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엠립에서 앙코르와트까지는 또 한 번 장시간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버스는 흙먼지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3~4시간을 달리던 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 한 번 멈추었다. 갈색 벽돌로 지어진 휴게소 건물은 커다란 식당 하나 정도 크기의 작은 건물이었다. 무척이나 배가 고팠던 나와 친구들은 식당으로 직행하여 바로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우리를 당혹게 하기 충분했다. 생선 찌개 종류의 음식에는 상한 냄새가 났고, 장아찌에서도 비릿한 향이 풍겼다. 설상가상으로 목이라도 축이려 손을 댄 주전자에는 일개미들이 줄을 지어 기어 나오고 있었다. 결국,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모든 음식을 남기고야 말았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고픈 배를 잡고 휴게소를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또 다른 식당을 찾았다. 아까 그 식당보다는 훨씬 정돈된 모습이라 조금은 안심했다. 그리고 메뉴판을 집어 들었는데, 이게 웬걸. 음식의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아무래도 물가가 타 국가보다 낮으니 훨씬 저렴한 가격을 예상했는데, 베트남 음식의 2배는 되는 가격이었다. 그리고 메뉴 또한 이상했다. 미국식 브런치 같은 이름의 오믈렛, 소시지 같은 메뉴들이 있었다. 어쨌든 음식을 주문하였는데, 가격만큼의 푸짐한 음식은 아니었다. 이렇게 적은 양에 이렇게 비싼 음식을 현지 사람들이 먹는다고?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음식을 먹었고 잠시 후 궁금증이 풀렸다. 그 메뉴판은 관광객 전용 메뉴판이었던 것이다. 현지 메뉴판은 따로 있었고, 관광객 메뉴판 음식 가격의 1/10이 채 되지 않는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음식에 실망한 차였는데, 현지 금액과 관광객 금액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덤터기를 쓰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도, 마침내 앙코르와트 주변의 숙소에 도착해서는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주요 관광지라 그런지 꽤 괜찮은 시설의 호텔이 많았다. 심지어 cj의 뚜레쥬르와 CGV가 있는 건물도 있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이름이 얼마나 반갑던지…. 이 익숙한 가게들은 괜히 나를 안심시켰다. 또 저녁에는 주변에서 열리는 야시장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야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다양한 음식이 있었으며 반짝거리는 불빛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북적북적한 사람들이 이곳이 주요 관광지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관광지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는 항상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 준다. 드디어 나는 긴장을 풀고 이곳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룻밤을 호텔에서 묵고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앙코르와트를 가기 위해 나섰다. 우리는 따로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기에 “툭툭이”라는 택시를 잡아야 했다. “툭툭이”는 일명 삼륜 택시로, 동남아시아의 흔한 대중교통이다. 보통 미터 단위로 가격을 계산하는데, 이 또한 잘못하면 덤터기 쓸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여행자의 충고를 듣고 전날 밤에 미리 네고를 해놓았기에 바로 “툭툭이”를 타고 달려 앙코르와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후 앙코르와트의 유명한 일출 명소인 물웅덩이가 앞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 앞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물웅덩이에 비춰 대칭을 이루는 나무와 건축물이 만드는 아름다운 배경 뒤로 태양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감히 나를 압도했다.
‘아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구나.’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된 아름다움의 결정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앙코르와트를 보고 나는 캄보디아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눈 앞에 펼쳐진 이 아름답다는 말로 부족한 건축물에 그간의 설움과 짜증이 눈 씻기듯 사라졌다. 그리고 이런 건물을 지어낸 그 옛날의 캄보디아 사람들에 무한한 존경심이 듦과 함께 지금의 캄보디아 사람들이 있기까지 폴 포트의 통치와 같은 그들의 힘겨웠던 과거가 와닿기 시작했다. 왜 그들이 관광객에게 더 많은 돈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나라 전체적으로 축 처진 분위기를 풍기는지, 그 근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내가 폴 포트의 통치와 같은 암울한 시기를 겪었다면 짧은 시간에 극복할 수 있었을까? 먼 옛날, 앙코르와트를 지었을 때만 해도 캄보디아는 얼마나 뛰어난 인재들을 가진 국가였을까? 존경심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신기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날이 섰던 감정이 누그러들고, 공감의 마음이 싹텄다.
앙코르와트에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공항에 가기 전 탔던 툭툭이에서 기사님의 힘겨움이 눈에 들어왔다. 캄보디아의 낮은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어 우리나라의 여름 못지않게 더웠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운전하시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드릴 것을 찾다가 가지고 있던 얼음물(그곳에서는 나름 귀중한 물이었다)을 기사님께 드리고 내렸다. 나는 이제 곧 공항에 갈 사람이니 그 물이 꼭 필요하지 않지만, 오늘 종일 운전을 하실 기사님에게는 더 소중한 물이 될 것이었다. 얼음물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던 기사님의 모습이 마지막 캄보디아의 모습으로 남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누군가 나에게 동남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데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캄보디아라고 답한다. 그래서 그럼 캄보디아를 동남아시아 여행지 중 가장 추천하는 거야? 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린다. 그리고 정말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싶으면 캄보디아를, 재미있게 놀다 오고 싶으면 방콕을, 좋은 걸 보며 쉬다 오고 싶으면 발리를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참 신기했다. 그렇게 가장 많은 고생을 한 캄보디아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이기도 하다는 것이. 가장 많은 고생을 했고,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보았으며, 가장 따뜻했던 일화로 마무리되었던 여행.
사실 앙코르와트에서 내가 느낀 것은 그렇게 다양하진 않다. 그저 남들도 느꼈을 고대시대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 그 웅장함에 대해 놀라움과 아름다운 건축 양식에 대한 감탄. 그렇지만 뭔가 이상하게도 그 웅장한 아름다운 건축물을 본 후의 나는 전과 다른 내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마치 세상의 수수께끼를 한 꺼풀 더 풀어낸 사람, 세상의 신비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것이 그냥 느낌이던지 아니면 내가 정말로 세상의 신비로움에 대해 더 깊게 알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직도 그곳에 있던 내 모습을 내가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것, 그 놀라움과 감탄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내 안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어쩌면 그 옛사람들의 끈기와 지혜의 결과물 앞에 나도 모르는 사이 무한한 경외감과 삶에 대한 겸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