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자극시키는 타인으로부터 바라본 나
회사를 박차고 나온지 어언 2달이 지났다. 시간상으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심적으로는 굉장히 오래 쉰 기분이다. 불안에서 오는 체감 시간인 듯하다. 한달 전, 네일아트를 새로 바꾸며 예상한 게 있다. '이 네일을 바꾸러 올때 쯤엔 이직했겠지' 가망 택도 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간 면접 한 번 보지 못하고, 네일아트를 한 번 더 바꾸러 나왔다.
30대가 되어서야 취업 시장의 얼음판을 경험하고 있다. 신중해야 할 20대 때는 내 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중소기업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일단 들어가고 봤다. 다 경험이겠지 하면서.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마 그때 조금 더 신중하고, 그 때 조금 높은 문턱이라도 두드려봤더라면 아마 지금 느껴지는 문턱은 조금 더 낮았을지 모른다. 어른들이 사회초년생들에게 첫 회사를 잘 가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엄마는 왜 그런 말을 안해 줬을....껄껄)
세상 편한 차림으로 침대 위에 푸욱 파묻혀서 구인구직 앱을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이제는 중견 기업으로 시선을 조금 돌려서 이력서를 넣어보면 좋을 곳을 열심히 스크랩해뒀다. '내일 카페 가서 이력서 써야지!' 결심하며, 오늘 할일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으로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벌써 내일이 된 오늘. 애인 출근 길에 집을 같이 나서서 한강을 달렸다. 4km 정도 찬바람을 싱싱 맞으며 달리다 보니 온몸이 간지러웠다. 운동도 해야지 해야지만 했고, 다이어트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밤이 되면 보쌈을 입안 가득 욱여넣으면서도 걱정을 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생각이 몸에 제동을 걸기 전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일단 나와 뛰었다. 덕분에 되게 큰일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애인한테는 항상 늦게 먹음 안 된다, 헬스장 가야 된다, 다이어트 해야된다며 의무를 잔뜩 강요해놓고 정작 나는 꿈쩍 않고 있었다. 이게 바로 게으른 완벽주의자 아니고야 무어란 말인가. 걱정이 너무 많아서 머리로만 부지런을 떨다가 몸에는 마비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너무 적절하게 잘 표현하는 말 아닌가.
나의 퇴사를 재촉시킨 팀장이 '게으른 완벽주의자'라서 나는 이 말을 나에게 절대! 절!!대!! 갖다 붙이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인정할 때가 왔다. 네일아트를 받고서 근처 대학 후배가 운영하는 카페에 방문했다가, 우연찮게 미팅 중인 후배를 발견했다. 미팅이 끝난 후배에게 아는척을 할까말까 할까말까 하다가, 그 친구가 먼저 아는 척 하면 뭔가 내가 작아질 것만 같아서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그 친구 앞에 까꿍 나타났고, 다행히 오랜만에 본 이 친구는 나를 알아봐줬다. (휴 다행) 후배는 작가이자 여러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사업가로 우뚝 자리를 잡았다. 대학 때도 의지가 넘치고, 우선 부딪혀서 도전하는 성격이었는데 어디 안 갔다. 그 성격 덕분에 맨땅에 헤딩하며, 몸으로 배우며 지금의 자리까지 온 후배이다. 멀리서 지켜봤는데도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본인보다 더 부지런하고 멋있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후배는 여자친구와 내가 앉은 자리에서 한보 떨어진 곳에서 되게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왜이렇게 저기는 우주 같아 보이는 걸까. 나는 고작 월급쟁이가 되기 위해 이력서를 두드리고 있는데, 후배 커플은 사업을 확장시키기 위한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에서 계급이 보이는 건 왜일까.
내가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일단 뭐든지 해보는 불도저 완벽주의자였더라면 나도 누군가의 우주에 있었을까. 분명한 건 일단 뛰러 나간 오늘 아침처럼 걱정이 몸을 지배하기 전에 뭐든 행동하는 것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내 문제는 걱정이 많은 게 아니라, 게으른 것이었다는 걸 홍대 한 복판에서 느낀다. 게으름에 대한 해결점을 일단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어 보는 것이 아닐까. 벗어나자 게으른 완벽주의자에서. 가스라이팅 오져따리 팀장이랑 같은 부류가 되는 건 너무 끔찍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