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제일 어색했던 것이 무엇인지 꼽으라면 단연 “간판”이라 말할 것이다. 알다시피 미국은 고밀화된 몇몇 도시 빼고는 워낙 땅이 넓기 때문에 건물을 위로 높게 짓기보단 옆으로 넓게 짓는다. 이렇게 옆으로 넓게 짓다 보면 각 매장의 간판은 옆으로 길에 줄지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판의 가시성이 매우 좋다. 단위 면적당 한 개의 간판만 있기 때문이다. 밤이 되어 간판에 불을 켜더라도 어두운 밤에 그 간판 하나만 딱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간판이 위로도 겹겹이 붙어있기 때문에 왠지 모를 중압감을 주었다. 한국어로 된 간판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한 곳에 밀집된 간판을 보니 숨이 턱 막혔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반증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그 모습이 더 가관이다. 저마다 형형 색깔을 뽐내며 자기를 봐달라고 빛을 발하는데 그게 어찌나 크고 요란한지 계속 쳐다보면 눈을 뜰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빛 공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간판이 난립하고 저마다 통일성을 갖추지 않아 건물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떤 전문가가 말하길 간판은 고객들에게 첫 번째로 어필할 수 있는 수단이자 이미지가 되는 관문이라 되도록 현란하고 눈에 띄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간판이 눈에 띄지 않으면 고객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집 근처에 국밥집이 있는데 매일 지나치는 길목에 있어도 간판이 눈에 띄지 않아서 들어가 볼 생각을 안 했었다. 그런데 배달로 시켜 먹었던 그 국밥의 맛은 가히 환상이었다. 리뷰를 달면서 “국밥이 정말 맛이 있는데 간판이 너무 눈에 띄지 않는다.”라고 하니 주인은 “다른 중요한 것에 신경 쓰다 보니 간판에 미처 돈을 쓰지 못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국밥집에서 중요한 건 국밥의 맛이지 간판의 디자인은 아니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간판을 최소화해서 만드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고객들이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그 간판의 이름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간판을 매우 작게 만드는 것이다. 쟁쟁한 간판들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 이런 간판을 두는 게 맞나 싶긴 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고객들을 이끌어오기도 했다. 이는 마치 브랜드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노브랜드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던 것이 화제가 되었듯이 오히려 반대의 경우를 시도해 보는 것도 때론 먹힐 때가 있다. 이름 없는 파스타와 같은 매장도 아이러니하게 간판명이 “이름 없는 파스타”가 되어 역설적이게 말이 되는 환경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간판을 만드는 것은 물론 주인의 마음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매장의 본질인 것 같다. 예전에는 1층에 있고, 입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면 배달서비스 및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고객들이 직접 찾아서 가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을지로인데, 과거 인쇄소와 조명가게 등이 즐비한 곳에서 사무실 같이 생긴 곳의 문을 열면 겉모습과는 완전 다른 실내 인테리어에 놀라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이를 통해 볼 땐 간판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고객들이 경험하는 내부 인테리어 콘셉트와 음식의 맛 같이 본질적인 것의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된다. 아까 언급했던 국밥집처럼 겉포장이 삼삼하더라도 내실이 탄탄하면 고객들이 적은 기대에 따른 큰 만족을 느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그 액자는 오히려 투박해야 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처럼 매장이 돋보이기 위해선 간판은 오히려 투박해야 하며, 겉으로 보이는 간판이 너무 현란해서 정작 보여줘야 할 본질들을 가려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