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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천협회 윤범사 Aug 08. 2021

부산, 해운대

여름휴가

도구는 편리해지고 여행은 그런 것들 없이 어떻게 다녔을까 싶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휴대폰 앱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정을 공유받으면 여행 기간이 며칠이든 다녀볼 곳이며 액티비티, 맛집을 일정에 채워 넣고 동선과 거리를 볼 수 있고, 다녀와서는 클라우드에 백업된 사진과 윈도에 연결한 휴대폰 화면을 모니터 하나에 띄워두고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도 편리하다.


광활한 모니터 덕분이기도 하고


일정을 꾸리고 티켓팅을 하고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출발을 해도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도 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여분의 정보력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재래시장 한가운데 있는 맛집에서 아점을 먹기 위해 주차할 곳을 찾아 두어 바퀴 돌았으면 빨리 태세를 바꾸어 여행지가 아니었으면 사용하지 않을 유료 주차장으로 진입해야지, 이마저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자리가 없다.


식사하는 거면 안 받는 건데


주차장을 관리하시는 분의 혼잣말을 뒤로하고 칼국수로 유명한 식당에서 콩국수를 주문하며 딸에게 칼국수 맛집에서는 칼국수를 시키라는 조언을 핀잔처럼 듣고 식사 후 공차를 먹어야 한다는 아이들과 이번 여행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로도 미리 정해놓은 일정을 고집하는 아빠와 에어컨과 와이파이가 있다면 부산의 어느 숙소에서든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을 기세의 말 많은 사춘기 아이들이 매 순간 부딪쳤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 서울 지하철 냉방시설의 벤치마킹이 필요한 해운대 블루라인 열차에서부터 여행 내내 아이들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작고 귀여운 청개구리가 무서워


아점을 먹고 청사포로 가려는데 뒷자리에서 개구리! 하고 외치는 소리와 뒤이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큰 길가에 정차하고 보니 손가락 한마디만 한 청개구리가 있어 훠이훠이 내쫓았는데, 작고 귀여운 청개구리였기에 망정이지 주먹만 한 두꺼비였거나 사마귀였으면 렌터카에 소송이라도 걸 뻔했다. 청사포에 주차했는데 지붕에서 떨어졌는지 사마귀가 차 위에 올라타서 사마귀는 문틈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설득을 엄청나게 했다. 열차를 타고 오니 사마귀가 가고 없었는데 문틈으로 들어온 건 아닐 거라고 또 설득을..


저 청개구리보다도 작았다


점심으로 알아봐 둔 초밥집이 네이버에는 점심시간부터 오픈으로 되어 있었는데 심야식당처럼 생긴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녁식사만 가능하고 사전 예약제라고 하셔서 그냥 나올 수가 없어 주차권을 스윽 내밀어 서명만 받고 나왔다. #네이버는잘못이없다 #점심시간문은열려있었거든


아빠, 나 행복해


코로나 이후로 2년 치 면세점 상품권을 호텔 외식권으로 교환해준 시그니처카드 덕분에 6개월 전에 예약한 롯데호텔 라세느에 도착하고서 숙소에 외식권을 두고 온 걸 알았다! 없어진 건 아니니 다음에 한번 더 오면 되지, 하는 마음이 나라도 숙소에 가서 가져오면 대략 한 시간 뒤에는 조인할 수 있겠군 하는 마음을 억눌러 가족과 함께 랍스터와 양고기 위주로 맛있게 먹었다. 아들이 아빠, 나 행복해 하고 방긋 웃어준 게 처음인 것 같아 맛있는 거 먹으면 원래 행복해져, 라고 웃으며 말해줬다 ㅜㅜ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해동 용궁사에서 태양광으로 에너지가 충만해진 아이들이 가파르게 짜증을 솟구쳐 올렸다. 말없이 묵묵히 따라다니는 뱃속의 소둥이가 제일 착했다. '아이들이 군말 없이 따라다니게 해 주세요.'


미리 알았으면 좀 더 비싼 소원을 준비해갈 걸 그랬다


첫 식사부터 맛집으로만 다녔는데 먹으면서도 혹은 지금 생각해봐도 롯데호텔 라세느가 제일 맛있었다. #해운대암소갈비집도맛있었다 7말 8초가 초 성수기인데 어떤 맛집은 초 성수기에 손님을 피하시는 것인가 싶게 같이 쉬었고 여행 셋째 날에는 아침과 점심으로 생각했던 두 곳이 모두 휴가 중이었다. 아이들이 여행운 운운하길래 혼자 조용히 용궁사에 다녀오고 싶었다. 금요일에 다시 찾아간 이가네 떡볶이는 오징어 튀김이 더 맛있었고 철판순대구이가 유명한 동해옥 수제순대에서는 아이들이 돼지국밥과 순대전골을 시켰다. #부산다시와야지 #우리끼리오자


도착하고 이튿날부터 돌아오기 전날까지 네 번의 낮 가운데 하루를 거르고 삼일의 낮, 해운대의 바다에서 다섯 시간을 파도와 함께 뒹굴었다. 아마도 아이들은 반나절 바다놀이라면 남은 반나절은 숙소의 빵빵한 에어컨과 와이파이만으로도 며칠이든 완벽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바다의 첫날이었던 화요일엔 넘실대기 좋은 파도가 흰 포말이 이는 정도로 일곱 번을 연달아 몰려왔고 튜브를 놓칠세라 힘주어 그러쥔 팔이 아프다면서도 다음날 아이들은 해운대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다섯 번의 밤이 있었는데 마지막 밤 해운대의 파도소리와 야경이 조금 아쉬웠다. 부산의 이백원 떡볶이가 아이들의 원픽이었는데 가장 유명한 영국이네는 마침 휴가였고 유명한 유튜버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린 그 옆집에서 한눈에도 눅눅해 보이는 오징어 튀김을 주문하는 걸 보며 한 줄에 이백원 하는 떡볶이만 조금 먹었다. 떡볶이는 이가네보다 맛있었다. #한군데만가라면이가네


돌아오는 날 랑데자뷰 광안리점에서 전날의 해운대 야경을 한낮의 광안대교에 엎어보며 해운대와는 다르게 파도 크기도 귀엽고 서퍼들과 바나나보트가 노니는 광안리의 바다를 야금야금 둘러보았다. 손잡고 바다로 걸어가기 시작해서 바닥이 깊어지자 두 다리로 남자 허리를 끌어안는 커플을 보며 여름의 강렬한 햇빛과 어울리는 에너지라고 생각했다.


좌회전도 우회전도 한둘씩 더 있는 부산의 교차로에서 몇 번 길을 잘못 접어들었는데 차가 많지 않은 골목에서는 바로 수정해서 다닐 수 있었다. 바닷가 위주로는 평지가 거의 없어 계단식으로 조성된 단독이나 아파트가 많았고 재래시장이 많은 만큼 대형 마트는 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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