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빛나지 않는 시간들

효용의 바깥에서

by soominC

우리는 가치를 ‘발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가치는 대부분 ‘부여’된다. 어떤 것의 가치는 그것 자체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계와 맥락 속에서 생겨난다. 연봉이라는 숫자를 보면, 그것은 노동시장이라는 특정한 맥락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 맥락을 걷어내면,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사회가 정한 기준으로 자신을 측정해왔다. 얼마나 바쁜지, 얼마나 유능한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그렇게 생산성과 효율이 인간을 평가하는 가장 익숙한 언어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도 자신을 그 언어로만 번역하기 시작했다. 연봉은 몸값이 되고, 성과는 존재의 증명이 되며, 사회적으로 가장 빛났던 순간만이 내 삶의 대표 장면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인간을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기능하는 부품처럼 다룬다는 데 있다. 쉬는 시간은 낭비처럼 여겨지고, 우회와 방황은 미숙함으로 해석되며, 설명되지 않는 슬픔과 무용해 보이는 감정은 쉽게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효율만으로 유지되는 존재가 아니다.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마음은 움직이고, 의미는 생산되지 않는 순간에 오히려 더 깊게 발효 되기도 한다.


오히려 인간은 가장 중요한 것을 종종 수치화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경험한다. 삶은 완수해야 할 과업이 아니라 경험해야 할 과정이다. 어떤 관계에서 느낀 존엄, 어떤 문장 앞에서 되찾은 마음, 실패 이후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통과하며 형성된 내면의 결. 이런 것들은 이력서에 적히지 않고, 몸값으로 환산되지 않으며, 사회적 우월성을 입증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분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이다.


측정되지 않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 이름 붙이지 못한 것들이 오히려 우리가 가장 인간적으로 존재했던 시간일 수 있다. 효용 바깥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바깥이 삶의 가장 깊은 자리일지도 모른다.


삶의 가치는 효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효용이 삶의 가치를 만드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가장 빛났던 순간은 소중하다. 하지만 빛나지 않았던 순간들도 삶이었다. 흐릿했던 날들,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 같은 시간들. 그것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존재는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요일 연재