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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가 아닌 상실감으로

지금의 삶을 긍정하라

by 허씨씨s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삶을 산다.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것들이 있다. 나는 인류가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기기 전 해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고, 교육열이 높은 건전한 소시민 친부모에 의해 양육되었다. 내가 어쩔 수 없었던 것들이다. 반면 스스로 결정한 것들도 있다. 작가 되기, 가족을 더 늘리지 않기, 아파트에서 살지 않기 같은 것은 내가 선택했다. 이런 결정을 내릴 때마다 주변에서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겁을 주었다. 그 '나중'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는 가끔 '어쩌면 나에게 가능했을지도 모를 어떤 삶'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후회는 아니다. 상실감에 가깝다. 살아보지도 않은 인생을 마치 잃어버린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 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 다시 말해 내가 살아갈 수도 있었을 삶이란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상과 비슷하다. 나는 거기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없었다. 그게 전부다.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전략적 고려보다 우선하고, 살지 않은 삶에 대한 고찰은 그런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찾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 앤드루 H. 밀러, 『우연한 생』




내 삶은 내게 주어진 것과 내가 선택한 것이 함께 뒤섞여 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도 내가 내린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후회 때문이라면 일종의 미련일 것이다. 지금에 대한 불만족이며, 살아보지도 않은 삶에 대한 갈망이다. 반면에 상실감이 그 원인이라면 잃은 것을 찾기 위함이다. 지금의 삶이 어떤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는 지금을 긍정하기 위함이다.


윤동주는 그의 시 <길>에서 말한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고. 내가 살 수도 있었을 무수히 많은 삶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단 한 번의 삶을 긍정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나만의 유일무이한 삶을 사랑하고 잘 완성하기 위한 길이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도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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