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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머니 박타 May 06. 2023

EP10. 여긴 어디?

워홀의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 스페인에 왔습니다.


5월 1일,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스페인에 왔다.

이사가 아닌 거의 이민(?)에 가까웠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거의 버리고 떠나왔다.


알게 모르게 내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짐들은

버릴 때쯤 돼서야 고개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이렇게 많은 짐들과 함께 살고 있었던가.


수많은 짐들을 버리면서 느꼈던 것은

오늘 입지 않는 옷은 나중에도 입지 않는다는 것,

오늘 읽지 않은 책은 나중에도 읽지 않는다는 것,

오늘 쓰지 않는 것은 나중에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중에"라는 물음표가 뜨면 과감히,

피도 눈물도 없이, 가차 없이 버리기 시작했다.

버리고 나니 그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앞으로 미니멀리스트로 살리란 다짐을 한다.


-


5월 6일,


스페인에 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눈감고 생각해 보니 꿈같은 하루의 연속이다.


내가 있는 곳, 사는 곳, 가는 곳이 곧 여행지다.

누구와 함께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해

고민할 순 있으나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나고 나면 한낱 꿈에 불과한 신기루일 뿐이다.


한국에서 지금껏 쉬지 않고 일해왔기 때문에,

일하고 있지 않는 나 자신이 어색하기도 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1년이란 시간이 꽤 짧을 수도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이 부족하다면 더 지내면 되는 것.

1년 안에 모든 것을 이뤄내려는 것은 과욕이다.


때 묻지 않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계속 까먹어도 괜찮다. 계속 반복하면 되니까.

배움은 까먹음의 연속, 굳이 다 알 필요도 없다.


하나 둘,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어야지.

미리 다 알아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는 전철을 타다 보니

지나갈 곳을 볼 지, 지나간 곳을 볼 지 생각했다.

물론 둘 다 필요하지만 나는 순방향을 선호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 미래에 닥칠 일들을 바라보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


PS. 혼혈 아이의 고충이 이런 것인가.

스페인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3가지 언어가 동시에 떠오른다.


이해할 수 없거나, 말을 내뱉기가 어렵거나.

33%의 인간으로 사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300%를 해낼 인간임을 꼭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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