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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and story Aug 24. 2020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당신 인생의 <데미안>은?

  금기의 영역을 건드렸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을 모두가 죄인이라고 할 때, 데미안은 달랐다. 살인자인 카인은 용감하며, 피해자인 아벨을 오히려 비겁자라고 봤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 속 싱클레어. 그는 어딘가 비밀스럽고 위험천만해 보이는, 친구 데미안의 이러한 해석을 접한 후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선의 세계에 금이 가고 있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내 인생에도 데미안 같은 친구가 있었다. 지금부터 그 시절을 끄집어 내보려 한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중학생 시절 나는 단연코 선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욕을 해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학급의 모범상과 선행상을 휩쓸곤 했다. ‘착하고 얌전한 아이’라는 수식어는 매년 나의 학생부를 장식했다. 장난이나 실언을 입에 담지 않았다. 내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의 정답을 찾아 헤맸다. ‘헤맸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선을 찾는 건 늘 어려웠다. 답을 찾지 못하면 차라리 입을 닫았다. 왜 이렇게 강박적으로 규범 속에 살았냐 묻는다면, 모태신앙과 도덕 선생님 아버지를 둔 가정환경 때문이었을까. 나를 알기도 전에, 주변에 의해 규정된 인간이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이름까지 같았던 친구. 그 우연성에 공통점이 몰빵 되었는지, 다른 부분은 상극이었다. 그녀는 자꾸만 선을 넘었다. 같이 등교하자더니, 화장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나까지 지각하게 만들었다. 수업 시간이면 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끝나고 떡볶이 먹을까” “너무 졸려”와 같은 쉬는 시간에 해도 그만인 실없는 대화. 혹여라도 선생님께 들킬까 두려웠다. 아주 가끔만 조심스레 답변했지만,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바른말만 쓰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은어나 욕설을 자유자재로 남발했다. 사실 담배 한번 펴본 적 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모 가꾸기, 아이돌, 그리고 짝사랑하는 남학생에 관심이 많은 보통의 중학교 2학년이었다.      


번은 시험 끝난 기념으로 같이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아주 어렸을 때 친척들과 가본 기억이 마지막인 노래방. 영어 공부 삼아 외우던 팝송 말고는 딱히 부를 노래도 없었다. 그럼에도, 마땅한 거절 이유를 찾지 못해 따라갔다.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는 게 너무도 낯설었다. 용기 내 입을 떼보니 왠지 모르게 상쾌했다. Sweetbox나 Britney Spears의 노래를 실컷 불렀다. "넌 여기서까지 영어 노래냐"라는 그녀의 핀잔도 있었지만, 참 즐겁게 놀았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후 왜 늦었냐는 엄마의 질문이 화근이었다.      


“노래방? 너는 무슨 그런 데를 가니”     


나의 세계가 침범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긴가민가했는데, 맞았던 것이다. 그 뒤로는 그녀가 체육 시간에 잠깐 문구점에 다녀오자는 제안을 할 때, 사실 며칠 전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할 때면 혼란스러웠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와 멀어지는 것과 나의 기준을 지키는 것 중 무엇이 정답일까.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친구의 방식을 경계하는 것은 옳은가? 내가 지키려는 모범적인 생활은 욕심 아닌가?’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는데, 평소답지 않은 행동 좀 했다고 원망해도 되는 것인가?’ 이러한 내적 갈등의 영향인지, 그녀와 서서히 멀어져 갔다.     


중학교 졸업 후 그녀는 뷰티 전공 특성화고에, 나는 그 지역 특목고에 진학했다.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나와 같은 성향의 학생들만 모여 있을 거라 기대하고 꿈꿨던 .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곳에서 더 많은 이질감을 느꼈다. 영어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국 살다 온 친구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공부와 멀어져만 갔다. 백일장에 나가고 싶다고 했더니 "성적도 안 좋은데 수학 문제 하나 더 풀라"라는 선생님의 말에, 이미 나는 모범생의 세계를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모범적인 아이들만 모여 있을 거라 믿었던 이곳에서도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조롱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나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다. 밑바닥부터 세계를 다시 구축해나갔다. 부모님의 성향, 주변 환경, 집안 분위기와 같은 자재는 소진돼버렸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설계도가 되었다. 궁금한 것을 따라가다 보면 길이 보였고, 그 길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더 이상 무엇이 보편적인 선인지 정답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정답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선의 세계를 벗어나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회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렇게 구축된 새로운 세계는 아직 무너진 적이 없다. 시험을 통과해 들어간 대학교, 면접을 거쳐 들어간 일터. 암묵적으로 합의된, 상식의 선이라는 것이 지켜지는 곳들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나의 세계에 크고 작은 수리 과정은 있었지만, 제대로 침범당하지는 않았다. 은근한 아쉬움이 드는 건 왜일까. 내가 새로운 세계를 만났던 건, 중학교 때 만났던 그녀가 모범생의 세계에 금을 내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돌이켜 보니, 꽤나 짜릿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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