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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통역사 Apr 02. 2019

복수심도 무뎌지게 했던...

사랑

아빠는 나와 동생을 책임졌다. 일곱 살 때까지는 할머니와 고모 손을 빌었지만, 초등학교 입학부터는 아빠가 우리를 데리고 살았다. 


“네 엄마는 아빠 어릴 적 친구의 어머니를 똑 닮았었어. 전형적인 현모양처셨고 친구들에게도 살갑게 대해주셨던 분이었지. 나중에 크면 그분 같은 아내를 맞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아빠가 먼저 만나자고 했던 거야. 아빠는 빨리 가정을 꾸려서 안정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거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이제는 말해도 되겠다 싶으셨는지, 아빠는 엄마와의 만남과 헤어짐의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이야기를 듣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토록 보고 싶고 알고 싶었던 엄마의 존재를 아빠의 입을 통해서나마 듣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컸던 감정은 ‘그렇다고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를 놔두고 떠날 수 있나’ 하는 분노였다. 나와 동생이라는 존재는 마치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만 같았다. ‘한 번을 보러 오지 않을 만큼 그렇게 내가 싫었나?’, ‘아빠와의 관계가 어그러졌다고 어떻게 자신이 낳은 딸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가 있지?’ 머리가 점점 커질수록 이런 생각들은 내 안에 문득문득 고개를 들었다. 끝내는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훌륭하게 잘 커서 그때 나를 버린 걸 후회하게 해 줄 거야. 이게 내 복수야.’ 


아빠는 우리를 키우며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날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한 복수를 이유로 공부에 매진했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내게 아빠가 늘 하시던 말씀은 ‘이제 그만 자.’ 뿐이었다. 아빠는 아무 이유도 모르셨기 때문이다. 아빠는 그저 나와 동생이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기 전까지 밥을 잘 차려먹는지, 그것만 걱정하셨다. 아빠는 매일 아침 우리에게 손편지를 쓰셨다. 하교하고 집에 돌아오면 책상 위엔 아빠가 출근 전 써 놓고 간 A4용지 크기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내용은 주로 ‘냉장고에 김이랑 반찬이 있으니 꺼내 먹어라, 아빠가 오늘은 늦으니 둘이 사이좋게 놀다가 먼저 자거라’ 등이었다. 그림 솜씨가 좋았던 아빠는 곧잘 재밌는 그림도 그려 넣었다. 그걸 동생과 함께 읽노라면 아무도 없던 컴컴한 집이었지만 따뜻한 기운이 우리를 감싸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집에 돌아오면 편지부터 찾았다. 그렇기에 이혼하셨다고 부모님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싫어도 자식 때문에 억지로 살아야만 했다면 그것이 어쩌면 더 큰 불행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그렇게 당신 특유의 차별화된 방식으로 두 딸을 키워냈다. 한때나마 내가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을 두 곳 연이어 재직할 수 있었고, 일부가 선망하기도 하는 직업인 통역사로 현재 일할 수 있게 된 배경에도 싱글대디의 특별한 양육방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방식을 직접 겪어 온 자녀의 입장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한부모 가정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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