 괴로워도, 그 이유나 의미가 어찌 되었든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고.
그렇다. 무의미가 불러일으키는 근원적인 고독감과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삶 그 자체가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의미는 삶이 지속되는 한 감당해야 할 의미이자 의무이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어.
You can't wake up
if you don't fall asleep
영화는 삶의 의미를 끝내 불가해한 영역으로 남긴다. 다만 결말부에 이르러 말한다. '잘 자요'라고.
무자비한 햇볕이 내리쬐는 황량한 사막의 한 도시. 그곳에서 여러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을 연기한다. 그리고 삶을 이야기한다.
시간은 약은 아니지만 반창고는 된다던가,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던가 등 무의미의 삶을 지탱하는 지혜들에 대해 영화는 종종 언급한다. 그 중심에는 느슨한 연대가 자리 잡고 있다. 저마다 자기만의 상처를 딛고 살아가야만 하지만, 함께 함으로써 서로를 위로하며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잠을 잘 자는 것이다.
잠들어야 깨어날 수 있다. 깨어나야만 연극의 삶으로서 내 배역을 연기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의미를 외로움이나 소외감이 아닌 연대와 사랑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다. 무의미의 의미 그리고 연극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잠을 잘 자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우연히 주어진 삶은 너무나 광활하고 광대하다.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 이를 위해 매일밤 양질의 수면을 취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삶에서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