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타락의 도시. 적어도 그녀에겐 그랬다. 발음이 참 어려웠던, 이스탄불은 아니라는 것만 기억나는 터키의 어느 도시에서 온 A. 2년 전 나의 하우스메이트.
그녀가 소개해준 Sami Yusuf라는 가수의 이슬람 노래는, 내 마음을 적셨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감성과 분위기였다. 아직 알지 못한 세계가 많구나. 그 생경함에 서울살이 속 번잡한 것들이 잠시나마 잊혔다. 이슬람에 귀의할 뻔했다. 외식할 때마다 돼지고기가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는 걸 보고 바로 접었지만 말이다.
종종 늦은 밤에야 겨우 음식을 먹는 그녀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라마단 기간이라고 했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데 철저하게 지키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A는 종교적 신념과 주관이 뚜렷한 친구라고 내 머릿속에 각인될 때쯤이었을까. 그것을 깨는 신호가 울렸다.
현관문 경고음이 들렸다. 새벽 네 시쯤, 그녀는 술에 취해 비밀번호조차 제대로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른 잠을 깨운 상황도 원망스러웠지만, 이슬람이 술을 마셔도 되는가 싶어 꽤 놀랐다.
그날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채식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처럼 이슬람도 그렇다거나, 아니면 잠깐의 실수였겠거니 짐작했을 뿐이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는 추측은 곧 깨졌다. 그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술을 마시는 이슬람도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오 마이 갓. 술을 허용하기는커녕 형사 처벌하는 곳도 있단다.
A가 혹시 서울에 오더니, 종교를 바꾸었나? 하지만 여전히 라마단을 지켰고, 서울에 이슬람 사원이 있는지 나에게 묻곤 했다.
한 3개월쯤 흘렀을까. 그녀가 새벽에 들어와 소음을 내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던 흔적까지 발각돼 하우스메이트들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터키 간식을 함께 먹자고 했다. 달달하면서 쫄깃한 식감까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지만, 내 입맛에 딱 맞는! 하지만 다시는 먹을 수 없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최대한 많이 먹어둬야지 결심했다.
그렇게 맛있는 것을 A는 한두 입 깨작거릴 뿐이었다. 이미 많이 먹어본 음식이라 흥미가 없는 걸까.
“ It’s not me here. I am confused. ”
자신답지 않다고 했다. 혼란스럽다고 했다. 좋아서, 원해서, 자의로 술을 마신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가 언제쯤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기억을 거슬러봤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심심하다며 “I am so bored!”를 외치던 그녀가 친구를 사귀었다고 좋아하던 때. 그 친구와 파티를 간다고 했다. 친구라 함은 길에서 만난 사람, 파티라 함은 홍대, 강남, 이태원 일대의 클럽이었다.
그때, 그녀가 처음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때 만난 친구와는 인연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클럽에서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그 친구와도 곧 끝났지만, 신기하게도 그녀는 서울의 길바닥에서 친구들을 잘 사귀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친구를 사귀는 동안, 술 또한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술, 외박, 그러다가 담배, 어쩌면 마약 비슷한 얘기까지 그녀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 사람들은 자신에게 친절하다고 했다. 자신을 신기하게 본다고. 쉽게 친구가 됐다고. 같이 클럽에 가고 술을 마셨다고.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어느 순간 보니 자신답지 않다고. 그런 고민에도 그녀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