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빵 생활을 해제시켜주마.
태생 자체가 빵에 살고 빵에 죽는 빵돌이인 필자는 빵을 좋아하는 내 욕심만큼이나 금방 차오르는 뱃살과 내장지방에 건강을 빼앗길 것만 같아 No빵 생활을 시작해 꽤 오래 지속해왔다. 역시나 무언가를 금지 한다는 건 부작용을 낳는 법. 꽤 오랜 No빵에 지쳐버린 필자는 빵만 보면 눈이 돌아가 버리는 탓에 카페를 가도 커피 메뉴 보다는 진열된 빵들의 앞을 서성이는 날이 많아졌다. 압구정에 들렀던 어느 날, 새로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른 아침부터 빵 굽는 냄새를 동네 한 가득 풍겨내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카페 플링크이다.
지도 맵의 안내를 따라 걷다 보면 도착했다는 안내와 함께 치과의 큰 로고가 눈에 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그제야 1층에서 복닥복닥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플링크가 눈에 슬며시 들어온다. 간판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플링크의 로고가 늠름하게 버티고 있지만, 신구중학교 방향에서 걸어왔다면 로고의 존재는 몰랐을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통유리로 보이는 실내의 모던하면서도 깔끔한 무드는 이곳이 플링크든, 플링크가 아니든 발걸음을 이끌어낸다.
플링크[Flink]는 덴마크어로 "친절한, 도움을 주는, 사람을 반기는" 등의 뜻으로, 대체로 긍정적인 뜻을 품으며 플링크에서 만들고 싶은 공간이자 손님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네이밍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보다는 카페라는 본질에 집중하고, 그 본질은 전문성과 정직함을을 가진 플링크의 태도를 내포한다고. 크지 않은 간판도 아마 이런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을까. 어쩐지 무척이나 친절했던 직원분들. 이런 분들을 닉값한다고 한다.
보통의 미술관이나 전시장의 입구를 들어가면 바닥에 깔려있는 화살표가 전시를 어떻게 어떤 순서로 즐겨야 하는지 안내하고는 한다. 국민성 자체가 남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화살표를 따라 전시를 관람한다. 그만큼 동선이라는 것은 판매자의 효율,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공간을 설계할 때 꼭 고려를 해야 한다.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되기 십상이다. 뜬금없이 공간과 동선에 관하여 언급한 것은 플링크의 그것이 꽤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려봤을 때, 좌우로 길게 펼쳐진 플링크는, 가장 사각형에 가까운 안쪽 공간에 베이킹 룸을 마련하고 커피 바까지 이르는 작업자 동선을 확보했다. 방문객은 들어서면서 바로 커피를 주문하거나, 옆으로 살짝 돌아 베이거리를 픽업할 수 있도록 했고, 자리로 돌아가기 까지의 동선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동선에 꽤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커피와 베이커리를 픽업한 후 자리로 향하는 길에는 장애물 없는 적절한 너비의 길이 나 있어 안정감 있게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은 각 테이블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인테리어를 진행하며 직접 제작한 테이블은 사람이 다니는 쪽을 더 비스듬히 깎아내 자칫 불편할 수 있는 공간을 넉넉하게 넓혀주었다. 테이블 모서리를 깎아내었어도 테이블이 넓은 편이라 여유롭게 커피와 빵을 즐길 수 있다.
플링크는 국내 유명 스페셜티 로스터리에서 커스터마이즈한 블렌드를 사용해 커피 메뉴를 서브한다. 헬베티카라 명명 된 블렌드는 균형감과 다양성, 명확한 특징이 있는 커피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배가 고팠던 차에 마셨던 밀크 베리에이션 음료들은 상당한 만족감을 주었고, 특히 데니쉬라떼는 시럽류를 첨가한(ex, 마키아또 등) 음료 보다 덜 달았고, 일반적인 라떼보다는 달아서 필자의 입맛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빵은 그동안 빵에 굶주렸던 필자가 입에 털어 넣느라 기억이 사실 잘 안 나지만 감탄하며 먹었던 기억은 어젯밤 꿈처럼 선명하다.
노출 콘크리트의 실내와 철제 인테리어의 영향인지, 대화를 나누기에는 다소 울리기도 하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라운지 음악과 방문객들의 수다는 예민한 사람에게는 시끄러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꽤 만족스러웠던 커피와 빵 앞에서 나는 우주 한가운데에 놓인 듯, 무중력의 상태로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듯 맥없이 빵 앞에 주르륵 녹아 흘러내렸기 때문에 소리는 문제 되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이날 이후로 No빵 라이프에서 봉인이 해제되어 다시 빵에 눈을 떠버리는 바람에 1일 1빵 하고 있다는 것.. 하아.. 탄수화물은 언제나 짜릿해.
압구정의 한적한 동네에서 빵을 굽고, 커피를 추출하며 정체성을 뿜어내고 있는 플링크엔 유모차에 올라탄 꼬꼬마 손님부터 어르신들까지 가지각색의 손님들이 방문한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벌써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듯하다. 볕이 잘 들어 포근한 대낮부터, 해가 진 저녁 길을 따뜻히 밝히는 등대의 역할까지 도맡은 플링크. 이곳에서 갓 구워낸 빵과 균형감 좋은 커피를 함께 하며 좋은 인연들과 소중한 시간 만들어보시길.
※ 글, 사진 : 블랙워터이슈 이지훈 에디터
instagram : @ljhoon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