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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May 02. 2024

나의 제철을 기다리며

하기 싫은 일을 마주했을 때 하는 생각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봄이 왔다는 말과 함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사람들은 밖으로 나온다. 겨울 내내 마트앱으로 배달시켜 장을 보던 나도 드디어 시장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 집에서 차로 조금만 가면 큰 시장이 있는데 야채부터 한약재, 고기까지 없는 게 없는 경동시장이 있다. 요즘 시장은 세련되고 정돈된 느낌이 많은데 경동시장은 아직까지 예전 시장 모습처럼 투박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번에 이곳에서 밤을 마트보다 훨씬 싸게 구입한 기억이 있어서 나가보았다.


경동 시장에서 본 식재료들은 싱싱하고 투박하고 못생기고 저렴하다. 못생기지만 다듬고 잘라놓으면 마트에서 산 것이랑 다를 것이 없다. 거친 손으로 장바구니에 담아주시며 지폐를 받아 드는 시장 사람들. 오늘 제일 눈에 띈 건 야채 집마다 여러 소쿠리씩 생겨있는 봄나물이었다. 달래, 냉이, 두릅, 봄동... 겨울 내내 국물요리만 달고 살던 내게 봄이 왔는지 새콤하게 무친 나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주말에 엄마네 별장에서 달래와 냉이를 캐기로 했어서 봄동만 구매했다. 봄동이 봄나물 중 가장 먼저 나고 가장 빨리 들어가는 나물이라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는 말에 얼른 데려왔다.


엄마네에서 달래와 냉이도 캐서 바로 봄나물을 먹었다. 달래는 새콤하게 오이와 함께 무치고 냉이로는 냉이 된장국을 만들었다. 같이 딴 돈나물은 깨끗하게 씻어서 초고추장과 함께 먹었다. 봄동은 잘라서 매콤하게 무쳐서 비빔밥도 먹고 김치대신도 먹는다. 남은 잎은 짭조름하게 장아찌로 무쳐서 고기와 함께 먹는다. 왠지 입맛이 살아나고 건강해지는 느낌. 제철 음식이 식탁에 올려져 있는 것만으로도 식탁이 풍족해 보인다.


겨울 내내 얼어있던 입맛이 녹아가면서 봄철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봄나물, 꼬막, 딸기, 주꾸미... 여름이 되면 각종 구황작물들과 과일들을 먹을 거고 가을에는 전어와 대하를 먹으며 겨울이 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싸늘한 겨울이 되면 굴이나 과메기를 먹으면서 얼른 봄이 오길 기다리겠지. 요즘은 과학기술이 정말 발달해서 제철 없이 모든 재료들을 구할 수 있다지만 제철 음식은 여전히 그 달에 가장 맛있고 통통하다. 영양분이 꽉 차오르는 시기. 햇빛과 물, 바람이 뒤섞인 모든 날씨를 겪고 마침내 절정을 이루어 내는 그 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재료들. 나에게도 내 제철이 있을까.


사람에게 제철이라고 하면 무엇을 말할까. 부와 명예? 사랑? 일? 가족? 사람? 그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절정을 이뤄서 더는 내게 고민이 없고 지금 이 순간 너무 행복하다 느끼는 그때가 내 제철인가?


제철의 사전적 의미는 ‘알맞은 시절‘이다.

나에게 알맞은 시절은 무엇일까? 살다 보면 가끔

‘내가 이 순간을 위해서 그동안 힘들었나 보다 ‘

‘그때 배워놓길 참 잘했네 ‘

‘그때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나치듯 쌓아왔던 내 하루하루들이 모여서 멋진 결과물을 만들 때. 하기 싫었던 일들을 마주하던 몇 개월들이 지나서 생각지 못한 보상을 받았을 때.

내가 모아 온 내 영양분들이 좋은 날에 도움이 되어 팡하고 터졌을 때가 제철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제철은 항상 매년 돌아오는 반복된 것이니 내 제철도 끝나지 않고 돌아올 것이다. 1년 내내 제철일 수는 없겠지만은 제철이 돌아올 그날을 위해 내 영양분을 모아서 땡땡한 모양을 만들어놔야지.


오늘도 힘든 일, 싫은 일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외쳐보자. 제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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