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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Feb 07. 2021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나답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시드니는 굉장히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호주에 가장 먼저 정착한 유럽인, 그리고 시드니 인구의 10%에 육박하는 중국인. 그리고 익숙한 언어를 구사하는 한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미국인까지. 실제로 시드니의 대형 백화점에 방문하면 여기가 중국인지 시드니인지 헷갈릴 만큼 많은 동양인을 볼 수 있다. 특정 지역 외에 외국인을 보기 힘든 우리나라에 비교하면 정말인지 다양한 인종들이 한 곳에 모여 살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진정한 다양성이란 무엇인지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다. 매일, 매 순간 나와 다른 피부색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마주하고 그들과 대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의 처음 육 개월은 기숙사에 살았다. 기숙사를 함께 사용했던 학생들의 국적은 미국, 한국, 호주, 일본, 스페인으로 모두 달랐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다른 음식을 주식으로 했으며, 생활 패턴도 모두 달랐다. 먼저 나는 김치 없이는 못 산다. 냉장고에 항상 김치를 쟁여두고 하루 한 번은 꺼내 먹었다. 스페인 친구는 하몽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해했고, 호주인 학생은 아보카도와 소고기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인 친구는 항상 밥을 해놓았고 미국인 친구는 좀처럼 집에 있지 않았다. 또 독특했던 것이 스페인 친구는 밤 10시쯤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해졌다.


시드니의 어느 날씨 좋은 날 센트럴의 한 공원을 방문했다. 그 날은 유난히 햇볕이 쨍쨍하고 맑은 날이었다. 공원의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싸 온 음식을 먹으려 하는 순간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앞으로 지나갔다. 깜짝 놀라 옆자리를 보니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에서 비키니를 입고 있다니! 그 모습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황스러운 충격이 아니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껴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아가씨가 그러면 쓰나~” “20대 초반 아가씨가 그러면 쓰나~” 행동, 말투, 옷차림까지, 한국의 20대 초반 여성들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이미지는 정말로 존재했다. 물론 지금의 사회는 의식 수준이 더 발달하며 그런 인식들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성별과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더 많이 존재했다. 나는 한 번의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특정 행동에 맞추어서 행동하곤 했다. 어떤 생각을 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어딘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답답함의 근원조차 모른 채 사회적 틀이 정한 이미지대로 나는 살고 있었다.


그런데 호주는 아니었다. 호주에서 내가 본 20대 초반 여성들의 모습은 내가 그래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모습이 아니었다.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사람, 꾸미지 않는 사람, 노출 있는 옷을 입는 사람, 달라붙은 운동복을 입은 사람, 춥게 입은 사람, 덥게 입은 사람, 아시아 사람, 서양 사람.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개성이 넘치는 옷을 입고 행동을 했으며 말투를 구사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의 옷차림이나 행동에 관심 가지지 않았다. 나는 화장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전에는 시도해보지 못했던 옷들을 고민 없이 입었다. 한국에서는 내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호주에서는 놀랍도록 쉬웠다. 나에게 기대되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니, 나는 본연의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었다.



전엔 내 주위의 상식이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내가 틀린 것으로 생각해 불안했다. 세상으로부터 박탈당할 것 같은 두려움, 내가 틀린 존재라는 공포가 나를 덮쳤다. 그 두려움에 사람들과 맞지 않는 나의 모습을 감추려 하게 되었고,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럴수록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배웠다. 시드니에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듯이, 지구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른 생각을 내어놓고 서로 다름을 존중할 수 있음을. 나는 이제 이곳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이곳이 나와 맞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곳이 나와 맞지 않는다 해도, 이렇게 넓은 세상 중 어느 곳 하나는 나와 딱 맞는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이런 생각이 당장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바꾸지 못할지라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 큰 용기를 준다. 나답게 살아도 된다고 말이다.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

여행의 자유로움이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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