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었다.
"보름에는 신발을 모두 숨겨야 해. 자정이 되면 귀신이 내려와 신발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가져가거든. 그럼 신발을 잃은 사람은 죽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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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로 나간 종국은 식탁에 있던 리모컨을 들고 TV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다 무심결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열려 있는 작은방 문 안쪽 침대에 모로 누운 아버지가 보였다. 꾹 감은 두 눈덩이와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은 아버지의 얼굴을 더욱 무서워 보이게 했다. (중략) 아버지를 깨워서는 안 됐다. 자신이 지금 깨어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알지 않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는 저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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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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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저체온증에 걸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하늘이 살린 것이라고 했다. (중략) 작업자가 매일 오가는 상황이었으니 신발만 발견됐더라도 곧장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곱게도 나란히 벗어놓은 모양새는 하나의 가설만을 떠올렸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신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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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발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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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에는 신발을 모두 숨겨야 해 ~ 신발을 잃은 사람은 죽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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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르신들께 자주 들었을 법한 이 괴담은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이 괴담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뼈대이자 종국과 그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암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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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국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던 비극적인 1차원의 스토리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건의 면면이 입체적으로 확장해 반전과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의 부적을 뗀 후의 내용은 약간 판타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시원한 장면이므로 그걸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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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끝에서 종국은 "보름에는 신발을 숨겨야 해"라는 괴담을 떠올리며 짧지만 긴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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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과 함께 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눈에 보인다는 설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호러물인 듯 착각하게 하지만, 끝까지 읽다 보면 오히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많은 사람들은 정해연 작가를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부르곤 한다.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정해연 작가가 사건의 해결 과정과 그에 따른 긴장감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 왜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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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짧은 단편이지만, 요소요소마다 적절한 긴장감과 그에 따른 몰입도를 담아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아마 장편이었다면 조금은 지루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정해연 작가라면 지루하지 않게 풀었겠지'라는 생각으로 장편을 기대하며 만족스럽게 읽은 책. 정해연 작가의 다른 책들 보러 가야겠다.
정해연 작가의《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