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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Jan 25. 2023

읽다가 벌떡 일어서다

[김유경의 책씻이]감칠맛 나는 통속성,<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급기야 내팽개치듯 책을 덮고 일어섰다. 기막혔다. 기껏 통속소설을 읽다가 덧없음에 낚여 불쑥 두려움에 꿰이다니. 거리두기를 무시한 나답지 않은 몰입도 문제적이지만, 케이시 한 캐릭터의 욕망과 갈등에서 적나라하게 나를 보았다는 충격도 컸다. 재미작가 이민진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1,2>는 내게 통속소설로서의 본때를 보여준 셈이다.    

   

통속소설은 사회적 이슈 대신 에두른 세태 반영에 힘 쏟는다.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는 대신 등장인물의 언행으로 대중성을 들춘다. 케이시 한은 이민 2세 코메리칸이다. 세탁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에게 들이대어 쫓겨난 후 굴곡진 독립적 삶을 꾸린다. 뚜렷한 선호와 번듯한 외모 꾸미기에 치중하는 열등의식 밴 자존심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는 그녀에게 나는 꽂힌 거다.   


   

“가끔 케이시는 겉으로 보이고 싶은 모습이 전혀 없는 상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할 때가 있었다.” 373쪽     



케이시 캐릭터는 대조적인 두 절친, 거침없이 자유분방한 버지니아와 순종하듯 타인을 배려하는 엘라를 융합해 다듬은 듯하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속설을 떠올리게 하니까. 인생의 중요 국면에서 이성적 판단 대신 자기 감정에 충실하다가도, 대인 관계 국면에서는 배려가 지나쳐 무심하게 비치는 이성적 면모가 그렇다.    


  

“케이시는 알고 싶었다.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혹은 스스로 믿음이 없기 때문일까. 혹은 내게 요구되는 노력만으로는 마음먹은 대로 갈 수 없는 것일까. 퀸스의 서민 동네 밴클릭 스트리트에서 들려오는 사연들은 대체로 한심한 결말로 끝났다. 유난히 기분이 처지는 날이면 케이시는 자신의 결말 역시 결국은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167쪽     



대학원 등록금을 대출 받으면서도 케이시는 백화점 경영자 사빈의 경제적 도움을 거절한다. 또한 컨 데이비스의 투자금융 인턴 프로그램에서 일하며 갈망하던 정규직 채용 통보를 듣자 마다한다. 자존심과 즐거운 일거리를 위해서. 그 과정에서 여전히 사랑하지만 미래가 상상되지 않는다고 제이와 헤어지고, 바람 피운 걸 고백해서 은우에게 내쳐진다.  

    

케이시의 변덕스런 곡예를 잘 따라가던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운 건 케이시의 엄마 리아다. 순진함과 순수함이 다르다는 걸 새삼 일깨우는 시야 좁은 그녀가 교회 지휘자의 욕정에 휘둘리는 국면에서다. 부부관계 파탄을 예상하면서 조건부 인생의 근간이랄 게 없다는 무상함이 나를 짓눌러서다. 열심히 살더라도 믿고 의지할 게 없다는 그 순간의 절망과 공포가 너무 컸던 경험이 낯설다.    

  

책 제목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케이시가 일하던 컨 데이비스의 관례를 인용한 거다. 계약을 체결한 부서에서 한턱내는 음식을 돈 많은 부자 직원들이 더 반긴다는. 그런 관점에서 작가는 케이시의 입사 거부를 통해 통속적 욕망에 된주먹을 안긴 셈이다. 케이시가 그간 공들였던 대학원과 입사를 포기할 뜻을 은우에게 밝히는 끝장면에서 나는 활기를 되찾았다. 

     

살다가 의지가지 없이 갈림길에 서게 되거나 모진 돌에 맞더라도 자기만의 일관된 결을 유지하는 게 의미 있다는 목소리를 들려준 작가에게 미소 짓는다. 두꺼운 책 두 권에서 눈을 못 떼게 하는 재미에다가 테드 김 등 코메리칸 특유의 조심스러움과 사회적 욕망을 미국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편견의 소스로 변역해 얹은 감칠맛 나는 통속성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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