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숭숭현 Feb 26. 2022

1년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백수

단 이틀 간 백수지만 격렬하게 보내는 중

오랜만에 브런치를 켰다.

재작년 알찬 백수의 하루를 계획하며 브런치를 오픈했는데, 갖은 핑계를 대며 브런치의 간곡한 컴백 알람을 무시해왔다.


결국 1년 3개월 만에 다시 백수가 되고나서야, 브런치의 간곡한 메시지를 떠올리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삶의 시간 중 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사라지니 쓸모 없는 사람이 된 듯하여,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상기시키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었다. 어쩌면 이렇게 내면의 나를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는 이 시간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이 스친다. 쨌든 2020년 11월 말부터 1년 3개월이 지난 2022년 2월, 1년 3개월의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난 다시 백수가 되었다.사실 단 이틀뿐이 아닌 선택적 백수이다. 출근 날짜를 받아두고 잠시 휴가처럼 쉬는 이틀이라서 '백수'라는 단어가 주는 해방감, 걱정, 고민 등등의 것은 해당이 되지 않긴하다. 하지만 쉬는 날에도 랜선으로 일할 수 밖에 없는 직종에 있는 나는 아무런 방해도, 업무 연락 하나 없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이 상태는 '백수'임에 틀림 없다. 너무 좋아.


오랜만에 나의 생체 리듬에 의해 기상을 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핸드폰의 각종 알림음 때문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는데 말이다. 꼼지락 꼼지락 침대 위에서 몸을 이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경 안에서 이러저리 뒹굴거리다 일어나는 것은 백수 라이프 일주일 이내의 기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인 것 같다. 시간이 더 지나면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것 같고, 굉장히 나태한 인간이 된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게 되기 마련이니까.


아침요가로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정비하고 싶었지만, 함께 동거 중인 캣초딩 핑계로 일단 패스했다. 미루고 미룬 치과 검진을 오늘은 왠지 꼭 치과에 가야할 것 같아서 부랴부랴 치과를 예약했다. 유통기간이 사나흘 지난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고, 어제 급 당일치기로 다녀온 춘천에서 사온 감자빵을 하나 먹고 나니 침대가 다시 날 불렀다. 퇴사한 회사의 팀원 중 한명에게 퇴사 선물(보통 퇴사자에게 주는 선물을 의미하지만 여기선 반대의 의미다)을 전달하지 못해서, 미리 준비한 엽서에 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부쳤다. 오후 3시로 예약해둔 치과 치료를 움찔움찔 거리며 치료를 받고 덜덜 떨면서 결제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쿠X에 아이패드가 줄곧 품절 상태로 있자 치과 예약 전날 통크게 카드를 긁었는데, 치과에 가서도 돈백 긁고 오니 휴 빨리 출근해야겠다 싶었다.


본래 계획은 충전할 시간이 필요해서 퇴사를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직을 위해 퇴사를 하게 됐고 백수로 지낼 수 있는 이틀 마저도 너무 바쁘다.


기존과 다른 충전 방식으로 선택한 '낯선 환경 속에서 원동력 만들기'가 과연 성공적일지 나스스로도 무척 궁금하다. 기대해주길.

작가의 이전글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